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마음들이 소설의 재료가 되는지도 모른다고, 정세랑의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다.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 일가의 가계도로 시작한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며 족보를 줄줄이 읊는 신약성서 〈마태복음〉이 떠올랐지만 소설 쪽이 좀 더 공정했다. 시선의 가계도에는 첫 번째 남편, 두 번째 남편, 며느리와 수양딸, 수양 손녀 그리고 둘째 남편의 전 부인까지 적혀 있으니까. 요즘에도 족보에 남자 이름만 올리는 집이 있으니 소설은 현실보다도 공정하다.
시선은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어느 쪽을 펼쳐도 흥미롭고, 다 읽고 나서도 전부 이해되지 않는 책이라고나 할까. ‘한국에서 태어나 하와이에 갔고, 트럭을 몰다 독일인 예술가를 만났고, 뒤셀도르프에서 살다 귀국해 저명한 미술평론가가 되었고, 외국인과 한국인 남편을 맞아 총 두 번 결혼을 했다?’ 불충분하다. ‘예술가를 파멸로 몰아 넣은 마녀라고 불렸지만 실은 가해와 피해를 엄밀하게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너무 평범하다. 도통 고갱이에 닿을 수 없는 심시선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세상을 떠났고 책과 후손을 남겼다.
시선은 큰딸에게 절대 자신의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들도 있는데 왜 딸에게?”라는 질문에 그는 “셋째요? 걔한테 무슨”이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서일까. 시선이 죽고 난 뒤 10년 동안 엄마의, 할머니의 유언을 잘 지키던 가족들은 ‘올해는 엄마 제사를, 그것도 하와이에서 지내야겠다’는 큰딸 명혜의 선언에 하와이로 향한다. 항공사를 정년퇴직한 첫 사위 태호부터, 수양 손녀이자 새에 환장하는 초등학교 4학년 해림까지. 가족 12명은 한때 시선이 살았던 이국의 섬에서 각자 방식으로 심시선을 만나고 기린다. 시선의 후손들이니 그 여정이 재밌는 것은 당연하다.
각 장에는 시선이 쓴 책이나 강연, 연설의 한 부분이 짧게 나와 그 장을 예언처럼 이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서 마음이 저렸다. 그럴 수 없으므로 다른 책들을 지어내보았다. 〈도정으로부터,〉 〈옥순으로부터,〉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이름을, 엄마와 숙모, 이모와 고모의 이름을, 나와 친구들, 동료들의 이름을 넣어보았다. ‘시선’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근사했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