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만화가 윤서인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조롱하고 욕보이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그는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일파 후손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을 비교하는 사진과 함께 "사실 알고 보면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는 글을 올렸다. 해당 글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졌고, 비판이 쏟아지자 윤씨는 이 게시물을 삭제했다.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14일 "저런 자들과 동시대를 살아야 한다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이 함께 몰려 온다. 우리가 제대로 친일청산을 했다면 반민족적이고 반사회적인 언동을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독립운동가를 능멸한 만화가를 처벌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보수 성향 만화가이자 유튜버인 윤씨는 종종 모욕적인 언동으로 대중의 비판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19년 조두순 사건을 희화화했다가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소송을 당해 2000만원을 배상하기도 했다.

잊을 만 하면 불거지는 친일 망언들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  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우리 사회에 불쾌한 논란을 일으키는 윤씨의 그릇된 행태는 어디에서 나온 것을까? 만일 독일에서 나치를 옹호하는 망언을 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는 사회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윤씨의 얼토당토 않은 황당한 막말에 분노하면서도 '토착왜구'가 여전히 날뛰는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안타까움과 부끄러운 마음을 떨칠 수 없다.

해방과 독립이 이뤄진 이후에도 '토착왜구'의 준동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을 꼽을 수 있다.

1948년 9월 국회를 통과한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구성된 반민특위가 친일 부역자 처벌에 나섰으나, 친일세력과 손을 잡은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와해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반민특위는 총 682건을 조사해 221건을 기소했으나, 징역형을 받은 사람은 고작 14명에 불과했다. 일제강점기 34년 11개월간 자행된 친일파의 악행에 대한 청산이 이렇게 허망하게 좌절된 것이다.

중국이나 구소련, 독일, 북한 등 대다수 국가들이 엄정하게 과거청산을 한 반면 우리는 제대로된 청산을 해내지 못했다.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고문했던 친일경찰이 해방후 반공경찰로 둔갑해 승승장구했다. 그들은 반공을 빌미로 민주인사들을 체포하고 고문했다. 일본군 부역자들이 국군의 주류를 이뤘고, 행정부 상당수가 일제 부역자들이었다. 그들은 일제 시대에는 친일로 부와 권력을 누렸고, 해방 후에는 미군정과 이승만ㆍ박정희 독재에 기생해 기득권세력이 되었다.

독립운동에 대한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문제이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자손들은 가난과 핍박으로 인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친일파 자손들이 일본 유학을 하고 돌아와 관계와 학계의 주류를 형성했다. 해방후에도 여전히 정관계와 학계를 장악한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 결과 올바른 역사교육은 이뤄지지 않았고, 출세와 성공을 위한 기능적 교육이 판을 쳤다. 역사교육은 그저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구한말 의병으로부터 이어지는 독립운동의 빛나는 역사는 버려지고 잊혀졌다.

급기야 노골적으로 친일을 옹호하는 윤씨와 같은 자들이 '역사 테러'를 자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자들과 독립운동가들을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하는 자들,  일본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산다는 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독초처럼 준동하고 있다. 그리고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미완의 친일청산을 완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과거 보수 독재정권에 기생한 친일파와 친일의 역사를 몰아내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던지고 고초를 겪은 독립운동 선열들을 모욕하는 이들이 활개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중국 흑룡강신문 한국자문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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