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심야영업 단속 한달 유흥업소「제2의 통금」명암'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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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02. 오전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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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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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30년 전인 1990년 2월 2일 경향신문 사회면에는 ‘심야영업 단속 한달 유흥업소「제2의 통금」명암(1) 불황 한파 새해기습…술집마다 동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는 1990년 1월 노태우 정부가 실시한 유흥업소 심야영업 제한조치의 시행 한달을 맞아 이 조치의 명암을 살펴본 기획시리즈의 첫번째 기사였습니다. 당시 기사의 일부를 아래에 옮겨보겠습니다.

「제2의 통금」이라고까지 불린 유흥업소 심야영업제한조치가 시행 한달을 맞았다. “건전한 음주문화가 정착되고있다”는 찬성론과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비민주적인 조치”라는 반대론이 팽팽한 가운데 당국은 업소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 이 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단속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제한조치 실시 한달 이후 변한 풍속도, 범죄의 증감여부, 더욱 지능화하고 있는 변태영업의 실태, 그리고 제도적인 보완책 등에 대해 시리즈로 엮어본다.

3일째 내린 기습폭설로 대부분의 도로가 빙판길을 이룬 2일 0시 20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강남경찰서 한양파출소 맞은편 술집골목.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이 시간대에 카페 룸살롱 등의 네온사인과 입간판들이 현란한 빛을 내뿜으며 취객들을 유혹했으나 이날 대부분의 업소들은 문을 닫아 마치 폐광촌의 뒷골목을 방불케했다.

만취한 고객을 기다리며 1개차선을 점거하고 서있곤 했던 택시들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곧이어 업소들에서 일시에 몰려나온 40여명의 취객들이 지나는 택시를 향해 목적지를 목이 터져라 외쳐대고 있었다.

“양주1병못팔고 문닫는날도 있어요. 지난1월 한달판매고가 작년의 30%에도 못미쳤습니다” 87년초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다는 ㅇ카페 주인 최모씨(42)는 장사가 안 돼「미칠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업소에는 7명의 웨이터와 2명의 주방아줌마, 1명의 카운터 아가씨가 있었으나 이중 5명이 지난달 중순 수익이 맞지 않는다며 업소를 그만두었다.

심야영업 제한조치로 카페룸살롱 맥주홀 등 유흥업소가 울상인 반면 자정 이후에도 영업을 할수있는 관광호텔 나이트클럽과 안마시술소, 여관 등은 자리가 없어 손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 같은 시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관광업소인 ㄹ나이트클럽 입구에는 술기운이 채가시지 않은 채「2차」를 위해 온 10여명의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술 한잔 더 먹으려고 이 추위에 떨고 있어야 한다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동료 2명과 함께 업소측이 마련한 난로 불을 쬐던 한 손님의 푸념이다. 이 호텔 맞은 편 골목길에있는 여관들도 손님이 다 차 빙판길에 미끄러져가며 빈방을 찾던 30대 4명의 취객들은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려야했다.

(중략)

종업원들의 이같은 퇴직과 함께 카페 룸살롱 등 유흥업소 중 팔려고 내놓은 곳이 점차 늘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에서 1월 한달동안 팔려고 내놓은 카페 스탠드바 룸살롱이 80여곳, 방배동 일대가 50여곳에 이른다.

(중략)

여하튼 이번 조치는 수많은 유흥업소 종사자들을 희비 쌍곡선에서 웃고 울게 만들었으며 80년 통금 해제 이후 불황을 모르고 번창했던 유흥향락산업을 사양길로 접어들게 한 것만은 틀림없다.

1990년 1월 4일 오전 1시 심야영업제한으로 네온사인이 꺼진 유흥업소 밀집지역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당시 노태우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요정, 룸살롱 등 유흥업소와 음식점, 카페, 극장 등의 영업을 자정까지만 허용했습니다. 이 금지 조치가 시행되는 동안 일부 업소는 셔터를 내리고, 커튼을 친 채 몰래 영업을 하고, 단속이 나오면 손님들을 별실에 피신시키는 등 불법적으로 영업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제2의 통금이라는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이 심야영업금지 조치는 8년이 지나 김대중 정부 초기인 1998년 6월에서야 해제됐습니다. 요즘처럼 새벽까지 주점이나 식당에서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23년 전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1990년의 심야영업 제한 이전 1982년까지 국내에서는 보다 엄격한 야간통행금지 조치가 실시됐었습니다. 보통 줄여서 ‘통금’이라고 불렀던 이 조치는 1945년 9월 7일 미군정 포고령 1호에 따라 치안 및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시작된 이래 82년 1월 6일 폐지될 때까지 총 36년 4개월 동안 실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울과 인천이 대상지역이었지만 한국전쟁 휴전 이듬해인 54년 4월부터는 전국으로 확대돼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야간통행이 금지됐습니다. 61년에는 통금시간이 자정에서 새벽 4시로 축소됐고, 64년에는 제주, 65년에는 충북이 통금지역에서 제외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지만 통금제도 자체는 계속 유지됐습니다.

1982년 전두환 정권이 일부 해안·전방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통금을 해제한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뒤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자신들의 정통성 결여를 보완하기 위해 갖가지 유화정책을 실시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교복 자율화, 해외여행 자유화, 정치·사상범 사면복권 등도 통금 해제와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습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이나 1988년 올림픽 등을 위해서라도 통금 해제는 필수적이기도 했습니다. 통금을 그대로 두고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치를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통금 해제가 88 올림픽 유치 결정 이후 이뤄진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한국 사회는 1982년까지 실시됐던 통금이나 1998년 해제된 심야영업제한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통금과 비슷한 금지 조치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바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다중이용시설의 오후 9시 이후 영업제한입니다. 지난달 말과 2월 초들어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조치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지난달 31일 현행 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 거리두기와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식당·카페 밤 9시 이후 영업제한 등의 조처를 오는 14일까지 다시 연장한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다만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고려해 앞으로 한 주간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지켜보고 거리두기 단계 및 각종 방역 조치의 추가 조정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정부의 고민에서 보듯 한국 사회는 현재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면서도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해소한다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를 달성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태입니다.

2주간 연장된 거리두기에 대한 지난 1일자 경향신문 사설의 일부로 기사를 맺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어서 코로나19가 사그러들고 통금 아닌 통금이 해제되는 날이 오길 고대해 봅니다.

평소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서울 종로1가 젊음의 거리의 오후 9시 30분 모습. 김기남 기자

거리 두기 완화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방역 위험요소들이 산적한 만큼 정부 결정은 당연하다. 신규 확진자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2차 유행의 고점 수준이고, 이동량이 많아지는 설 명절과 각급 학교 개학도 앞두고 있다. 자칫 역학조사조차 어려운 산발적 지역감염이 발생할 수 있어 불필요한 이동과 접촉은 자제해야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코로나19 완치자가 변이 바이러스에 재감염된 사례까지 나왔고, 이번 봄에 더욱 높은 파고의 4차 유행이 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정부는 1주일간 환자 발생 추이와 감염 양상 등을 고려해 거리두기 단계 조정을 재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방역 경각심과 협조가 유지돼야 시민의 일상과 자영업자·소상공인 생계 회복도 앞당길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정부는 마음만 앞서 방역 단계를 내렸다가 환자 급증세를 불렀던 실수는 반복해선 안 된다. 정세균 총리가 거리 두기를 한번 더 연장하며 지목한 “3차 유행의 마지막 고비”를 민관이 합심해 넘어야 한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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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환경, 생태, 기후변화, 동물권, 과학 분야의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에서 열공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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