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IT업계 유명인은 왜 모두 남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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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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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연결한 여성들/클레어 L 에반스 지음·조은영 옮김/464쪽·1만6800원·해나무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유명인을 거론하라고 하면 대부분 남성 이름이 등장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이 분야에서 성공한 여성은 쉽게 떠올리기 힘들다.

이런 상황을 불편해한 저자는 과학자와 프로그래머, 사업가를 두루 살펴보면서 초창기 IT 발전에 기여한 여성의 이름이 왜 남지 않았고, 현 업계의 중요한 자리를 남성들이 차지했는지 고찰한다.

과거 컴퓨터라는 단어는 ‘계산하고 연산을 수행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1892년 뉴욕타임스엔 ‘컴퓨터 구합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는데 사람을 채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각종 수학적 계산을 하는 일에는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을 주로 하던 여성이 채용됐다. 기계의 처리 속도를 셀 때 여성이 같은 일을 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 ‘걸이어’(girl-year)로 부르고, 기계 노동 단위를 ‘킬로걸’(kilo-girl)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한 여성은 기억되지 않았다. 최초의 전자 컴퓨터 에니악의 프로그래밍을 담당한 여성 6명의 이름 대신 남성만 기록됐다.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불리는 러브레이스, 프로그램 언어 ‘코볼’의 탄생에 기여한 그레이스 호퍼, 최초의 웹잡지 ‘워드’를 만든 마리사 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자는 이 같은 흔적을 찾아가면서 IT 업계의 많은 공신이 여성임을 상기시킨다.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 탐사 초창기 큰 몫을 담당한 미 항공우주국(NASA)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 받은 ‘천대’를 보여주는 영화 ‘히든 피겨스’(2016년)를 떠오르게 한다.

현재 IT업계에서 여성이 사라진 이유를 남성의 70% 수준인 임금 구조 때문이라고 저자는 판단한다. 육아를 위해 학업이나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게 하는 사회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여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거기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여전히 여성은 헌신하지만 기록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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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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