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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세계 속의 한국인을 알고 싶어요...
숙제 인데요.
꼭 가르쳐 주세요.
세계 속의 한국인은 누구누구가 있고 그 사람을 소개(조사)해 주세요. 예를 들어 하는 일과 크게 된 이유 등 말이예요. (세계 속의 한국인 예 - 야구선수 박찬호, 바이올린니스트 장영주,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교수)
그러니까 국제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동시에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사람데 대하여 가르쳐 달라는 것 입니다.

안되면 교양 있고 예절 바른 한국인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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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beau****
작성일2002.11.14 조회수 37,540
질문자지식인 채택
2번째 답변
탈퇴한 사용자의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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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으로 우뚝 선 재미 한국인 대니 서(Danny Seo)
자세히 말하자면...
지구를 지켜낸 아름다운 실천가로서 공헌이 크데요...
지난 10년간 미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 잡지 등에 500여 회나 소개되었으며, 지난 1995년에 `알베르트 슈바이처 인간 존엄상'과 `올해의 젊은이상'을 수상했죠. 또 1998년에는 피플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선정되기도 했죠.
대니서는 1997년에 청소년들을 위한 환경보호, 나아가 시민운동의 길을 안내한 핸드북 '행동하는 세대'에 이어 1999년에는 자신의 체험과 환경운동, 그리고 시민운동의 이념과 실천 방법을 엮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등의 책을 써서 환경운동 지도자와 전문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대요.
그 사람은 어렸을 때 한국계 이민 가정의 세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 중부의 완만한 농지인 레딩의 변두리에서 성장했죠. 그의 아버지는 의사로, 지역 병원에 일자리를 구해 가족과 함께 병원 근처로 이주했죠. 어머니는 집에서 아이들을 길렀고, 대니를 우체국이나 시위장까지 차로 데려다 주면서 그가 꼬마 활동가가 되는 데 도움을 줬대요.
그래서 그가 환경운동가인지 채식주의자고 지갑을 가지고 있지 않대요.
자세한 정보는 http://www.yonhapnews.net/services로 찾아가세요.
두번째 인물도 그 사이트에 가서 찾을 수 있는데...
재미한인학교협의회 회장 방정웅
한인2세래요.
그 동안 미주 한인사회와 미국 학교들의 교육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해온 데 비해 한인 2세들을 위한 교육과 교재 개발은 이를 따르지 못해 왔죠. 특히 현지 실정에 맞는 교재의 개발이 절실함에도 재정 부족으로 이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죠. 미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1천여 개의 한글학교들이 모인 연합회인 재미한인학교협의회(The National Association for Korean Schools)의 방정웅(56세) 회장은 지난 1998년 8월 회장을 맡은 이후 한글학교의 내실화를 위해 학술대회와 교재 개발에 열성을 다했대요.
방정웅 회장은 서울의 연세대학교 수학과를 나와 수학교사로 오래 봉직하셨죠. 그러나 그는 1981년 8월에 15년간의 교사생활을 마감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죠. 40세의 만학도로 아내와 딸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셈이죠. 가족이 딸린 가장의 입장에서 시작한 유학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문제였죠. 미국의 영어훈련원에서부터 학업을 시작하였는데, 당시 유학생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다고 하네요.
그 사람은 앞서 말한 한글학교 활동 외에도 미국장로교 한인교회 전국남선교회 연합회 서기, 부회장, 회장을 차례로 역임했으며, 현재 미국 달라스 빛내리교회의 장로로 시무하면서 교육부장으로, 교회 월간회보의 편집장으로, 전산부-인터넷 부장으로, 선교부장으로 각각 봉사해오고 계시대요.
그리고 제가 마지막으로 뽑아온 자료 최연소자 윤송이
한국인으로서는 최연소로 박사학위를 받아 세계를 놀라게 한 윤송이 SK 와이더덴 닷컴 이사, 로버트 융인 텔 최고기술책임자가 되었다는 이 최연소자를 빼먹을 수는 없다는 거죠.
약력을 보자면 이런 과정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거죠.
△1975년 서울 출생 △93년 서울 과학고 졸업 △96년 KAIST 학사 △9 6년 미 MIT대 미디어 랩 입학 △2000년 MIT 미디어랩 박사 △2000년 맥킨지 컨설턴트
윤씨의 굉장한 집중력을 드러내는 예는 이뿐만이 아니죠. MIT 미디어랩에서의 일화 하나를 소개하자면, 6명이 팀을 이루는 프로젝트가 있었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간 동안 그와 나머지 5명의 학생들은 실험실에 붙박혀 하루 20시간을 꼬박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죠. 그를 제외하면 전부 체구가 그의 두배는 될 만한 건장한 장정들이었죠. 20시간을 공부에 매달렸다고 나머지 4시간을 온전히 수면시간으로 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죠. 하루 2시간만 쪼개서 자는 강행군이 석달째 계속됐죠. 놀라운 집중력과 근성으로 버텨낸 윤씨는 프로젝트 결과물이 나오는 날, 그만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어요. 의사의 진단은 수면부족과 과로. 1주일 동안 입원한 그는 내리 잠만 자는 걸로 체력을 회복했다고 해요. 그는 예능쪽에도 재능이 많다고 해요. 여성동아 2001년 12월호 내용 부분

“원래 예술중학교에 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예술중고교에는 과학 실험실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어, 그러면 곤란한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실험실 없는 학교에서 3년을 견딜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포기했죠(웃음).”

어릴 적 윤송이는 과학을 너무나 좋아하는 별난 소녀였다. 야산에서 곤충 채집한다고 8시간 동안 돌아다니는 건 약과였다. 부모님을 졸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집에 자신만의 실험실을 만들었던 그. 비커, 플라스크, 현미경 등 온갖 실험기구들을 구해서 집안에서 이것 저것 탐구하고 실험하는 게 그렇게 재밌었다고 한다.

정말 훌륭하지 않습니까?
자세한 정보는 http://www2.donga.com가서 찾아서 보세요!
몇 개 못 구했지만 유명인 말고도 숨겨져 있는 한국인들을 발굴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알아두세요!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 선물할 때 참고해주세요.

1번째 답변
go20****
채택답변수 726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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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도덕, 가수, 과학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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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4월 24일 서울 출생. 167㎝, 49㎏

79년 선화 예술중학교 입학, 한국 고전무용 전공

선화 예중 1학년 때 발레 시작



82년 선화 예고 1학년 재학 중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로 유학

85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 동양인 최초로 1위 입상

86년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 졸업

세계 5대 발레단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최연소 입단



87년 입단 1년만에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요정 역으로 첫 데뷔

92년 <춤의 해> 내한 - '로미오와 줄리엣' 2인무, 'Les Nuages' 공연

93년 1월 입단 7년만에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 줄리엣 역으로 첫 주역 데뷔

6월 빈국립발레단의 객원 주역무용수로 '마타 하리',

9월 베자르의 발레 '마술피리' 주역

94년 10월 세종문화회관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내한공연 '로미오와 줄리엣' 주역

95-96 시즌 '잠자는 숲속의 공주' 주역



96-97 시즌 '오네긴' 주역 타티아나로 프리마 발레리나(principal dancer/etoile) 등극.

96년 8월 유니버설 발레단 초청으로 내한, '지젤', 'Les Nuages' 공연

97년 3월 국립발레단 초청으로 내한, '노틀담의 곱추' 공연


98년 7월 '오네긴','로미오와 줄리엣' 으로 성공적인 미국 데뷔

98-99 시즌 '춘희' 대성공

98년 문화관광부 선정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99년 4월 'Benois de la Danse'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 수상

99년 9월 내한, '99 한국을 빛낸 발레스타' 공연 참가

99년 10월 대한민국 보관 문화훈장 수여



그 외에...



2000년 7월 서울에서 개최될 '세계 춤 2000' 행사 참가 예정이었으나..

2000년 9월 1일-4일 국립발레단 초청으로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예정이었으나..

2001년 3월 KBS에서 수여하는 예술가 상 수상 예정

2001년 7월 한국을 빛낸 발레스타 갈라 공연 참가 예정

2002년 월드컵 기념 공연으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함께 내한을 추진 중


[MX]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주역 무용수 강수진


-'이제는 한국에서 발레가 온다'-

순수한 마음으로 외길을 간다. 금전운 매우 좋은 편. 황소자리 별의 운(1967년 4월24일생)으로 태어난 강수진의 평생운세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주역무용수 강수진. 별자리 운세처럼 19년 동안 한길만을 걸어와 세계 정상의 무용수로 우뚝 섰다. 하지만 그는 외롭다. 정상에 서고 나면 엄습해오는 고독감. 더이상 그 또래에선 경쟁할 라이벌도 거의 없다.

뛰어난 테크닉과 무대에서의 체취, 타고난 미모 등 발레리나로서 3박자를 완벽히 갖췄다. 관객을 빨아들이는 깊고 큰 눈, 시원한 입술, 발레리나들이 부러워하는 유난히 긴 팔과 다리 등 동서양의 특징이 이상적으로 배합된 외모도 「강수진 신드롬」을 거들었다.

지난 5월 무용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노아 드 라 당스」에서 최우수 여성무용수로 선정되면서 그의 위상이 확고해졌다. 모스크바 국제무용협회 주최로 전세계 직업무용단의 주역급 무용수들을 대상으로 그 해에 가장 뛰어난 활동을 펼친 무용수·안무가·무용음악가 등을 시상하는 제전. 강수진은 98년에 세계 최고의 활약을 보인 「무용의 여왕」으로 등극하며 재능을 공인받은 것이다.

최고의 스타가 되고 국내외 공연 등으로 바빠지지만 그가 느끼는 정상의 고독은 진해만 간다. 마치 새장 안에 갇힌 아름다운 새처럼 . 그럴 때마다 그를 위로해주는 달콤한 추억의 조각들. 세계 3대 발레콩쿠르인 로잔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1등을 차지하던 순간, 86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최연소로 입단해 파란을 일으킨 일, 그러나 이내 시작된 4년 동안의 무명생활, 군무 뒷줄에서 줄반장으로 승진(?)하던 날, 입단 4년만에 솔리스트로 뽑혀 기뻐하던 날…. 그리고 93년 드디어 세계 5대 발레단인 슈투트가르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 줄리엣으로 출연하던 첫날은 천하를 얻은듯 감격스러웠다.

그중에서도 강수진이 가장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무대는 지난 90년 솔리스트 데뷔무대였던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 마녀의 저주를 풀기 위해 등장한 다섯 요정 중에서 루비의 요정. 처음으로 솔로춤을 출 때의 떨림. 물론 이제는 키스를 받고 깨어나는 공주로 출연하지만 그때의 흥분과 감격보단 못하다.

사실 그의 전공은 발레가 아니었다. 『선화예중에 한국무용 전공으로 입학했죠. 중1때 어머님께서 발레로 전공을 바꾸라고 권하시는 바람에 오늘의 제가 있게 됐답니다』. 어머니는 근대회화사의 거장이자 한국의 「로트렉」으로 불렸던 화가 구본웅의 딸.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비인기 예술이었던 정통발레를 선택한 배경이 짚어지는 대목이다.

몇달 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교장인 마리카 베소브라소바가 선화예중을 방문했는데 남들보다 발레를 늦게 시작한 강수진만을 지정해 유학을 권했다. 『선화예중 외국인 발레교사가 아버지께 「10만명의 발레리나 중에 한명 나오는 천재가 당신 딸」이라며 유학을 권하셨어요』. 멋모르고 시작한 4년간의 힘든 유학생활. 그러나 어리고 내성적인 소녀의 적응력은 엄청나게 강했다. 『베소브라소바 교장은 저를 딸처럼 생각했어요. 그분 집에서 재우고 공연장이든 어디든 저에게 도움이 되는 곳에는 꼭 데리고 가셨죠』. 각별한 사랑이었다. 강수진 이후 한국 학생들의 모나코 왕립학교 유학이 이어지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만큼 교장선생은 「있는 사랑」을 몽땅 그에게 주어버렸다. 요즘도 80세의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수진의 유럽공연에는 꼭 모습을 드러낸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도 강수진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70명 단원을 사로잡았다. 발레단 예술감독이었던 막시아 하이데는 자신이 입었던 줄리엣 의상과 반지를 물려줄 만큼 그를 아꼈다. 현지 언론도 그를 발레단 예술감독 후보로 지명할 정도였다.

강수진 발레의 특징은 내면의 섬세한 연기로 주인공의 성격을 생생히 부각시키는 것. 타고난 신체조건(167㎝ 49㎏)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리고 하루 10시간 이상, 심지어 19시간까지 강행하는 연습이 「오늘의 강수진」을 가능케 했다. 「외길에 대한 집념」. 바로 240년 역사의 유서깊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한국에서 공연중인 「99 한국을 빛낸 발레스타」에서는 「브노아 드 라 당스」 노미네이트 작품인 「카멜리아 레이디(춘희)」 중 2막 파드되(2인무)를 선보인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발레화한 이 작품에서 여주인공 마그리트(오페라에서는 「비올레타」역)가 죽기 직전 연인을 만나 추는 처절한 2인무. 공연첫날 강수진은 신들린듯한 연기와 농염한 춤으로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공연 후에는 빨리 독일로 가야 한다. 9일 각 전문분야의 대표주자가 모이는 「슈투트가르트 컨퍼런스」에 독일무용계 대표로 참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강수진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슈투트가르트 거리를 누비는 15번 전차는 강수진의 사진으로 덮여 있다. 문화진흥 공익광고 모델이기 때문이다. 또 슈투트가르트 난(蘭)협회는 새로 개발한 서양란 품종을 「강수진」으로 명명했다. 슈투트가르트대학 출판사에서는 지난 5월 각 분야의 전문인을 다룬 책 「아르바이트」를 출간했는데 여기에 무용계 대표로 강수진이 나왔다. CF 모델도 한다. 세계적인 브랜드 「페라가모」(옷로비사건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 99 가을패션 모델로 활약한다. 9,000마르크(약 5백50만원)의 월급을 받지만 쓸 시간이 없다. 발레단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인 오반시타세의 40평 아파트 할부금이 나갈 뿐. 상시 복용하는 인삼정(錠)도 서울집에서 보내온다.

『무엇이 되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죠. 앞으로는 제가 배운 모든 것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좋은 발레 선생님이 되고 싶거든요』.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와 발레 꿈나무를 키우고 그들의 국제무대 진출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한다.



-[취재수첩]“국제수준 한국발레, 이젠 세계에 알릴때”-

90년대 한국발레의 위상은 강수진의 슈투트가르트 입성 후 크게 달라졌다. 한국인의 체형이 발레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한국인도 발레로 승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특히 지난해 국립발레단 주역무용수인 김지영·김용걸이 파리 국제콩쿠르 1등을 차지했고, 지난달 제5회 전아시아 무용콩쿠르에서는 노보연(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3년)이 2관왕 수상을 하고 및 한국대학생들이 1~3등을 모두 차지하는 등 각종 콩쿠르 입상이 줄을 잇고 있다.

외국에서는 러시아 키로프발레단의 유지연, 볼쇼이발레단의 배주윤, 미국 아메리카 발레시어터의 강예나 등 3명이 세계 5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유명 발레단원으로 활약중이다. 또 미국 애틀란타 발레단의 김혜영, 클리블랜드 발레단의 최광석, 스위스 바젤 발레단의 허영순도 한국발레 홍보에 일조하고 있다. 국립발레단의 이스라엘·이집트 공연, 유니버설발레단의 유럽·일본 공연, 서울발레시어터의 이탈리아 공연, 조승미발레단의 미국 공연 등도 한국발레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한국발레를 보는 세계 무용계의 시각도 변했다. 최근 최태지 국립발레단장, 김해식 무용원장, 김선희 무용원 교수,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발레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초빙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 홍보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한국을 빛낸 발레스타」 출연자들은 『한국발레를 세계에 알려야 무용수들의 외국무대 진출도 활발해질 것』이라며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은 국제수준인데도 외국인들이 접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김지영·김용걸씨도 『해외연수가 활성화돼야 한다. 마고트 폰테인이 「이제는 동양에서 발레가 온다」고 했지만 가서 보지 않고는 한국에서 세계 발레의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유인화기자rhew@kyunghyang.com·사진 권호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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