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뭐죠?"... 노인도 모르는 노인보호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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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탑골공원 주변 노인보호구역 실태 조사... "정부가 먼저 관심 가져야"

[박지윤, 최인선 기자]

통계청에 의하면 2020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우리나라 인구의 15.7%로, 향후에도 계속 증가하여 2025년에는 20.3%에 이르러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한국교통안전공단의 2019년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1,302명 중 57.1%가 65세 이상으로 나타났다.
 
현재 우리나라는 교통약자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2008년부터 노인보호구역을 도입하여 시행 중이다. 노인 보호구역은 '실버존'으로 불리며 노인들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하고자 양로원, 노인복지시설, 도시공원, 생활체육시설 등 노인들의 통행량이 많은 구역을 선정하여 교통약자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말한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도로가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그 구간에서 운전자는 시속 30km 이하로 서행 운전해야 한다. 또 지자체에서는 노인보호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나 노인들의 보행을 위한 안전시설물 등을 설치해 관리 및 단속해야 한다.
 
그렇다면 노인보호구역 정책이 시행되고 7년이 지난 지금, 제대로 관리·감독 되고 있을까? 기자는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나섰다.

노인도 모르는 노인보호구역
 
 평일 오전 9시경 탑골공원 주변은 노인들과 출근하는 차들로 붐비고 있다.
ⓒ 최인선

   
종로구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19년 하반기 기준 17.4%로, 강북구 다음으로 많고 노인 유동인구 또한 많다. 이에 기자는 조사 구역을 종로 3가, 5가의 탑골공원과 종로종합노인복지관 주변으로 선정했다.
 
11월 13일 오전 9시경 방문한 탑골공원 주변은 노인들과 출근하는 차들로 붐볐다. 특히 코로나19로 탑골공원 측이 무료급식 대상자 등 한정된 인원만 출입을 허가하면서, 출입하지 못한 노인들이 인근에서 바둑을 두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탑골공원 근처의 도로상황은 어땠을까? 역 근처 큰 횡단보도의 긴 대기시간으로 인해 한 번에 건너오는 사람의 수는 매우 많았고, 그 때문에 차와 오토바이, 사람이 뒤엉키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일부 노인은 신호등의 보행시간에 맞춰 불편한 몸을 이끌고 뛰듯이 걸어야만 했다. 탑골공원 바로 옆 '송해길'에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카페나 음식점 등이 많아 주 이용고객이 노인임을 알 수 있으나 신호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탑골공원 근처에 앉아계시던 노인 한 분은 "이 주변에 노인보호구역 필요하지. 차 다니고 얼마나 복잡한데"라며 "나이 들어서 뛰려면 무릎도 아픈데 차 피해 다니려니 서럽지"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대해 종로구청의 도로과 직원은 11월 16일 기자에게 "탑골공원에는 노인보호구역이 따로 지정되어 있지 않고, 근처 '락희거리'에는 지정되어 있다고 했다"며 "탑골공원 역시 노인이 자주 왕래하는 곳이기에 노인보호구역 지정 대상에 해당하지만, 설치되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의 주변 노인보호구역 표지판과 바닥에 속도 제한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이 전부인 노인 보호구역
ⓒ 박지윤

    
기자는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을 들어가는 길목에 오후 12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총 1시간 동안 머물면서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도로의 실태를 파악하였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은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신호등은 입구에 설치된 한 개가 전부였다. 노인보호구역에는 주·정차가 모두 금지이지만, 이날 해당 구역에 주·정차된 오토바이와 트럭의 수는 총 14대였다. 속도 제한을 하지 않고 달리는 오토바이와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이 섞이며 신호등이 무용지물이 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노인복지관 앞 도로도 다를 게 없었다. 약간의 경사진 지형 덕분에 차들이 빠르게 달리지는 못했지만, 인도 대신 지정해둔 작은 보행도로마저 주차된 오토바이로 인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복지관 앞에는 노인들이 햇볕을 쬐며 차를 마시고 있었으나 방호 울타리 등 노인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시설물이 없는 상태였다.
 
평소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을 자주 이용한다는 A(여, 62)씨는 '노인보호구역의 존재와 그 필요성에 대해 알고 있냐'는 기자의 말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난 있는 줄도 몰랐는데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도로를 이용할 때는 횡단보도도 없고 오토바이들이 빠르게 지나다녀 항상 주위를 살펴야 한다"고 토로했다.

취재를 통해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관리 및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인보호구역 설치 비율이 낮은 이유
  
 한국노년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최성재 교수님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 박지윤

 
11월 19일 만난 최성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와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노인과 관련된 시설들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노인보호구역의 확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노인보호구역의 설치 비율과 그 인지도가 어린이 보호구역에 비해 낮다는 점을 언급하며 "고령화로 진입한 우리 사회는 모순적이게도 노인에 대한 관심이 적다. 노인보호구역에 대한 홍보 또한 굉장히 미흡한 수준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교통사고를 당한 노인은 젊은 사람과 달리 작은 부상에도 회복이 느리고 치료 도중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할 수도 있다"며 노인들의 교통사고 위험성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노인들은 균형 능력의 감소, 보행속도의 저하 등 신체적 노화로 인해 교통사고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더욱 노인보호구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노인복지관 앞 도로 노인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시설물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 박지윤

    
해결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교육으로 노인보호구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향상할 수 있다. 그러나 운전자와 노인 보행자를 분류하여 대상에 따라 다르게 교육해야 한다.
 
운전자의 경우, 운전면허 필기시험 범위에 노인보호구역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주행시험의 경우 노인보호구역을 지나갈 때의 운전방식 등을 평가항목에 함께 넣는 등 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방법이 있다.

노인 보행자의 경우, 집단 교육이 쉬운 경로당이나 복지관 같은 장소에서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 그들 스스로 교통 법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해야 한다.
  
▲ 불법주차 차량들 노인보호구역을 따라 길게 늘어선 불법 주차 차량들이다.
ⓒ 최인선

 
추가로 복지관에 종사하는 사람들 또한 노인보호구역과 교통 법규에 관한 교육을 의무적·정기적으로 받도록 하고, 시설 주변에 노인보호구역이 설치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정 신청을 해야 한다. 노인들이 자주 통행하는 곳이나 교통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곳은 시각장애인이 활용하는 벨과 비슷한 '보행도움벨'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노인보호구역이 적극적으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비단 특정 사람들의 노력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자체는 직권 판단으로 노인보호구역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을 찾아 지정하고, 노인들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운전자는 단속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안전하게 운전해야 한다.
 
거주자 또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지자체, 운전자, 거주자의 노력이 삼박자를 이룰 때 비로소 노인의 안전한 보행이 보장되는 사회로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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