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김형석 교수님과 어머니
학창 시절 은사인 김형석 교수의 에세이집에서 읽은 글이다. 교수님은 퇴근하면 제일 먼저 노모의 방에 가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팔순 어머니의 이야기는 한국 최고 지성으로 대접받는 교수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얘야. 오늘 옆집 개가 강아지를 일곱 마리나 낳았는데 참 이상도 하지. 그중에 두 마리는 누렁이고, 세 마리는 검둥이고, 두 마리는 얼룩이라더라. 어떻게 새끼를 그렇게 낳았을까?”

교수님에겐 큰 의미 없는 소소한 이야기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매일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들이 있었기에 어머니는 하루 종일 한두 가지의 이야깃거리를 준비했을 것이다. 아들이 오면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려고 몇 번이나 되뇌며 기다렸을 것이다.

교수님은 어머니의 작은 행복을 지켜드리려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저녁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중요한 일과였다. 그러다 보니 그 일 자체가 본인의 행복 중 한 가지가 됐다고 한다.

교수님의 노모는 팔순의 나이에도 옆집 강아지의 생김새 차이도 기억할 만큼 기억력이 좋으셨던 것 같다. 필자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이노비즈협회장으로 사회활동을 하다 보니 뇌의 용량을 넘는 대규모 정보가 입력되는 데다 나이로 인한 기억력 감퇴가 더해져 얼마 전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한번은 후배로부터 “형님! 그 이야기 98번만 더하면 100번입니다”라는 핀잔을 듣고 잠시 기분이 언짢았던 적이 있다.

나중에 보면 핀잔을 줬던 후배도 툭하면 일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꺼내기도 했다. 자신이 했던 말은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타인이 한 말은 기억해 면박을 주는 게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한 사회 현상인가도 싶다.

교수님의 에세이를 읽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기에 나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퇴근하면 제일 먼저 부모님 방에서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훗날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마지막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하는 어머니를 매일 새벽 출근길에 찾아가 쭈글쭈글해진 어머니 가슴을 장난스럽게 만지고 나왔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교수님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가족이나 선후배 사이의 세대 차이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는 지혜로 배울 만하다. 교수님은 올해 99세의 나이에도 강연을 하고 집필도 하며 멋진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교수님은 “자신의 삶을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면 6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지금 내가 그 나이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