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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K' 두 눈을 의심했던 이유

아이즈 ize 글 김수현(칼럼니스트)

사진출처=방송캡처

일요일 밤, 여느 때처럼 무념무상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문득 한 채널에 시선이 꽂혔는데, 화면 속에는 성시경, 김종국, 백지영, 임창정 등 TV에서 익숙하게 봐온 가수들이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음악 프로그램일 것이라고는 무의식 중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수들이 떼로 출연하는 데도 말이다. 토크쇼거나 사연 프로그램이거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거나 뭐 그중 하나겠지 싶었다. 헌데 카메라에 변진섭, 조성모, 이수영까지 잡히는 거다. 그제야 더 흥미가 생겼다. 이 조합은 뭐지? 아, 새로 생긴 트로트 프로그램인가?

 

잠시 머물러 화면을 지켜보니 나의 예상은 200% 벗어났다. 음악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던 거다. 갑자기 웬 음악 다큐? 에이, 설마. 명곡 다시 부르는 오디션 프로그램이겠지.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십수 년 사이 정통 음악 프로그램은 서바이벌의 인기에 밀려 방송가에서 찬밥 신세나 다름없지 않았던가. 그나마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 EBS ‘스페이스 공감’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나 그마저도 코로나 여파로 쉽지 않은 와중에 음악 다큐라니.

 

지난 3일 첫 방송된 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를 기록하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2년간 205명의 대중음악인을 대상으로 총 1만5000분 분량의 인터뷰를 해냈단다. 54개 전설의 무대, 121명의 가수가 출연할 예정이다. 스케일 면에서도 역대급이지만, 무엇보다 ‘아카이빙’이라는 시도 자체가 신선했다. “대한민국은 늘 미래지향적이라 모든 것이 초고속 성장이라 지나간 일을 기록하고 평가하는 것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라는 박진영의 말에 밑줄 긋고 동감하는 바다. 사회, 정치적 역사도 아직 제대로 정리가 안 된 마당에 하물며 대중음악사라고 아카이빙이 되어 있겠나.

사진출처=방송캡처

 

실제로 방송에서 가수들은 “초기 자료는 없다”(싸이), “나 역시 악보 하나 구하는 게 어렵다”(방시혁), “회사 정리하면서 모든 자료가 없어졌다”(이상민)라고 토로했다. 흩어진 한국 대중음악의 조각들을 한데 모으려는 제작진의 그 마음만으로도 무조건 본방 사수!를 외치고 싶었달까. 더불어 당장이라도 본가로 찾아가 내 방구석 어딘가 묻어둔 CD, 테이프를 먼지 털고 발굴하고 싶은 마음이 달뜨게 일었다.

 

방송은 기획만큼이나 신선했다. 복스 미디어사의 ‘익스플레인’ 시리즈를 보는 듯, 감각적인 연출과 세련된 화면 구성이 눈길을 끌었다. 단순히 ‘라떼는 말이야’ 토크가 아닌, 음악에 의한, 음악을 위한, 오로지 음악을 향한 프로그램의 방향성에서 제작진의 진심이 느껴졌다. 출연한 가수들 역시 오랜만의 음악 프로그램에 한껏 신이 난 것이 안방까지 고스란히 전해졌을 정도니까.

 

방송을 보며 여러 번 놀라고, 여러 번 뭉클했지만 그 중에서도 작사가 박주연의 이야기는 실로 놀라웠다. 필자는 지금껏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의 가사를 당연히 남성 작사가가 쓴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성 작사가 박주연이 쓴 글이었다니.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그때가 너도 가끔 생각나니”, “너의 새 남자친구 얘길 들었지/나 제대하기 얼마 전”이라는 문장은 대체 얼마큼 공감력이 좋아야 쓸 수 있는 것일까.

사진출처=방송캡처

김민우의 ‘사랑일뿐야’도 마찬가지다.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 그댈 남겨두긴 싫어/삼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댄 나를 잊을까”를 지금껏 당연히 남성이 쓴 글인 줄 알았다. 이 역시 박주연 작사가가 쓴 글이었다. 박주연 작사가는 학창시절 쓴 일기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 시절 감성, 그때의 공기를 본인이 쓴 일기장에서 힌트를 얻는다고. 우리가 사랑했던 그의 가사들은 모두 이렇게 탄생한 것들이었다. 아카이빙은 역시 중요했다.

 

그렇게 방송을 보고 잠을 이룰 수 없어 놓쳤던 첫 회까지 연달아 감상했다. 역시나 좋았다.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방송 분량을 놓고 아쉬워하는 모양새다. 필자 또한 내가 좋아했던 가수들이 언급되지 않아 잠시 잠깐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대중음악을 아카이빙하겠다는 시도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발걸음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 어떤 음악인이 일요일 밤을 따뜻하게 해줄지 벌써 기대된다.

 

김수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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