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형석 (30) 내 인생 황금기는 75세 전후… 소명·사랑 다하려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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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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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에게 주어진 소중한 과제는 부르심 받을 때까지 소명 감당하는 것
김형석 교수는 “인생의 황금기는 75세 전후”라고 말한다. 사진은 김 교수가 2018년 강원도 양구군 양구인문학박물관에서 인문학을 주제로 강연하는 모습. 양구인문학박물관 제공

1962년 초여름 미국 하버드대에서 봄 학기를 마칠 때였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폴 틸리히 교수의 하버드대 종강식에 참석한 일이 있다. 학교 측은 틸리히 교수가 하버드대를 떠나 5년간 시카고대에서 강의를 계속한다고 밝혔다. 틸리히 교수는 78세까지 교편을 잡는 셈이다. 부러운 일이었다. 우리 사회는 회갑을 맞으면 인생을 마무리하는 나이라고 여겼다. 교수들도 ‘회갑기념논문집’을 출간하는 걸 자랑스러워하던 때다. 미국인이 ‘인생은 60부터’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20년쯤 지나 60대가 돼 일본을 몇 차례 방문했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제2의 인생’, 즉 ‘60 이후의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관한 문제가 화제였다. 대개 남성은 60세에 은퇴하기에, 이 시기에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70~80대에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일본 사회는 크게 3가지를 권고했다. 첫째, 공부를 계속하라고 했다. 둘째와 셋째는 독서와 취미생활이었다. 공부와 독서는 노후 정신적 성장과 행복에 큰 도움이 되며 취미활동을 제2의 인생 과제로 삼으면 성공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뒤, 나는 각각 숭실대와 서울대에서 퇴임한 안병욱 김태길 교수를 만나 ‘인생의 황금기’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우리 셋 모두 80세 넘게 살아왔는데, 계란 노른자처럼 인생에서 알찼던 나이대가 언제인지 궁금했다. 우리는 60세부터 75세까지라는 데 공감했다. 처음엔 50세부터라고 생각했지만, 일은 열심히 해도 인간적 미숙함이 적잖은 시기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공자의 교훈대로 60세부터는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어 지도자의 품격을 갖출 수 있고, 사회인으로서 자신감도 가질 수 있다. 이 나이대에는 노력만 하면 여러 면에서 성장할 수 있다.

내가 76세 때 90세를 넘긴 정석해 연세대 교수를 모시고 지방으로 간 일이 있다. 정 선생이 문득 “가만있자, 김 교수 나이가 어떻게 되더라”고 물었다. 내가 나이를 답하니 그는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좋은 나이올시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70대 시절을 회상하다 나온, 부러움이 담긴 고백이었다.

100세를 넘긴 지금 누군가 인생의 황금기를 묻는다면, 나는 75세 전후라고 답할 것이다. 노력만 한다면 80대 후반까지 연장할 수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87세까지, 김태길 교수는 89세까지 그랬다. 안병욱 교수는 92세 때 TV 인터뷰를 했다. 이런 모습이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희망이 돼야 할 것이다.

지금껏 세상적 관점에서 제2의 인생을 논했으나, 신앙인에게는 이런 인생관이 낯설지 않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과제는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며 작은 사랑이라도 나누려 노력하는 데 있다. 나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맡긴 일을 하기 위해 매일 아침 일어나 저녁에 잠드는 하루를 보낸다. 주님의 지게꾼으로서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사랑을 나눠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을 뿐이라고 믿는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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