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하고 주저하는 건 모두의 이야기… ‘공주 햄릿’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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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새로운 ‘햄릿’ 선봬… 옛 비유·남성 편향성 지워 현대화
국립극단 신작 ‘햄릿’은 우유부단한 원작의 왕자 햄릿이 아닌 복수를 향해 달려가는 공주 햄릿을 전면에 세웠다. 사진은 ‘햄릿’을 지휘한 부새롬(오른쪽) 연출가와 공주 햄릿으로 출연하는 배우 이봉련. 국립극단 제공

최근 주목받는 연극계 창작진인 부새롬 연출가와 정진새 작가는 지난해 봄 셰익스피어 ‘햄릿’을 두고 머리를 맞댔다. “400여년 지난 희곡을 현대와 공명하는 얘기로 새로 다듬고 싶어서”였다. 서사에 녹아있는 난해한 옛 비유와 여성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솎아내던 둘은 곧 이런 생각이 다다랐다. ‘햄릿부터 바꿔보자.’

그렇게 복수 앞에 고뇌하고 주저하던 왕자 햄릿은 단죄를 향해 달려가는 ‘공주 햄릿’이 됐다. 바로 국립극단이 서울 명동예술극장에 올리는 ‘햄릿’이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부 연출가는 “극을 선악과 정의에서 갈등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그리고자 했다. 그래서 왕자 햄릿을 여성이 연기하는 젠더 프리 캐스팅보단 얼개 전체를 바꾸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으로 꼽히는 ‘햄릿’은 1601년 집필 이래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희곡 중 하나다. 지난해 조사에서 고선웅 연출가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 이어 ‘국립극단 가장 보고 싶은 연극’ 2위에 올라 70주년 라인업으로 편성됐다.

기대를 모으는 건 공주 햄릿을 연기하는 배우 이봉련이다. 2005년 뮤지컬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로 데뷔한 그는 탁월한 인물 소화력으로 대학로에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검술에 능한 해군 장교 출신으로 그려지는 공주 햄릿에 인간적인 입체감을 덧씌웠다. 이봉련은 “복수를 향해 투사처럼 달려드는 인물은 오히려 전형적일 듯 했다”면서 “행위에서 선악이 동시에 드러나고 단죄의 열망 한편에서 두려움이 피어나는 그런 인물로 햄릿을 해석했다”고 말했다.

영화로도 진출해 ‘옥자’ ‘택시운전사’ ‘82년생 김지영’ ‘버닝’ 등 굵직한 작품을 거친 이봉련은 최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도 미스 김 역으로 출연해 코로나19 여파 속 흥행에 힘을 보탰다. 조연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가 스크린 너머로 전하는 존재감만큼은 늘 강렬했다. “연기는 전쟁 같아서 매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의 다짐이 이룬 성과였다.

특히 ‘햄릿’에는 데뷔 후 15년 동안 끊임없이 새 얼굴을 탐구한 그의 고민이 두루 녹아있다. 그는 “배우는 자신의 한 부분과 배역을 연결짓는 일인데 때로 완전히 대면하기 어려운 역할도 존재한다”며 “‘햄릿’도 나의 소소한 경험과 극의 큰 세계가 맞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전했다.

무대디자이너 여신동이 만든 이번 무대는 과거 많은 ‘햄릿’이 고풍스러운 성을 배경으로 했던 것과 다르게 여백이 가득하다. 비·바람·흙 등의 오브제와 버무려져 햄릿이 처한 막막한 현실을 고조시킨다. 또 각색에서 선명해진 기성세대(클로디어스·거트루드)와 젊은 세대(햄릿·오필리어)의 대립도 주목할 부분이다. 부 연출가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세대 갈등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다듬고 연습 역시 두달 가량 빈틈없이 공들인 ‘햄릿’이지만 제작진과 배우들은 초조하다. 코로나19 때문이다. 당초 지난달 27일 선보이려다 미뤄진 ‘햄릿’은 최근 3차 대유행으로 이달 17일 개막마저도 잠정 연기했다.

하지만 명동예술극장 무대는 여전히 설치 중이고, 배우들은 방역 속에서 리허설을 거듭하고 있다. “언제든 최선의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에서다. 부 연출가는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연극도 잠시 멈춰야야하겠지만, 예술은 삶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서 “극장에서 안전하게 관객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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