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상원의원에서 최고령 대통령 오른 조 바이든은 누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8일 02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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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새 대통령으로 유력한 조 바이든(본명 조지프 로비넷 바이든 주니어) 민주당 후보는 1942년 11월 20일 펜실베이니아주의 스크랜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 바이든 시니어와 어머니 캐서린 진 바이든 사이에서 2남2녀 중 장남으로 자랐다. 그의 집은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다.

당초 아버지인 바이든 시니어는 원래 동부 해안에서 요트를 즐길 정도로 생활이 넉넉했다. 하지만 직장을 잃으면서 순식간에 가세가 기울고 바이든 후보는 외조부모 집에 잠시 맡겨진 적도 있다. 바이든 후보가 지금 살고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으로 이사를 한 뒤로는 아버지가 중고차 딜러로 성공하면서 다시 가정을 일으켰다. 바이든 후보는 선거운동을 하면서 “아버지는 항상 저에게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가 얼마나 자주 쓰러졌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일어서느냐를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자주 언급했다.

바이든 후보는 학창시절 반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리더십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지독한 말더듬증도 겪었다. 한 때는 교사가 발표를 하다 말을 더듬는 바이든 후보를 비꼬면서 “바-바-바 바이든”이라고 놀린 적도 있다. 이때 바이든 후보의 어머니가 당장 학교로 찾아와 “내 아들을 놀리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따졌다. 바이든 후보는 거울 앞에서 시 낭송을 하면서 말더듬증을 고치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성인에 돼서도 완전히 극복하진 못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가 최근 토론이나 연설 등에서 말실수가 잦은 것도 말더듬증이 원인이란 추측도 나온다.

바이든 후보는 21살 때 친구들과 바하마로 여행을 떠났다가 한 고급호텔의 해변에서 첫 번째 아내 니일리아를 만났다. 비싼 호텔의 방값을 낼 돈이 없던 그는 호텔 타월을 하나 걸치고는 마치 자신이 이 호텔 손님인 것처럼 니일리아에 접근했다고 한다. 그 때 바이든 후보는 “저는 30살에 상원의원을 할 거고, 나중에 대통령도 할 것입니다”라고 허풍을 떨었다. 이들은 결혼해서 개 두 마리를 키웠는데 개 이름도 하나는 ‘상원의원’, 다른 하나는 ‘주지사’로 지었다고 한다.

30살에 상원의원이 되겠다는 그의 꿈은 현실이 됐다. 델라웨어대와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된 그는 1970년 카운티 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딱 서른 살이던 1972년 델라웨어주에서 최연소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공화당의 거물 현역 의원인 케일럽 보그스를 꺾은 상당한 이변이었다. 당시 주위에서 아무도 바이든 후보의 당선을 예상하지 못해 ‘투자’를 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사비를 털어가며 선거운동을 했다.

그의 인생 첫 비극은 이 즈음 찾아왔다. 당선 한 달 후 아내 니일리아가 세 자녀를 데리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오다가 트럭이 치였다. 이 사고로 아내와 13개월 딸이 숨졌고, 두 아들(보, 헌터)은 중상을 입었다. 2012년의 한 행사에서 바이든 후보는 당시를 회상하며 “생애 처음으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됐었다”고 회고했다.

충격에 빠진 바이든 후보는 의원직을 포기하려 했지만 동료 의원들이 극구 만류했다. 결국 아들들이 입원한 병실에서 그는 의원 선서를 하며 연방 정치인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가 아들들을 돌보기 위해 의회가 있는 워싱턴에 집을 구하지 않고 왕복 4시간 거리를 매일 기차로 출퇴근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싱글 대디’ 생활을 5년간 한 뒤 지금의 아내 질 바이든과 재혼했다. 그런데 이 결혼 과정은 쉽진 않았다. 질 여사가 바이든 후보의 청혼을 5번이나 거절했던 것. 질 여사는 2016년 언론에 “이미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보, 헌터)이 다시 엄마를 잃지 않으려면 내가 결혼에 대해 확신이 있어야 했다”며 결혼을 망설였던 이유를 털어놨다.

새 가정을 이룬 바이든 후보는 이후 미 의회에서 실력과 수완을 발휘하며 6선 의원으로 승승장구했다. 당내에서 중도 성향인 그는 의정 활동을 하면서 필요한 사안은 공화당과 유연하게 협력하는 등 초당적인 면모를 보여 왔다. 특히 고(故) 존 매케인 전 공화당 상원의원과 의회에서 동고동락하며 오랜 우정을 나눈 일화가 유명하다. 의회에서 외교위원장, 법사위원장 등을 역임한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선 8년 간 부통령을 지냈다.

화려한 이력 탓에 대권주자로 자주 거론됐고 실제 대통령이 되기 위해 많은 도전을 해왔다. 40대 대통령을 꿈꾸며 첫 출사표를 냈던 1988년 대선에서는 당내 경선에서 탈락하며 고배를 마셨다. 당시 바이든 후보는 영국 노동당 당수 닐 키녹의 선거 연설문 일부분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연설하면서 표절 의혹을 받았다. 그는 이 연설에서 자신이 집안에서 처음 대학을 갔고 조상 중에 광부가 있었다고 말했는데 이도 사실과는 달랐다. 경선에서 탈락한 후엔 뇌동맥류 진단을 받고 생사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두 번째 대권 도전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2008년이었다. 이 때는 오바마와 힐러리 대세론에 밀려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중도 사퇴했다. 2016년에는 아예 경선에 나서지 못했는데 여기엔 그의 인생 두 번째 비극이 작용했다. 2015년 장남인 보 바이든 전 델라웨어주 검찰총장이 뇌암으로 사망하면서 바이든 후보는 충격과 슬픔에 잠겨 결국 출마를 접었다.

그의 잇단 비극은 오히려 국민들의 동정심을 자극하고 그를 공감 능력 있는 정치인으로 만든 계기가 됐다. 이 같은 그의 치유와 통합 이미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저돌적인 성향과 대조되며 이번 선거에서 더욱 부각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걸어온 길
△1942년 11월 20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출생

△1965년 델라웨어대 졸업(역사학, 정치학 전공)

△1968년 시러큐스대 로스쿨 졸업

△1969년 델라웨어주 뉴캐슬 카운티 의원으로 선출돼 정계 입문

△1972년 델라웨어주에서 최연소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민주당, 이후 6선 성공)

△1987~1995년 상원 법사위원장

△1988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 출마했다가 실패 (1차 대선 도전)

△2001~2002, 2007~2008년 상원 외교위원장

△2008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 출마했다가 실패 (2차 대선 도전)

△2009~2016년 부통령 (버락 오바마 행정부)

△2020년 8월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 (3차 대선 도전)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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