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을 올 7월 예정대로 열려는 일본 정부가 대회 취소 여부를 결정하는 열쇠를 쥔 세계보건기구(WHO)에 거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일본의 바람과 달리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처음으로 올림픽을 취소 또는 연기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지난 19일 국회 참의원 공적개발원조(ODA) 특별위원회에 참석해 “공중위생 및 보건 분야에서 지금까지 했던 것 이상으로 WHO와 협력하겠다”며 WHO와 국제아동기금(유니세프) 등에 총 150억엔(약 1700억원)을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WHO에는 총액의 3분의 1인 50억엔을 낼 계획이다.

표면상 기부 이유는 ‘국제 공헌’이지만 속내는 중국 견제라는 게 일본 언론들의 분석이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WHO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의 선거 자금을 중국이 댄 것으로 알려졌다.

WHO는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를 결정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 바흐 위원장은 지난 12일 대회 개최와 관련해 “WHO의 조언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기부가 WHO에 대회 개최를 지지해 달라는 회유 카드로 해석되는 이유다.

일본 정부가 검사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코로나19 감염자 수를 최소화해 어떻게든 올림픽을 열려 한다는 지적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확산 초기 1500건이었던 하루 검사 능력을 지난 16일 현재 7504건까지 늘렸지만 실제 검사가 이뤄진 것은 여전히 하루 평균 1364건에 불과하다. 인구가 가장 많은 도쿄의 하루 검사 능력은 125건 남짓이다. 한국은 일평균 1만2000명을 검사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검사를 줄이려는 정황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일본의사회에 따르면 최근 20일간 보건소로부터 코로나19 검사를 거절당한 사례만 전국적으로 290건에 달했다.

일본 정부가 올림픽 개최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대회는 사실상 취소 또는 연기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바흐 위원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물론 (올림픽 정상 개최와) 별도의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일관되게 “예정대로 열겠다”고 밝혀온 바흐 위원장이 대회 취소 또는 연기를 시사한 것은 처음이다.

한편 일본 정부는 지난 2일부터 시행한 전국 초·중·고교 일제 휴교를 다음달까지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오후 총리관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책본부 회의에서 다음달 초 새 학기부터 학교 활동을 재개하기 위한 유의사항을 정리한 지침을 마련하도록 문부과학성에 지시했다.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은 “어린 학생들의 학습이 지연되고 스트레스가 높아진다”며 개학 강행 방침을 내비쳤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