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착해야 산다. 지구도 기업도

2021-02-04 12:26:48 게재
‘착하게 살자.’ ‘범죄와의 전쟁’이 마무리돼 가던 1990년대 후반. 한때 ‘조폭(조직폭력배) 세계’에서 유행한 말이다. 조폭 일부는 팔뚝에 문신을 새기고 다녔다. ‘개과천선’하겠다는 의지로 읽히기보다 ‘내가 조폭이요’라고 과시하는 모양새였다. 일부러 맞춤법까지 틀리게 한 ‘차카게 살자’ 문신은 이율배반이다. 그렇더라도 마냥 나쁜 것도 아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나름의 진리를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2021년 ‘착함’이 다시 화두다. 이번엔 유통가다. 조폭처럼 문신을 새기진 않았지만 내남없이 ‘착한상품’을 외친다. 업체마다 친환경상품이란 걸 애써 강조한다. ‘우리제품을 사면 지구를 구하고 후세에 깨끗한 환경을 물려줄 수 있다’고 홍보한다.

그래도 이런 게 잘 통한다. 라벨을 없앤 생수가 그랬다. 한 음료회사는 지난해 친환경제품이라고 홍보하며 라벨을 없앤 생수를 내놨다. ‘무라벨’ 생수는 1000만병 넘게 팔렸다. 라벨을 붙였던 때보다 10% 이상 매출이 늘었다. 수천킬로그램의 포장재 폐기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소비자 마음을 움직였다.

‘세이브 더 덕’이란 이름의 패딩도 마찬가지다. 나오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다. 한달새 매출이 237% 급증했다. ‘오리를 구한다’는 이름처럼 동물성분을 사용하는 대신 재활용 소재를 충전재로 활용했다. ‘오리도 구하고 지구도 구한다’는 홍보 전략이 먹힌 셈이다.

친환경과 동물복지로 포장한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입는 옷부터 먹는 음식에 바르는 화장품까지 차고 넘친다. 배달 오토바이도 친환경 전기차로 바뀌고 있을 정도다. 이윤만을 좇던 기업들이 개과천선이라도 한 걸까.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착한소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의문은 풀린다. ‘올바른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비용을 더 들일 의향이 있다’고 한 응답자가 55%나 됐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비싸도 구입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소비자도 49%에 달했다.

소비주력층으로 떠오른 2030 MZ세대는 더 달랐다. 10명중 9명꼴로 ‘비싸더라도 사회와 환경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쓴다’고 답했다. 가성비도 좋지만 가치를 더 따지겠다는 얘기다. MZ세대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담은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소신, 신념소비자들인 셈이다.

그러니 기업들이 ‘친환경’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탈플라스틱 동물복지를 외치는 이유다.

착해야 산다. 그래야 지구도 산다.
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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