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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트로트, 유행을 지나 대중의 공감을 얻어야 장수할 수 있어

[이준목 기자]

▲  최근 방영중인 TV조선 '미스트롯2'의 한 장면.

ⓒ TV조선

2020년 국내 방송가의 최고 인기 콘텐츠는 역시 '트로트'였다. TV를 틀기만 하면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비슷한 포맷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이 속출하는가하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재야의 실력자부터 비가수 출신인 배우나 개그맨, 스포츠 스타들도 잇달아 트로트에 도전할만큼 올 한해는 트로트 열풍이 그 어느 때보다 강세였다. 코로나19 여파로 외부 활동이 줄어든 시청자들이 집에서 TV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트로트 예능의 인기 확산에 배경이 되었다는 평가다.

TV조선의 <미스트롯> <미스터 트롯> 시리즈는 트로트 열풍의 사실상 시발점으로 꼽힌다. 이 시리즈는 한동안 중장년층 위주의 올드한 비주류 음악장르 정도로 인식되고 있던 트로트의 잠재력을 부활시킨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방송 내내 유례 없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송가인과 임영웅 등 뛰어난 가창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트로트 스타들을 대거 배출했고, 이후로도 수 <사랑의 콜센터> 등 많은 관련 파생 방송과 아류작들을 낳으며 가히 국민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미스트롯> 시즌2 역시 전작의 후광에 힘입어 2회만에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지상파 방송들도 <트로트의 민족> <트롯신이 떴다> <트롯전국체전> 등을 내놓으며 뒤늦게 트로트 경연 경쟁에 동참하고 있는 모양새다. 심지어 <놀면뭐하니> <편애중계> <뭉쳐야찬다> 등 트로트와 관계가 없는 방송들도 트로트를 에피소드의 소재로 차용하거나 트로트 스타들을 출연시켜 후광을 노리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큰 성공을 거둔 트로트 예능의 공통적인 인기 비결은 '경연 방식'과 '팬 참여'라는 구성을 확대시켜서 대중들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스타를 발굴하고 육성한다는 '성장드라마적 서사'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무명 출신의 인생역전이나 출연자의 개인사를 부각시키는 감성적인 접근법은 <슈퍼스타K>나 <프로듀스> 시리즈같은 아이돌 발굴 오디션에서 자주 사용되던 포맷이지만, 트로트 경연예능에서 도입된 것은 최초였다. 트로트 장르는 아니지만 이후로 등장한 <미쓰백> <싱어게인>같은 경연예능들도 기본적으로 트로트 시리즈가 구축해놓은 감성 포맷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기존의 기성가수들이 장기 독점하던 트로트 시장에서, 경연을 통하여 새롭게 탄생한 이른바 '아이돌형 트로트 가수'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이는 팬덤에서도 기존 트로트의 주요 소비층으로 꼽히던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1020세대 젊은층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높은 확장성으로 이어졌다.

트로트 스타들은 치열한 경연 과정을 통하여 전문가와 팬들에게 검증받은 실력은 물론, 자신만의 호감스러운 캐릭터와 서사까지 구축하며 트로트 예능을 넘어 다른 어떤 방송에 내놔도 항상 기본 이상은 해내는 '전천후 시청률 보증수표'가 됐다. 팬들 역시 자신의 안목으로 직접 선택한 트로트 스타들에 대한 애착과 충성도가 다른 연예인들보다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방송가의 지나친 '트로트 과잉' 현상에 대한 우려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높은 인기에 가려진 트로트 경연예능의 가장 큰 문제는 다양성의 부재다. 비슷비슷한 트로트 경연예능이 반복되면서 포맷과 출연진 모두 큰 차별화가 없어서 식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윤정, 김연자, 남진, 설운도, 진성, 주현미 등 몇몇 유명 기성 트로트 가수들이 여러 프로그램이나 심사위원이나 패널로 중복출연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러다보니 시청자들도 심사위원들의 성향이나 스타일을 예측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더구나 그만큼 인재풀이 적다보니 전문성과 실력 면에서 의구심을 자아내는 연예인 패널들이 빈 자리를 메우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단기간에 너무 많은 트로트 경연 예능이 무분별하게 난립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출연자들의 질적 하락도 지적받고 있다. 세대와 성별을 떠나 다양한 출연자들이 참여할 수있는 게 트로트 예능의 매력이지만, 결국 진가는 '실력자 발굴'에서 나온다. <미스트롯2>는 아직 방송초반이기는 하지만 이전 시즌의 송가인같은 스타가 보이지않는 데다 출연자들의 두드러진 실력편차, 출연의도가 의심되는 수준 미달 출연자들의 존재 등이 지적받고 있다.

오디션-경연예능에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극복해야할 숙제다. 엠넷은 한때 <슈퍼스타>,<프로듀스> 시리즈 등 수많은 오디션 예능을 성공시켰지만 최근 투표조작 등의 논란이 불거지며 방송의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고 관련자들은 법적 처벌까지 받았다.

트로트 시리즈도 비록 높은 인기에 가려졌지만 경연 과정이나 대진, 시청자 참여방식 등을 놓고 적지 않은 잡음에 휩싸인 바 있다. 또한 좁은 국내 연예계와 음악시장의 특성상, 출연자와 심사위원들이 개인적 친분 혹은 이해관계로 엮여 있는 경우도 많아서 자칫 팔이 안으로 굽거나 감성팔이에 휩쓸릴 수 있는 가능성도 경계되어야할 부분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트로트 장르가 잠깐의 유행을 넘어서 꾸준한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결국 음악 자체의 매력으로 시청자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국내 트로트 인기의 한계는, '음악적 다양성과 퀄리티'로 승부하기보다는 가수 개인의 이미지와 스타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로트 예능으로 스타덤에 오른 가수들도 이후로 그 인기만큼 음악적 자생력이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다기보다는, 기존에 성공한 트로트 히트곡들의 재해석 혹은 재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심사위원이자 멘토 역할로 참여하여 역시 트로트 예능의 수혜를 누렸던 기성 가수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비판이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올해 '테스형'으로 건재를 과시한 나훈아의 사례는 현재의 가볍고 즉흥적인 트로트 열풍이 채워주지 못했던 부분을 곱씹게 한다. 트로트는 그저 신명하고 가벼운 음악이 아니라 그 시대의 대중들의 애환과 감수성을 대변하는 메시지를 담아야한다. 자신만의 차별화된 개성과 실험적 도전의식이 있어야만 트로트 인기가 한때의 유행을 지나 대중의 공감과 존중을 바탕으로 장수하는 장르로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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