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 정국전망 ②] '소의 해' 눈여겨봐야할 대권주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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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1.02. 오전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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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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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주자 가슴 뛸 '우보천리' 이미지 있지만…
설화에선 골인 직전 쥐에게 선착 빼앗기기도
'12간지 경주 설화' 현실정치서도 의외로 빈발
이인제·이회창·고건·반기문 등이 역대 '쓴잔'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다. 신축년은 육십간지 중 38번째로 신(辛)이 백색, 축(丑)이 소를 의미하는 '하얀 소의 해'로 상서로운 기운이 풍성하게 일어나는 해라고 전해진다. 사진은 지난 12월 19일 강원도 속초시에서 일출을 17분여 장노출로 촬영한 사진과 1/1000초로 촬영한 두장의 사진을 합성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소의 해'다. 소는 용과 함께 정치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간지로 꼽힌다. 우보천리(牛步千里), '소 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말대로 우직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 마침내 달성하는 이미지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내년 3·9 대선과 맞물려 대권주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말이기도 하다.

12간지 '경주 설화'를 떠올려보면 소가 반드시 대권주자들에게 좋은 것만도 아니다. 설화에 따르면, 석가여래가 열두 동물의 순서를 정하려 경주를 시켰다고 한다. 소는 우직하게 전날 밤에 출발해 결승선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 때 몰래 쇠뿔에 매달려 따라온 쥐가 결승선 직전에서 뛰어내리며 선착에 성공했다. 12간지의 순서가 자(子)~축(丑)…, 쥐와 소부터의 순서로 정해진 유래다.

대권경쟁을 소처럼 내내 선두에서 끌다가 막판에 쇠뿔에서 뛰어내린 쥐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대권주자들이 자다가도 소리 지르며 깨어날 악몽이지만 의외로 현실정치에서 자주 일어난다.

2002년 대선 당시 이인제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은 집권여당 후보가 확실해보였지만, 막판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3년 이상 '대세론'을 형성하며 달려왔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도 노 전 대통령의 '바람' 앞에 쓴잔을 마셨다. 2007년 대선에서 고건 전 국무총리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대선후보를 내줬다. 수 년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오르내리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귀국 이후 채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새해 벽두 차기 대권 여론조사 종합해보면
1년반 선두에서 끌어온 이낙연 입지 '흔들'
이재명, 4월 재보선 뒤 승부시점 가져갈 듯
'추입' 노릴 정세균, 코로나 탓 구상 '엉망'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3일 오후 국회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새해 벽두에 발표된 여론조사는 심상치 않다.

조선일보·TV조선이 칸타코리아에 의뢰해 지난달 27~29일 설문한 결과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 18.2%,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16.2%, 윤석열 검찰총장 15.1%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같은 기간 설문한 결과에서는 이재명 지사 24.6%, 이낙연 대표 19.1%, 윤석열 총장 18.2%였다.

서울신문이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지난달 28~30일 설문한 결과에서는 이재명 지사 26.7%, 윤석열 총장 21.5%, 이낙연 대표 15.6%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데일리안은 알앤써치에 의뢰해 매달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를 설문하고 있다. 이 설문에서 이낙연 대표가 단독 선두로 나선 것은 지난 2019년 6월 23~25일 조사다. 1년 반 가까이를 선두에서 대권경쟁을 이끌어온 이 대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낙연 대표는 지난해 8·29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뒤, 집권 4년차 '윤석열 찍어내기' 등 청와대의 무리수에 여당 대표로서 '설거지'를 맡으면서 이미지에 손해를 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디딤돌 삼아 대권을 거머쥐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수순을 기대했겠지만, 청와대라는 상왕(上王)이 있는 여당 대표와 야당 대표의 차이를 간과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의식한 듯 이 대표의 최근 움직임에 변화가 감지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전격 회동해 영수회담을 제안한데 이어, 새해 벽두부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제안을 던져 정치권을 뒤집어놓았다. 이 대표는 오는 3월이면 당대표에서 물러난다. 올해 '이낙연의 대권 정치'가 보다 선명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낙연 대표가 대권경쟁을 앞서 끌어오고 있다면, 이재명 지사와 정세균 총리는 이 대표를 제치고 선착할 기회를 보는 형세다.

이재명 지사로서는 새해 여론조사가 기분 좋은 결과겠지만, 이낙연 대표를 완전히 젖히고 앞으로 나섰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4월 재보선 정국이 본격화하면 현직 광역단체장으로서 선거 개입 금지에 묶인 이 지사보다는 선거 결과에 책임을 져야할 입장에서 전면에 나설 이 대표에게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 지사가 선두로 젖히고 나설 승부 시점은 4월 재보선 이후로 전망된다.

정세균 총리는 총리로 취임할 때만 해도 '제2의 이낙연 바람'을 꿈꿨을 것이다. 사실 정 총리의 관록은 이 대표에게 뒤처질 게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것도 빨랐고, 지역구(전북 무주·진안·장수)에서 4선을 한 뒤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험지 출마'를 한 것도 정 총리가 '원조'다. 전남 영광·함평에서 4선을 한 뒤 종로로 올라온 이 대표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꺾었다면, 정 총리는 그에 앞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을 꺾었다.

국회의장보다 의전서열이 떨어지는 총리로 갔을 적에는 이낙연 대표 이상 가는 능력을 보여줘 국민으로부터 선택받겠다는 큰 뜻이 있었을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올해 1월 총리 취임 이후 본격 창궐하기 시작한 코로나19 사태가 정 총리의 모든 구상을 망쳐놨다"며 "국민들에게 정 총리는 노란 옷을 입고 왔다갔다 하면서 가끔 개탄하는 모습 밖에 남는 이미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사태는 결국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이 형성돼야 끝난다. 내년 2~3분기면 대선 반 년 전인데 정 총리가 국민들에게 역량을 보여줄 시간이 없다. "차라리 진안군수를 하겠다"고 일축하기는 했지만, 대권이 아닌 '다른 경주'로 정 총리가 선회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사그러들지 않는데는 까닭이 있다.

윤석열, '여의도 문법'으로 전망 쉽지 않아
유승민, '경제를 살릴 사람' 각인되면 '기회'
원희룡, 젊으면서도 관록 있어 '준비된 후보'
김태호, 뛸 준비 마쳤는데…'복당' 풀어내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새해 벽두에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렸던 2020년도 신년다짐회에 참석해 신년사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주자가 없던 야권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최근 경주를 선두에서 끌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22일 국회 법사위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를 계기로 윤 총장은 '선두그룹'에 안착했다.

문제는 윤석열 총장의 정치적 성격이 아직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윤석열 탄핵'까지 운운하는 친문(친문재인) 강성 그룹의 움직임을 고려할 때, 여권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임명한 현직 검찰총장을 야권으로 분류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비(非)여권이라는 애매한 분류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치권 관계자는 "(윤 총장이) 정말 본인이 대선에 나설 뜻이 있는지, 그런 측면에서 대권주자인지도 사실 속단하기 어렵지 않느냐"며 "앞으로 어떠한 경주를 펼칠지 '여의도 문법'으로 재단하거나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윤 총장이 대권경쟁을 끌기 시작하면서 다른 야권 주자들의 움직임을 촉발하는 효과는 분명히 감지된다. 유승민 전 의원이 대권을 겨냥한 '희망 22' 사무실을 여의도에 일찌감치 내고 선착 기회를 보고 있다. 윤 총장을 경쟁상대로 지목했던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다크호스'다. 영남에 본진을 두고 있는 김태호 무소속 의원의 잠재력도 무시할 수 없다.

서울신문~현대리서치연구소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이 희망하는 차기 대통령의 이미지는 '경제를 살릴 사람'이 31.9%로 1위였다. 지금은 문재인정권 집권 이후 계속되는 국론분열과 정책파탄에 지친 국민들이 집권 세력과 강하게 각을 세우는 윤 총장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선거의 초점이 '현 정권 심판'에서 '미래 비전'으로 옮겨간다면 '경제전문가' 유승민 전 의원에게 기회가 돌아올 수 있다.

다만 유승민 전 의원은 대구에서 내리 4선을 한 'TK 본진' 정치인인데도 정작 대구·경북 일각의 강한 비토 정서가 남아있는 게 고민이다. 유 전 의원 본인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유 전 의원은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과의 대담에서 "영남의 보수색채 강한 당원들께 '수도권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승부처인 서울·수도권에서 높은 지지를 확보하면, 연고지인 TK를 역으로 설득하겠다는 전략이다.

원희룡 지사는 1964년생으로 나이도 젊고, 3선 의원에 재선 광역단체장 등 경륜도 풍부하다. 당에서도 최고위원과 사무총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사람 평가가 박하기로 유명한 김종인 위원장이 월간조선 신년호 인터뷰에서 "머리도 좋고 대선도 오래 준비했다"고 호평했다. 2007년 대선 때부터 이미 '잠룡'으로 뛰었으니 '준비된 후보'인 점도 분명하다.

원 지사는 4월 재보선 이후 대권경쟁이 본격화되면 부상할 수 있는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다만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될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현직 광역단체장 신분이라 '기여'할 수 있는 방도가 없는 게 아쉬운 상황이다.

김태호 무소속 의원은 대선 승패를 가르는 부산·울산·경남(PK) 출신의 귀한 대권주자다. 김 의원 스스로도 지난해 10월 '더 좋은 세상으로'(마포포럼) 주제발표에서 "역대 대선에서 우리 당 후보가 PK에서 60만 표 격차를 벌리지 못하면 졌다. 통계적으로 나온 얘기"라며 "PK 민심을 얻어내는 게 바로미터인데, 나는 PK 출신으로 강점이 있다"고 자부했다.

대권주자로서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아직 지지율이 오르지는 않고 있지만, 과거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성찰,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청사진 제시 등 뛰기 전 '운동화 끈을 매는 작업'은 제대로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쉽게 풀릴 줄 알았던 복당 문제가 해를 넘기게 된 것은 의외다. 김 의원 본인도 신축년을 무소속 신분으로 맞이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 핵심 의원은 "나는 복당 찬성인데, 김종인 위원장이 (홍준표 의원과) 둘을 하나로 보는 것 같더라"고 귀띔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태호 의원이 이것을 풀어내는 게 정치다.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마포포럼'에서 독일식 의원내각제로의 권력구조 개편을 내건 김 의원이 같은 지론을 가진 김종인 위원장과 뜻이 맞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어떻게든 정치력을 발휘해 재보선 전에 '개별복당' 해서 PK의 '노른자위'인 부산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적극적인 지원유세 등 기여와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데일리안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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