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서인석의 촌철살인] 옛날에는 호환·마마가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이 무서운 시대가 되었을까?

서인석 / 기사승인 : 2021-01-22 18: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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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문화예술진흥원장/개그맨 서인석
한국대중문화예술진흥원장/개그맨 서인석

[매일안전신문] 어느 집안 가장이 힘들게 회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간다. 집 앞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초인종을 누른다? 아니, 그건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고, 지금은 어떨까?


스마트폰 문 여는 기능을 누르니 문이 열린다. 안으로 들어간 가장, 집안에는 썰렁한 기운만이 흐른다. 집안에 아무도 없는 걸까?


거실로 들어오니 아내가 거실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고 엄지손가락으로 연실 밀어대며 킬킬대며 웃는다. 아마도 조금 전 오이를 덕지덕지 붙인 본인의 얼굴을 찍어 올렸을 거다. 그리고 ‘좋아요’ 엄지 손가락 수를 세며 웃고 있겠지? 실제로 목소리도 한 번도 못 들어본 SNS상의 친구들을 상상하며.


집 안 거실 안에 들어온 가장이 아내에게 말을 한다. “나 왔어.”


그러나 "응'하는 대답 뿐,


고된 회사일을 마치고 들어온 남편의 목소리를 귀로만 건성으로 듣고 아내의 눈은 계속 스마트폰을 향해 있고 연실 웃는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얼굴에 붙은 오이가 같이 따라 웃는다.


남편도 역시 한 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카톡인지 문자인지 모를 것에 대한 답을 하며 마누라 얼굴을 쳐다보지는 않고 있다.


어렵게 시험관으로 낳은 아들이 있는 공부방으로 들어간다
”아들, 아빠 왔다“
아들은 입으로만 건성으로 대답한다.
”응, 아빠“
역시 아들의 두 눈은 스마트폰에 향해있고 두 엄지손가락은 분주하다. 스마트폰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아들이다.


아버지도 아내도 아들도 눈은 모두 스마트폰을 향해있다.


다음 날.


시골에서 할아버지가 서울 아들 집에 놀러 오셨다. 새로 산 아파트 이사 간 아들 집을 찾아 축하하러 오신 것이다.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미리 전화도 안 했다.


“내가 '짠' 하고 나타나면 얼마나 좋아할까? 매일 보고 싶은 우리 집 내 새끼, 우리 집 제사를 지내줄,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우리 집 대를 이을 내 손주 ‘이대 독자‘”


할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쓰던 2G 폴더폰을 열어 며느리에게 전화한다. 시아버지에게 전화 받은 며느리는 전화를 받지 않고 간단한 문자와 함께 현관 입구의 출입 비밀번호만 보내온다.


문자의 내용은 간단하다.
“연락도 없이 오심 어떡해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요? 지금 에스테틱이니 집에 들어가 계세요”


에.스.테.틱? 그 거시기가 뭐시었냐? 아무튼 전화도 못 받을 정도로 중요한 일을 하나 보다.


보고픈 마음에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서울 외동 아들 집을 찾아오신 할아버지, 그제야 시장기를 느낀다. 아파트 앞에서 서성이던 할아버지, 아파트 앞 패스트푸드 체인점으로 향한다.


물어물어 페스트푸드점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영어로 된 메뉴판을 기웃거리다가 먹음직스럽게 찍혀있는 사진에 있는 햄버거 한 개를 가르치며 “저거 주세요.”라고 주문하자, 유니폼을 입은 젊은이는 오더는 자판기에서 하라고 한다.


자판기 앞에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려 순서가 된 할아버지, 자판기에서 침침한 눈을 찡그리며 이것저것 눌러보지만, 결재는 안 되고 계속 주문하라는 안내 창만 뜬다.


뒤에서 짜증난 듯한 젊은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참 할아버지, 그것도 몰라요?” 라며 번개처럼 손가락을 놀려 주문을 해준다. 기계에서 토해낸 조그만 주문 종이 쪼가리를 들고 서성이는 할아버지, 몹시 시장하다.


이제나~저제나~나오려나 기다리던 할아버지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몇 번이고 "아직이냐고" 물어본다. 돌아오는 대답은 “번호판 울리면 찾아가세요“


결국 인내의 시간이 지난 후 햄버거 한 개를 받아들었으나 앉을 자리가 없다. 이곳은 지하철처럼 노약자석도 없고 양보해주는 젊은이도 없다.


빈자리를 찾지 못해 서성거리다 결국 빈자리를 찾지 못해 손가방에 햄버거를 욱여넣은 할아버지, 몇 번이고 아들에게 전화해보지만, 아들의 핸드폰은 어느 나라 말인 줄 모르는 기계음의 빠른 목소리만 반복하여 들릴 뿐이다.


택시 정류장으로 향한다. 시골집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이다.


택시 정류장에 아까부터 줄을 섰건만 뒤편에서 기다린 젊은이가 예약된 택시라며 먼저 잡아타고 가버린다. 택시는 계속 도착하나 전부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한 택시만 있고 할아버지가 탈 택시는 없다.


기다린 끝에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여 시골 가는 버스표를 끊으려하자 오늘 버스표는 없단다. "저렇게 빈자리가 많은데 표가 왜 없냐" 했더니 전부 예약이 됐단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셨을까?


따지고 보면 이 가족들의 그 누구도 잘못은 없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가족에게 예약 없이 올라오셨으므로 이 가족들의 일상을 깼다. 금이야 옥이야 논 밭 팔아 외국 유학까지 보낸 외동아들은 회사에서 회의 중이라 전화를 무음으로 돌려놓아 받을 수 없다.


며느리도 비싼 돈 주고 월 정권을 끊은 에스테틱 예약을 했다. 그 예약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오셔도 깰 수 없다. 한 번 예약을 깨면 그 돈과 더불어 포인트점수가 날아간다. 그래서 우선 집에 들어가 계시라고 친절히? 문자를 했다.


하나뿐인 손주도 평소에 할아버지가 답답할 뿐이다. 그 쉬운 걸 몇 번이고 물으신다. 그리고 가끔 무슨 조상님 제사~제사 말씀하시는데? 그걸 왜 할까? 하는 생각이다.


패스트푸드점도 마찬가지, 택시도 마찬가지, 터미널도 마찬가지, 누구의 잘못도 없다. 그럼 할아버지의 잘못이겠네? 그것도 아니다.


할아버지와 자식들은 이미 인류 ‘종種’자체가 틀려서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폴더폰을 쓰는 아날로그 시대의 사람인 ‘아날사피엔스’이고, 그의 자식들은 디지털시대가 만든 스마트폰이 놓은 신인류, 스마트폰이 뇌이고 손인 사람들 ‘포노사피엔스‘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호환·마마가 무서웠다. 호랑이와 마마(우두)가 무서웠던 말이다. 하지만 호랑이도 마마의 위험도 없는 지금, 무엇이 무서운 시대가 되었을까?


백세시대. 노인들이 무서운 것은 경제력, 체력, 다음으로 스마트폰이다.


한국 대중문화예술 진흥원장/개그맨 서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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