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 극한 자극 위해선 개연성 따윈 버리는 김순옥 월드

[엔터미디어=정덕현] 오윤희(유진)가 주단태(엄기준)와 키스를 하고 하룻밤을 보낸다? 아마도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시청자들은 이 장면에서 인상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을 게다. 이 장면이 불쾌함을 넘어서 더럽게까지 느껴지는 건, 오윤희라는 인물의 이런 갑작스런 돌변이 인간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처럼 여겨져서다.

가진 것 없지만 그래도 딸 배로나(김현수)를 위해 가진 자들의 갑질과 맞서던 인물이 오윤희가 아니던가. 그는 천서진(김소연)에 의해 성악도 포기하게 됐고, 그의 딸 또한 그가 있는 청아 예고에서 불이익을 받는 걸 겪어야 했다. 그러니 이 악마 같은 사이코패스들이 득시글대는 헤라팰리스 사람들의 천대 속에서 오윤희 같은 인물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그가 성공하고 나아가 저들에게 복수하는 걸 응원하게 되는 것.

그래서 헤라팰리스에서의 또 한 명의 피해자인 심수련(이지아)과 오윤희의 연대는 이 처절한 복수극에 은근한 기대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오윤희는 이런 기대를 하나씩 부숴버리고 있다. 천서진의 전 남편 하윤철(윤종훈)과의 불륜을 의심한 딸이 엇나가자 자신은 결코 그런 일이 없다며 딸 앞에서 오열하던 그가, 갑자기 주단태와 불륜을 저지르고 나아가 심수련을 배신하는 모습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심수련의 딸 민설아(조수민)를 죽인 범인이 바로 오윤희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범인을 찾으려는 심수련과 그래서 그 날의 상황을 경찰에 진술해달라는 요구 앞에 오윤희는 점점 그를 속이기 시작하고, 은근히 손을 내미는 주단태와 불륜관계를 맺으며 심지어 심수련을 버리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런 돌변은 과연 납득할만한 개연성을 갖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먼저 오윤희라는 캐릭터의 일관성이 깨져 있다. 딸을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러면서 딸이 가장 싫어할 불륜을 저지르고 아무런 죄의식도 갖지 않는 모습이나, 하필이면 그 대상이 심수련의 남편이자, 천서진의 불륜남인 주단태라는 사실이 그렇다.

오윤희는 이 불륜과 배신으로 단번에 ‘펜트하우스’의 최대 빌런으로 등극한다. 그것은 그가 배신한 심수련이 한때는 가장 가까운 언니였다는 사실 때문이고, 주단태가 다름 아닌 천서진과 몸을 섞은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오윤희는 심수련과 딸을 배신한 인물이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주단태 같은 인물과도 불륜을 저지르는 인물로 전락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개연성에도 이런 오윤희의 극단적인 변신을 그리는 이유는 뭘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은 캐릭터를 소모해 자극을 얻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깔려 있다. 배신이라는 강도 높은 자극을 만드는데 가장 큰 자극은 역시 그런 일을 절대 저지르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의 배신을 담는 것이다. 그래서 오윤희라는 캐릭터는 단 몇 회 만에 상종 못할 빌런으로 전락했다.

이것은 ‘펜트하우스’라는 김순옥 월드가 어떻게 자극적인 설정을 통해 시청률을 끌어가는가 하는 걸 잘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19금 설정이지만 주단태는 이제 세 여자와 관계를 맺는 자극의 끝판을 보여주고 있고, 천서진은 살인미수, 아동학대, 학교비리는 물론이고 아버지가 죽게 내버려두는 패륜까지 보여줬다. 이규진(봉태규)이나 하윤철(윤종훈)은 일찌감치 밑바닥인 인성을 드러낸 바 있고, 헤라팰리스 강마리(신은경)나 고상아(윤주희) 같은 인물 역시 천박함이 캐릭터 그 자체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제 고등학생들인 유제니(진지희), 주석경(한지현), 하은별(최예빈) 같은 인물들도 그 나이가 맞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사이코패스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저지른 일들은 거의 범죄 수준이고, 그걸 무마하는 헤라팰리스 부모들의 모습 또한 정상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래서 이들이 그려가는 세계는 갈수록 사이코드라마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시청자들은 개연성마저 포기한 비정상적인 인물이 그려내는 파행이라는 자극 속에서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불쾌함 속에서도 계속 드라마를 보게 되는 힘은 다름 아닌 복수극의 틀이다. 하지만 오윤희 같은 인물조차 빌런화되는 자극의 끝으로 치닫게 되면서 이 복수극의 틀마저 깨져버리고 있다. 이제 남은 건 심수련과 구호동의 복수지만, 이들이 보이는 복수의 방식이란 저들 사이코패스 같은 헤라팰리스의 부모와 아이들이 하던 걸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이 과정에서 캐릭터를 자극을 위해 소비한다. 필요하면 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가장 그렇지 않을 인물마저 밑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작품의 내적 동인이 되어야할 개연성이 김순옥 작가 자신이 되면서, 신적 권위를 마음껏 휘두르며 생겨나는 결과들이다. 민설아에 대한 복수를 위해 심수련과 구호동이 헤라팰리스 사람들을 폐차장 버스 안에 감금해놓고 물을 뿌리고 시한폭탄 같은 시계를 작동시키며 불로 위협하는 그 광경은 그래서 꽤 상징적인 느낌을 준다. 그건 다름 아닌 작가가 작품의 개연성과는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내는 설정 속에 갇힌 인물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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