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깨우는 단편 영화들 [영화]

글 입력 2021.01.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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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se 뮤즈', 'El Empleo 고용', 'Shadow Thief 그림자 도둑'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종종 2호선을 탈 때면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창 밖을 곁눈질한다. 빠르게 달리는 지하철 창 밖에 한강이 보이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 풍경이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않는다. 몇 년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해가 질 무렵에 세상을 물들이는 빛과 이미 다 지고 난 뒤 하늘처럼 새까만 물 위에 비치는 불빛이 아른거리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갑갑했던 하루의 중간에 만나는 도시의 풍경은 삭막하지만 순간순간 묘한 울림을 가져다준다.


만원 지하철에 콕 끼여 창 밖으로 보던 풍경들이 영화 필름의 프레임 같았다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꽤나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도 같다. 창 너머에 갇혀 있는 세상이라 그럴까?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같은 곳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그 풍경들은 정말이지 완벽한 결말로 끝나는 영화 속에 흘러가는 한 장면처럼 보인다. 모든 삶이 낭만적일 수 없는데 멀리서 보는 우리는 어찌나 낭만적으로 보이는지. 내 속에도 낭만의 샘이 샘솟는다. 오늘은 조금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내일은 더 열심히 살아봐야지 다짐하며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내린다.


채 몇 분이 되지도 않는 시간 동안 본 장면이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하루를 더욱 풍부한 색으로 채워낸다. 내가 몰두하고 있던 세상에서 시선을 돌려 평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한다. 그 잠깐 내쉬는 숨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를 살게 할 것이라 단언하고 싶기도 하고. 적어도 나는 그런 하루들로 버티며 내 몫의 무게를 버텨내고 있다.


오늘 소개할 단편 영화들은 나에게 그런 자극을 주는 작품들이다. 짧으면 5분, 길어야 10분을 조금 넘기는 게 다인 이 영화들은 축축한 비린내로, 무거운 한숨으로, 거울을 보는 듯한 적나라함으로 나를 일깨운다.

 


 

1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인어가 떠난 뒤 남자는 어떻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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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has it that if a human man falls in love with a mermaid, 

she will grow legs.

Legs that will if she so desires, carry her, 

far away from the very man she cast her watery spell upon.

 

 

남자는 자신에게 다시 반송되어 온 편지를 꾹 손에 쥔다. 황량한 집 밖의 풍경처럼 그의 마음도 공허하기만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개구리를 손에 올려 조심스럽게 다뤄보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개구리는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눈동자에 비치는 것이 개구리 하나만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의 정원과 작업실에는 그녀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그녀의 이름은 뮤즈, 정원의 좁은 수조에 갇혀 있던 인어는 남자의 뮤즈로 살았다. 남자는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었던 인어와 함께한 시절을 추억하며 영사기를 튼다.


영사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인어의 움직임을 따라 매혹된 듯 스크린에 다가가는 그의 모습은 그녀를 숭배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집착이 느껴진다. 끔찍하지만 몽환적이게 아름답다. 그러나 그 수조 속에 갇혀 있던 뮤즈에게도 이 순간이 행복했을까?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그녀의 뻐끔거림은 전혀 공기에 닿아 울리지 않는다.


전설에 의하면 인간이 인어를 사랑하게 되면 인어의 다리가 자란다고 한다. 그리고 다리는 인어가 간절히 원한다면 인간에게 마법을 걸어 그녀를 멀리 달아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인어는 그렇게 떠나 그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When the sun goes down with a flaming ray, And the dear friends have to part?

- A Perfect Day by Carrie Jacobs-Bond

 

 

내내 자신이 찍었던 인어의 모습을 돌려보던 그는 완벽한 하루가 저물어갈 때쯤 나설 준비를 한다. A Perfect Day가 흘러나오는 레코드 판 위로 눈부신 햇빛이 울렁인다. 아름다운 꽃을 들고 그는 인어가 있던 수조로 들어간다.

 



1-1 엘리자베스 시달이라는 이름의 인어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한 단편 영화 'The Muse(2014)'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사진작가인 팀 워커의 작품이다. 남자(에드워드 던스턴) 역으로 벤 휘쇼, 뮤즈 역으로 크리스틴 맥미나미가 출연했다. 모든 장면이 완벽하게 음울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어서 하나의 영상 화보처럼 보였던 작품이었다.


뮤즈에 대한 예술가의 갈망과 집착, 그리고 뮤즈의 부재가 환상적으로 그려지는 가운데 하나 짚고 싶은 점이 있다면 편지에 나왔던 뮤즈의 이름이다. 엔딩 크레딧에도 뮤즈는 뮤즈 역으로 쓰여 있었지만, 남자에게 반송된 편지에 그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시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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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John Everett Millais, Ophelia, 1851-1852, Tate Gallery



엘리자베스 시달은 19세기에 유명했던 라파엘 전파의 뮤즈였다. 라파엘 전파 대표 화가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아내였으며,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 '오필리아'의 모델이 되었던 여성이었다. 라파엘 전파는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특징인데, '오필리아'를 그릴 당시에도 사실성을 위해 차가운 물로 채운 욕조에 엘리자베스 시달을 눕히고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다. 이로 인해 시달은 급성 폐렴에 걸려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처연하면서도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주목받았던 엘리자베스 시달은 사실 화가를 꿈꾸던 이였다. 그러나 점차 누군가의 대상으로서 화폭에만 자리할 수밖에 없었고, 로세티와의 불행한 생활에 결국 아편 과다 복용으로 죽고 만다.


밀레이의 '오필리아'에서 오필리아가 들고 죽었던 꽃들은 'The Muse'에서 예술가였던 남자가 들고 죽는 꽃과 비슷해 보인다. 순결, 죽음, 공허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들에 둘러싸인 예술가의 죽음,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한 인어에게 다리를 달고 달아날 수 있게 해 줬다는 것은 팀 워커가 시달에게 보여주고 싶은 위로와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인어가 떠난 뒤의 남자가 아니라, 남자에게 묶여 있던 인어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2 고용인의 고용인의 고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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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울리는 알람을 끄고 전등을 켜고, 씻고 아침밥을 먹는다. 택시를 타고 회사로 출근한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근무지에 도착해 자신의 업무를 시작한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단 두 줄의 출근길 이야기일 뿐이지만 사실 이 이야기 속에는 많은 것이 숨어져 있다. 모든 서비스를 사람이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등 대신 서 있는 사람, 거울과 책상의 역할을 하는 사람, 택시는 손님을 업고 누군가가 직접 발로 뛰는 것이고, 신호등도 사람이 맡는다. 엘리베이터를 움직이는 일에도 반대쪽에서 무게를 감당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모든 이들을 짓밟고 하루를 영위하는 이 직장인에게 반감이 들 무렵, 그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업무를 시작한다. 문 앞에 철퍽 엎드린다. 누군가 그의 등을 밟고, 신발을 털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의 몫은 발매트인 것이다. 주인공의 나직한 한숨처럼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크게 들이쉬어도 작게 내뱉을 수밖에 없는 그 한숨을.


산티아고 그라소 감독의 'El Empleo(2008)'는 한국에서 생산적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제목은 '고용'이라는 뜻이다. 2008년 작품이지만 오늘 만들었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유효한 이야기 같다.


사람을 가구로 치환해버린 이 아이디어는 서비스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람들이 거의 갈리다시피 하고 있는 현실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혹은 가구와 다르지 않게 기계처럼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고용인도 누군가의 피고용인으로 도구처럼 굴려지고 있을 뿐이다. 산업사회 이면의 불편한 진실들을 적나라하게 비꼬았던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이 작품이 거의 1세기 전에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변한 것이 없나 보다.


'El Empleo'의 묘미는 작품의 전체적인 톤이 무감하고 무신경하다는 것이다. 단조로울 정도로 이들의 일상에는 어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너무 익숙해져 있어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 이후, 맨 처음 전등의 역할을 했던 사람의 얼굴이 등장한다. 그는 전등의 갓을 벗어 옆으로 던져버리고 나간다. 아마 퇴근시간인 게 아닐까. 잠깐 통쾌했다가도 더럽고 치사하고 하기 싫지만 돈을 위해 다음 날에도 꾸역꾸역 나갈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는 대체 누구를 위해서 일하고 있으며 우리를 위해서는 누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모두가 이렇게만 살고 있는 걸까?




3 그림자를 잃어버리기, 그림자를 훔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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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완은 취준생이다. 매일 같이 면접을 보러 다니지만 계속해서 떨어지는 나날들에 괴롭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각자 다른 모양의 그림자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회사에서 원하는 그림자 역시 존재하는데, 커다랗고 각진 모양의 그림자이다. 빛을 비추어 그림자의 모양을 확인하는 것도 면접의 일부이다. 여느 때처럼 시완의 그림자는 너무 작고 동글동글하다. 오늘도 면접에서 당연히 떨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자기 그림자를 뜯어서 붙이고, 못으로 고정하고, 끈으로 칭칭 동여매어 반듯한 모양으로 만들고 있었다. 시완도 열심히 늘리고 고정해 그림자를 바꿔보지만 매번 실패한다. 이제는 어떤 것이 자기 그림자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울퉁불퉁 못난 모양의 그림자를 미워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의 반듯한 그림자가 눈에 보인다.


그리하여 시완은 결심한 것이다. 자기 그림자로 불가능하다면 그림자를 훔치는 수밖에 없다고.


'El Empleo'를 보고 같이 보고 싶어 생각이 난 작품이었다. 김희예 감독의 '그림자 도둑(2018)'(제작: 김희예, 양윤영, 김유신, 한승룡)은 취업 시장에서 사람을 판가름하는 스펙을 그림자라는 것을 통해 구현한 아이디어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기준에 맞추기 위해 그림자를 뜯어고쳐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리게 되는 과정이 생생한 시각적인 충격으로 다가온다. 얼기설기 붙인 그림자 조각들을 보며 이렇게까지 해야 살아남을 수 있냐는 말이 입에서 맴돈다.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거리며 노력하지만 실패하기만 하는 시완. 그가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은 뭐였을까? 이것은 단순히 시완의 이야기인가?


무빙워크 위에 가만히 서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앞으로 뛰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전부인 현실과 비슷해 보인다. 남의 그림자 안에 자신의 그림자를 숨겨보고 자기를 미워하게 되는 과정이 최근 느꼈던 감정들과 닮아있어서 더 숨을 죽이고 보았다.


마침내 남의 그림자를 찢어 달려 나가는 시완 옆으로 어두운 열차가 그림자처럼 지나간다. 하지만 그림자 속에서 커진 괴물은 이제 다시 시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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