코로나 ‘방콕’에 가상현실 시장이 커진다, 온라인 교육·화상회의… 활용 가능성 무궁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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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Virtual Reality·VR) 헤드셋인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ead Mounted Display·HMD)를 착용한 여성의 귀에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3년 전 세상을 떠난 딸아이의 모습. “나연이 한 번만 만져보고 싶어”라고 흐느끼는 여성의 모습에 시청자들 역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살아있을 때 해주지 못했던 딸아이의 생일상 앞에 선 여성의 모습에서는 기어코 눈물이 나고 만다.

지난 2월에 방영된 MBC의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 나오는 장면이다. 혈액암으로 일곱 살에 세상을 떠난 딸을 VR 기술을 통해 다시 만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됐다.

가상으로 실제 현실에 가까운 모습을 구현하는 VR 기술이 어느덧 이렇게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물론 아직 VR 기술이 실제와 가까운 수준까지 올랐다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고, 시장이 성숙된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VR 헤드셋 업체 오큘러스 브이알(Oculus VR)을 창업한 팔머 럭키(Palmer Luckey)가 아직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청년이라는 점은 VR 기술이 그만큼 발전할 여지가 많이 남았다는 사실에 대한 일종의 은유 같아 보이기도 한다.

테크놀로지는 이코노미스트 칼럼니스트인 라이언 어벤트(Ryan Avent)의 말처럼 “천천히, 그러다 갑자기” 발현된다. 특히 코로나19로 언택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VR 시장이 서서히 부상 중이다. 매경럭스멘이 VR 산업을 조망했다.



▶“게임의 미래는 VR다” 하프라이프 알릭스

올 들어 VR 시장 문을 크게 연 것은 밸브(Valve)가 내놓은 하프라이프 알릭스(Half-Life Alyx)다. 올해 3월 23일 론칭한 신작으로 판매 기준으로 닐슨이 집계하는 4월 PC 게임 8위에 올랐다. 86만 명이 구입했으며 4070만달러(약 502억원)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밸브는 대만의 스마트폰 제조사인 HTC와 손잡고 밸브사 전용 VR 기기 세트인 밸브 인덱스(Valve Index)를 개발했고 세트를 구입할 경우 게임을 번들로 주는 정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세트가 999달러(약 122만원)의 고가라는 단점에도 일시 품절이라는 VR 시장에서 이례적인 현상을 초래했다.

“VR는 게임의 미래”라는 VR 업계의 자기 충족적 예언을 밸브가 실현한 셈이다. VR 게임이 인기를 끈 것은 철저하게 사용자 만족도를 높여서다. 마이크로소프트 개발자 출신인 게이브 뉴웰(Gabe Newell)이 설립한 밸브는 “달려라. 생각하라. 쏴라. 살아남아라(Run. Think. Shoot. Live)”라는 모토로 1인칭 슈팅게임의 전설로 불리는 하프라이프를 1998년 개발한 바 있다.

밸브는 VR가 게임의 미래라는 판단 하에 하프라이프를 되살리기로 결심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당초 개발 단계에서는 1인칭 슈팅 게임에 익숙한 유저를 위해 VR 기기에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결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조작이 점점 복잡해지는 것을 깨닫고 포기했다. 100% VR 게임 개발로 전환한 것이다.



이후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하고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 개발하기로 했고 하드웨어를 고도화한다. 종전에 VR 게임은 HMD를 착용하고 양손에 막대기 같은 컨트롤러를 쥐고 칼을 휘두르는 것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밸브는 ‘인덱스 너클 컨트롤러’를 개발했다. 양손에 끼우는 컨트롤러를 개발해 손가락 움직임을 정확히 인식해 매우 다양한 동작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문을 닫고 여는 것은 물론 총기를 바꾸거나 수류탄을 던지고 심지어 피아노도 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게이브 뉴웰은 지난해 “개발자로서 VR는 야심찬 프로젝트”라면서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첨단 테크, 개방형 플랫폼, 위대한 게임작 등 많은 것들의 결정판이며 사람들에게 이 경험을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프라이프 알릭스의 성공은 VR가 단순한 하드웨어 장비가 아닌 사용자 만족도를 높일 때 시장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 사례다.

밸브의 VR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


▶훈련과 생산에 VR를… 롤스로이스·BMW

VR 활용은 게임뿐 아니라 훈련 시스템으로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롤스로이스(Rolls-Royce)는 올해 5월에 롤스로이스 엔진 BR725을 유지·보수하는 교육에 VR 시스템을 도입했다. 엔진 설계, 작동, 보수 등을 VR를 활용해 2주간 직원들이 가상으로 실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히 VR는 항공기에 탑재돼 있고 격납기에 놓여 있는 2대의 엔진을 강사의 지시에 따라 가상으로 관찰하도록 지원한다. 또 이 과정에서 교육생들은 강사와 가상 세상에서 질의응답도 할 수 있다. 현장에 있는 것처럼 교육이 가능한 셈이다.

BMW그룹도 지난해 VR 기술을 이미 생산 시스템에 도입한 상태다. HMD를 착용한 근로자들이 어떤 위치에 어떤 부품을 장착해야 하는지 한 번에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수년간 3D 스캐너 카메라 등을 도입하며 공장 전체를 디지털로 전환해온 BMW그룹이 또 한 번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시도한 대목이다. 글로벌 VR 시장은 5G(5세대 이동통신)의 발전, 코로나19에 따른 언택트 문화의 확산, 엔터테인먼트 및 교육에 대한 새로운 수요의 창출이라는 3박자에 맞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리서치 기업 마켓앤마켓(MarketsandMarkets)에 따르면 VR 시장 규모는 2018년 79억달러에서 연평균 33.4%씩 성장해 2024년 446억8000만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시장 점유율은 북미 35.6%, 아시아-태평양 30.9%, 25.6% 순이다. 한국의 VR 시장은 2018년 3억8860만달러에서 2024년 25억3240만달러로 연평균 36.6%씩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은 하드웨어 기술의 개발과 미디어·게임의 발전에 맞춰 향후 3~5년간 VR 시스템의 가치가 부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하드웨어인 HMD는 1968년 이반 서덜랜드가 천장 부착형인 다모클레스의 검(The Sword of Damocles)을 개발한 이래 2010년대 이후 수직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오큘러스 브이알은 2013년 오큘러스 리프트라는 시야각이 매우 넓은 HMD를 시장에 내놔 게이밍 VR 시장을 열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2015년 홀로렌즈를 선보여 현실과 가상의 벽을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군사 분야에서 HMD는 이미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전투기 조종사는 전투기의 속도, 고도, 적기의 위치를 앞 유리창에 부착된 HUD(Head Up Display)를 통해 확인했는데, F-35부터는 HMD로 대체된 상태다.

롤스로이스의 VR를 활용한 항공 엔진 수리 교육


▶집콕족 부상에 통신 3사 VR 상용화 앞장

해외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국내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초 너무 비싸거나, 너무 무겁고 투박하거나, 너무 어지럽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던 VR는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이 힘들어진 ‘집콕족’들을 통해 조금씩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일단 국내에서는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이 VR 상용화에 앞장서고 있는 모양새다. 데이터 소모량이 높은 VR 콘텐츠는 그동안 ‘요금 폭탄’을 불러오는 위험한 콘텐츠였으나 5세대 통신(5G)이 이미 상용화된 지금은 ‘킬러 콘텐츠’ 대접을 받을 준비를 마친 상태다.

준비하고 있는 내용도 다채롭다. SK텔레콤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력해 ‘혼합현실(Mixed Reality) 제작소’를 표방하는 ‘점프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자사의 ‘점프 VR’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다양한 콘텐츠도 제공하고 있다. 여행과 레저 등 일반적인 VR 콘텐츠 외에도 인공지능(AI) 기반 에듀테크 스타트업 ‘마블러스’와는 VR 기반의 어학시뮬레이션 콘텐츠 ‘스피킷’을 만들었고, 용인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진영 교수팀과 30~40대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경감을 위한 힐링 VR 영상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Exercise)’도 공동 제작 중이다.

또한 게임 분야에서는 넥슨의 유명 게임인 ‘카트라이더’ ‘크레이지아케이드’ 등의 캐릭터 IP(지적재산권)를 이용한 ‘크레이지월드VR’ 게임을 벤처게임사인 픽셀리티게임즈와 함께 제작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베타 서비스 단계로 머지않아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LG유플러스의 VR 콘텐츠 태양의 서커스


KT 역시 지난해 7월 4K 무선 독립형 VR 서비스인 ‘슈퍼VR’를 출시하고 콘텐츠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슈퍼VR는 세계 최초로 초고화질 8K로 서비스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알카크루즈사의 ‘슈퍼스트림 솔루션’을 결합해 초고용량의 8K VR 콘텐츠를 수백 개의 조각으로 분할해 클라우드에 저장한 뒤 사용자의 시야각에 맞춰 최적의 영상을 송출한다.

지난해부터 한국관광공사와 협업해 ‘춘천 국제마임축제’ ‘화성 뱃놀이축제’ 등 국내 주요 관광지와 축제 현장을 VR 콘텐츠로 제공하고, ‘스픽나우’ 등 영어 교육 서비스, 가상 모임 플랫폼 ‘인게이지(Engage)’, 로봇대전 게임 ‘퍼시픽림VR’, 아이돌 무대를 멤버별 360도 멀티뷰로 즐기는 ‘아이돌 직관’ 등이 있다.

LG유플러스는 통신 시장 3위 업체지만 VR와, 또 이와 원리가 유사한 증강현실(Argumented Reality·AR) 쪽에서는 가장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다. 360도 촬영 제작 기술을 보유한 미국 8i와 독점 제휴를 맺고 4K 카메라 30대로 촬영한 영상을 하나의 입체영상으로 합치는 AR 스튜디오도 만들어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고 있고, 구글과 제휴를 맺어 콘텐츠 공동 제작도 한다. 단순히 콘텐츠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TV홈쇼핑 화면에 비추면 AI로 상품 정보를 볼 수 있는 U+AR 쇼핑 서비스도 제공하고, 중국과 홍콩, 일본, 대만 등지에 1000만달러(약 123억원) 수준의 수출 성과도 올리며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KT의 VR 교육 영어 스픽나우


▶교육·회의·웨비나 효과 높아… 콘텐츠 부족은 숙제

실제로 통신 3사는 코로나19가 닥친 올해 초 급격한 서비스 이용률 증가를 체감할 수 있었다. SK텔레콤의 점프VR 내 여행과 레저 콘텐츠는 3월 이용량이 1월 대비 42% 증가했고, KT의 슈퍼VR는 2월 대비 3월 이용량이 60% 늘어났다.

U+AR 쇼핑은 3월 이용자 수가 1월 대비 4배 늘어나며 실제 상품 구매로 이어진 사례도 4.5배 증가했다.

다만 통신사와 같은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에서 성과가 자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 VR 시장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최근 ‘가상증강현실 콘텐츠 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기준 국내 VR·AR 사업체 수는 839개에 달하지만 제작한 콘텐츠를 실제로 판매해 소득이 발생한 비율은 58.7%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자연스레 폐업률도 15.6%로 일반 ICT 벤처기업 폐업률 9.1%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일단 살아남는 데에만 성공한다면 대기업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게임·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 모델도 만들어지고 있으니 가능성은 남아있다. 특히 게임 분야에서는 ‘공룡’들이 아직 진입하지 않아 마케팅 비용 등을 많이 쓸 여력이 없는 소규모 업체들도 좋은 콘텐츠만 만들어낸다면 성장 가능성이 있다.

현재 ‘비트세이버’ 등 VR 게임 글로벌 상위 매출 게임들 대부분이 인디 게임사의 역작이기도 하다. 또한 다른 모바일·온라인 게임과 달리 판호(중국 내에서 게임 서비스를 하기 위해 필요한 허가권)을 따로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중국 시장 직접 진출도 꿈은 아니다. 스마일게이트, 스코넥엔터테인먼트, 와이제이엠게임즈, 드래곤플라이 등은 이미 중국 시장에 진출해 있기도 하다.

게임 외에 교육과 업무 솔루션 등도 VR 산업과 결부되어 성장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비대면 교육의 가장 큰 단점은 현장감 부재가 꼽히는데 스탠퍼드대와 덴마크 기술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VR 교육은 기존 원격 교육보다 76% 이상 학습 효과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콘퍼런스콜이나 화상 미팅, 웨비나(웹 세미나), 스트리밍 방송을 이용해오던 원격회의 업무도 VR를 이용해 현장감을 구현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상덕·이용익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7호 (2020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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