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 준비…나는 넘어진 그 자리에 머물지 않기로 했다

입력
수정2021.11.06. 오후 3:33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토요판] 양선아의 암&앎
(3) 항암 전 준비

33살 내가 43살의 나에게
타임캡슐 묻은 편지 도착
“넌 어려움 이겨내는 사람”
신이 과거 통해 말 거는 듯

항암 전엔 미리 치아점검
지나친 부작용 우려보단
역할모델 찾는 게 중요해
냉정한 진단에 속상했지만
치료계획 완료…용기 내기로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선배! 회사에서 10년 전 묻은 타임캡슐 오늘 뜯었는데 거기서 선배가 쓴 편지가 나왔어요. 내일 갖다줄게요.”

지난해 1월2일, 새해가 오든지 말든지 각종 검사 결과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후배 제니(별칭)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세상에! 정말 신기하다. 10년 전 나는 내게 뭐라고 썼을까?”

10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다. 33살의 내가 43살의 내게 편지를 썼고, 하필 이 시점에 그 타임캡슐이 개봉됐다는 사실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기다렸고, 노란 봉투에 ‘2020년 미래의 양선아님께 보냅니다’라는 라벨이 붙은 편지를 건네받았다. 봉투 안에는 노란색 편지지에 내 손으로 직접 쓴 편지와 ‘2020년 지난 10년 동안 양선아가 달성한 것들은?’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내가 10년 동안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 15가지’가 적혀 있었다.

10년 전 나에게 받은 위로


“43살의 양선아씨~ 그동안 잘 지냈나요? 와우, 벌써 40대 양선아가 됐다니 정말 세월 한번 빠르군요. 지난 10년 동안 당신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정말 궁금해요”라고 시작하는 편지는 “43살의 양선아는 여전히 소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인생을 즐기며 긍정하며 행복하게 살길 바라요”라는 바람을 담고 있었다. “2009년 현재 선아 넌 너무나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 그리고 사랑스러운 딸과 뱃속에 새 생명 ‘민’을 지닌 너무 행복한 여자예요. 건강팀에서 김미영 선배와 즐겁게 일하고 있고…”라며 10년 전 나의 상황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러면서 “10년 뒤엔 기사를 쓸 때 자신감 넘치고 날카롭고 재밌고 심층적인 기사를 쓰길 바라요. 그때는 회사에서 중역을 맡고 있을지도 모르죠. 10년 후엔 좀 더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의 폭도 넓어지고 깊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두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서 두 아이와 잘 소통하는 그런 엄마가 되길 빌게요”라고 썼다. 또 “선아! 넌 항상 웃으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현실을 잘 이겨내는 그런 모습이 장점이야. 그리고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도…. 10년 후에도 그런 장점을 그대로 지니고 있길 빌게. 양선아, 10년! 열심히 잘 살았어! 멋져”라며 글을 맺고 있었다. 편지를 읽는데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10년 전의 내가 10년 후의 나에게 준 조언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현실을 잘 이겨내는 것이 장점”이라는 대목을 읽을 땐 신이 이 편지를 빌려 내게 들려주는 말 같았다. 지금 매우 고통스럽지만, 너라면 이 고통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너는 또 이 고통을 통해 성장할 것이라고 말이다.

버킷리스트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책 1년에 50권씩 10년 동안 500권 읽기, 특종 또는 심층 기획 기사,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기사 5개 이상 만들기, 엄마와의 여행 및 엄마 편안하게 해드리기, 남편과 사랑하고 이해하며 즐거운 추억 만들기, 두 아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두 아이와 잘 소통하기, 사랑하는 친구들과 동생들, 선후배들과 추억 많이 쌓고 좋은 관계 맺기, 내 이름으로 책 쓰기, 우리집 하나 장만하고 우리집 예쁘게 꾸미기 등등이었다. 해외여행 많이 다니기나 해외연수 같은 목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룬 것으로 보였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내가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뛰었고 상당한 성취를 이뤘다. 당시엔 너무나 건강했기에 ‘건강’이나 ‘장수’가 버킷리스트에 들어있지 않았다. 아마도 44살의 내가 5년 뒤, 10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면 ‘몸과 마음의 건강’ ‘장수’ ‘암 완치’가 첫째 항목이 되지 않을까. (이번엔 10년 후보다는 5년 후 암 완치 판정을 받을 내게 편지를 쓰고 싶다. 아직 편지는 미완성이지만, 조만간 쓸 생각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항암 전엔 치과 진료를


편지를 읽은 뒤 수시로 흔들리던 마음도 조금씩 잡혔다. 유전자 분석 유방암 진단법인 ‘맘마프린트’ 검사 결과까지 듣고 나면 치료 방향이 구체적으로 잡힌다고 했다. 길고 길게만 느껴졌던 검사와 진단, 치료 방향 수립 과정이 마무리될 것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현실을 잘 이겨내려면 가만히 있는 것보단 움직이는 것이 낫다. 그래서 나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암이나 건강 관련 책을 찾아 읽었고, 주변에 유방암을 진단받고 잘 극복한 사람들을 수소문해 연락하기 시작했다. 또 유방암 환우들이 많이 모여 있는 ‘유방암 이야기’ 카페를 부지런히 드나들며 실질적으로 항암이나 수술 전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총 12만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이 카페는 ‘정보의 보고’였다. 수많은 유방암 경험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실질적인 준비를 할 수 있는 조언을 해주었다.

암 경험자들은 항암 전에 미리 해두어야 할 일로 치과 진료를 첫번째로 꼽았다. 독한 항암제가 몸에 들어가면 내 몸을 각종 세균으로부터 지켜주는 백혈구 수치가 낮아지면서 각종 감염에 취약해진다. 이런 상태에서 치과 진료를 받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충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미리 충치 치료를 하고, 스케일링도 미리 해두는 것이 좋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나는 치과에서 치아 상태를 점검하고 스케일링을 했다.

여기에 내 의견을 덧붙이자면 죽염을 준비해 하루에 세번 이상 입과 목을 헹구라고 권하고 싶다. 항암을 하면 입안에 염증이 생기는 구내염이 부작용으로 따라온다. 피로, 스트레스, 비타민과 철분 등 각종 영양 결핍, 면역 장애 등으로 발생하는 구내염은 대표적인 항암 부작용이다. 항암을 하게 되면 속이 쓰리고 메슥거리거나 구토 증상이 생기는데 구내염까지 생겨 잘 먹지 못하면 항암을 견뎌낼 수 없다. 따라서 암 환자라면 구내염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병원에서는 구내염 예방을 위해 탄툼 가글액을 처방해준다. 박하향의 진한 녹색인 이 용액은 벤지다민염산염이 유효성분이다. 에탄올이 포함된 탄툼액으로 입을 헹구면 입안이 얼얼해지면서 마치 치과에서 치료 전 마취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지만, 쉽사리 탄툼액에 손이 가지 않는다. 탄툼액을 쓰기 힘들 때 내가 애용한 것은 죽염수다. 죽염은 3년 이상 자란 왕대나무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천일염을 밀봉한 뒤 구워서 만든다. 죽염은 항산화력이 뛰어나 입속 세균 억제 및 살균 효과가 있고 구취 제거 효과가 있다. 나는 죽염을 물에 적당량 녹여 수시로 입과 목을 헹궈주었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죽염수로 입과 목을 헹구는데, 항암과 수술,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구내염에 걸린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최근 <에스비에스>(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가수 이승기씨도 자신의 목 관리를 위해 매일 아침 죽염수로 입과 목을 헹군다는 얘기를 하던데 어찌나 반갑던지! 암 환자는 물론이고 건강한 사람들도 목 건강과 감기 예방을 위해 죽염수를 활용하면 좋겠다.

다음으로 항암 전 또 해야 할 일은 예방접종이다. 독감 및 폐렴 예방접종을 미리 해두면 안심이 된다. 항암을 하게 되면 감염에 취약해지는데 예방접종을 통해 항원에 대한 항체 시스템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유방암 환우들은 항암을 하면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눈썹까지 빠지게 되므로 가발을 준비하고 눈썹 문신도 할 것을 권했다. 9년 전 눈썹 문신을 한 나는 다시 눈썹 문신을 하려고 여러 업체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카락도 없고 화장도 안 하는데 눈썹 문신을 하게 되면 새까만 눈썹만 너무 튈 것 같아 결국 하지 않기로 했다.

가발은 환우 카페에서 소개된 가발가게 세 곳을 둘러보고 인모 가발 1개, 모자 가발 1개(스타일 유지 가발인데 모자를 함께 써야 하는 가발), 머리띠 가발 1개를 샀다. 실제 사람 머리로 만든 인모 가발 비용은 40만~100만원대로 다양했고, 인모가 아닌 고열사로 만든 스타일 유지 가발은 10만~40만원대였다. 머리띠 가발은 6만~10만원 내외로 머리띠에 앞머리 부분만 붙어 있는데, 머리띠 가발만 두르고 비니(머리에 달라붙게 뒤집어쓰는 동그란 모자)를 쓰면 되니 편리하다. 다만, 이 가발은 오래 쓰면 귀 옆이 눌리면서 많이 아프다.

모든 과정을 거쳐보니 가발은 항암 전에 구매하기보다, 항암 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할 때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발가게에서 가발을 사면 ‘셰이빙’(암 환우와 암 관련 업체들은 ‘삭발’보다 이 용어를 자주 쓴다)을 무료로 해주고 비니도 선물로 주는데, 그런 기회를 활용하면 좋기 때문이다. 또 처음부터 비싼 인모 가발을 사기보다 스타일 유지 가발이나 머리띠 가발을 사서 착용해보고 자신의 스타일을 확인한 뒤, 또 가발을 자주 사용할 것 같다면, 그때 인모 가발을 사도 늦지 않다. 인모 가발을 사놓고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항암이나 수술, 방사선 치료를 하면 여러 부작용도 생기는데 많은 환우가 ‘암 전문 양한방 통합병원’에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나 역시도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암 전문 병원을 들러 상담을 받았다.

미리 겁먹거나 단정하지 말기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 실제로 챙겨야 할 것은 이렇게 많다. 공포나 두려움,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아까운 시간이다. 간혹 환우 카페에 올라오는 각종 부작용, 하소연들을 보면서 치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암을 잘 극복했거나 부작용이 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환우 카페에 글을 자주 쓰지 않는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부작용은 개인차가 크다.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알아둘 필요는 있지만, 미리 겁먹거나 모든 부작용을 나도 똑같이 겪을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지인들을 통해 암을 잘 극복한 사람들을 만나 어떻게 자신의 생활을 관리했는지를 듣고 역할모델을 찾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항암이나 수술 전 체력 확보를 위해 세 끼 식사를 잘하고 운동도 꼬박꼬박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금세 맘마프린트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 됐다. 검사 결과는 아쉽게도 항암을 피할 수 없는 ‘고위험군’에 속했다. 항암을 안 한다면 암이 재발할 위험률이 29%로 높은 편에 속했다. 유방외과 의사는 항암을 해서 암의 크기를 줄여 부분절제를 시도해보자고 했고, 이제부터는 종양내과 의사를 만나 항암을 하라고 했다.

종양내과 의사는 “유방암 3기로 현재 상태에서는 수술할 수 없어 항암을 통해 수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다소 냉정하고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의사의 어투에 내 마음은 ‘쿵’ 또 한번 내려앉았다. 총 8회 3주 간격으로 항암 치료를 하는데, 중간에 검사해서 항암 효과를 확인한다고 했다.

한달 동안 진행된 검진과 진단, 치료 계획 수립 과정이 완료되니 차라리 마음이 후련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갑상선암을 경험한 지인 황소(별칭)가 선물해준 <넘어진 그 자리에 머물지 마라>라는 책을 읽었는데, “넘어진 그 자리에 머물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다시 항암 공부를 시작했다.

양선아 기자




▶ 2020년 연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완치 판정을 받은 ‘암 유병자’가 2018년 기준 2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다수가 자신 또는 가족이 암 환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2019년 말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한겨레> 사회정책부 양선아 기자(anmadang96@kakao.com)가 체험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