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칼럼]코로나가 불러낸 디지털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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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1.06. 오전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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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2020년의 마지막 날, 시민들은 서울 보신각 앞에 모여 듣던 제야의 종소리를 디지털로 들었다. 이동통신사 SKT는 VR, 즉 가상현실기술로 실감 나게 재현한 제야의 종을 선보였고 이는 유비쿼터스, 말 그대로 어디에 있건 접속만 하면 함께 우리의 고막을 울리는 새해 첫 종소리를 공유할 수 있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영국과 미국을 시작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나라별, 지구적 집단면역은 아직 요원한 일이다. 글로벌 팬데믹은 연말연시에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래서 VR 제야의 종은 우리만의 특별한 행사는 아니었다. 대표적 연말 카운트다운과 해피 뉴 이어 키스의 명소, 뉴욕 타임스퀘어의 볼드랍 행사에 인파가 모이던 모습은 113년의 행진을 멈췄으며, 대신 소수의 현장 참가자 외에는 TV를 통해 연결되는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코로나19는 광장을 폐쇄하고 1인 살롱의 온라인 연결망을 활성화하고 있다.

이렇게 새해가 왔으니 포스트 코로나 2021년 이후의 삶을 계획하고 상상해보도록 하자. 모든 시민은 기본적으로 1인 1가구를 유지한다. 세면실, 화장실, 주방, 침실, 컴퓨터실을 따로 쓰니 가족 간에도 접촉할 염려가 없다. 가족, 가까운 이웃, 동료와의 소통은 스마트폰과 벽에 붙은 롤러블 화면을 통해 얼굴 마주보며 재정문제를 상의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가사를 분담하고, 3년 후의 해외 휴가여행 계획도 세우고, 부부싸움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외롭다고? 당신은 생활공간 내에 혼자가 아니다. 인공지능 도우미가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홀로그램을 통해 나타날 수 있으니까. VR 동거인은 감염의 위험이 전혀 없는 청정가족이다. 여기까지의 장면은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 잘 표현돼 있다. 이 영화에는 전작 〈블레이드 러너〉의 주인공 릭 데커드를 연기한 해리슨 포드가 나오는데 20세기 음악과 아날로그 취향이 물씬 풍기는 인물이어서 현재 우리 생활 속 소품들이 레트로의 향수로 느껴지는 뭉클함이 있다.

눈 비비며 일어나 출근하면 팀이 회의실에 모여 아이컨택하며 얘기하고, 회사수첩에 아이디어를 메모하며 퇴근길에는 친한 동료들과 단골 삼겹살집에 우르르 몰려가 소주잔을 기울이고, LP바에 모여 수다 떨던 일상의 풍경은 20세기 극장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으로 사라져 갈까 심히 우려되는 현실이란. 하긴 필자의 신입사원 시절에 회의실 탁자마다 놓인 크리스털 재떨이에 수북이 쌓였던 담배꽁초들을 떠올리면 이미 10년, 20년 전의 풍경은 원시시대처럼 흘러가 버리는 것이 세월의 변화 아닐까 싶다. 아, 아니다. 새해에는 회귀적 상념이 아니라 미래지향적 상상을 해야 하거늘. ‘꼰대’나 ‘라떼’가 되어선 안 돼, 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그런데 말이다. 디지털 제야의 종을 선보이려 열심히 일한 지인 L형이 사실은 불교신자도 아닌 천주교도라는 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디지털 신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그 좋아하는 술, LP 음악, 아름다운 시, 그 무엇보다 사람을 접촉하지 않고 일만 하고 산다는 것은 슬픈 아이러니 아닌가.

최영일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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