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올해는 외국인들 더 많이 고민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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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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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외국인 투자자는 삼성전자(005930)를 530만주 가까이 매도했다. 매수 규모를 제외한 순매도 물량도 318만주가 넘는다. 이날은 삼성전자의 향후 주가를 비관적으로 볼 특별한 이유가 없는 평범한 거래일이었다.

몇몇 금융투자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고평가 돼 외국인들이 수익을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국내에 투자했던 자금을 다른 신흥국 시장으로 옮기기 위해 국내 증시의 대표 종목인 삼성전자 주식을 판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 대한 투자 규모를 키우려 하면 어김없이 삼성전자부터 산다. 반대로 자금을 빼야 할 때도 삼성전자를 먼저 매도한다.

이런 행태의 투자는 지난해 증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첫 2800선을 밟으며 호황을 누리자 외국인들은 삼성전자를 적극 매도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1월 1일~12월 30일) 외국인은 삼성전자 우선주를 8169만4300주(4조4991억6400만원) 순매도했다.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다. 두 번째로 많이 내다 판 종목은 삼성전자 보통주였다. 8621만8200주(4조3270억2000만원)를 순매도했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 우선주를 모두 9조원 가까이 내다 판 셈이다. 세 번째로 많이 판 현대차(2조2857억4900만원)와 비교해도 큰 격차다.

외국인들이 별 고민없이 삼성전자로 한국시장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것은 삼성전자가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삼성전자 우선주가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76%에 달한다. 한 기업이 발행한 주식이 전체 시장의 4분의 1을 좌우하는 구조인 셈이다. 유가증권 시장 시가총액을 보면 삼성전자는 483조5524억원(12월 30일 기준)이다. 2위인 SK하이닉스(86조2683억원) 시총의 5.6배다.

삼성그룹에 다니는 직원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삼성은 삼성전(前)자와 삼성후(後)자가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이익이 다른 삼성그룹사들을 압도하면서 나온 말이다. 국내 증시에서도 이 말이 그대로 통용되는 것이다.

해외 선진 시장을 보면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 애플(2조2730억달러·이하 2020년 12월말 기준), 알파벳(1조1760억달러) 등 1조 달러를 돌파한 거대 기업들이 있지만 페이스북(7743억6500만달러), 테슬라(6585억8300만달러) 등도 이에 못지않은 기업 가치를 쌓아올리고 있다. 투자자들은 어떤 기업의 주식을 사야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많은 투자자들과 증권회사들은 올해 코스피지수가 3000선을 넘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펴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계속되면 국내 증시가 3000선에 안착하는 일은 올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지난해 한국 증시는 한국 기업들의 가능성을 여실하게 보여준 한 해였다. 7월에 상장된 제약‧바이오 분야의 SK바이오팜은 상장 반 년 만에 시가총액이 12조원에 육박했다.

게임,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등 기존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분야의 기업들도 약진했다. 카카오게임즈(9월 상장‧3조4100억원), 빅히트엔터테인먼트(10월 상장‧6조원)도 수조원대의 기업으로 도약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반도체 밖에 없는 줄 알았던 국내 기업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보여준 한 해"라는 평가도 나왔다.

올해는 이런 여세를 더욱 몰아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시가총액이 늘어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만 바라보지 않고 무슨 종목을 매수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장을 만들 때다.

[정해용 기자 jh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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