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우의시네마트랩] 홍콩의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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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로 신작 개봉이 어려워진 영화관은 작년부터 과거 영화와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지금 극장가에는 다양한 영화들이 걸려있다. 요즘 상영하는 과거 영화의 예가 왕가위(왕자웨이) 감독의 ‘화양연화’와 ‘해피 투게더’이다. 영화감독들은 자기가 살던 지역과 주민들의 삶, 역사를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 자기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도시의 역사가 결부되곤 한다. 예를 들어, 우디 앨런과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는 뉴욕, 폴 토머스 앤더슨 영화는 로스앤젤레스, 곽경택 영화는 부산이 배경인 경우가 많다.

왕가위의 1990년대 영화는 그 시절 우울하고 고독한 인물들이 거니는 홍콩 거리의 풍경을 보여주지만(열혈남아, 중경삼림, 타락천사), 1997년 홍콩 반환 이후에 나온 그의 영화들은 홍콩 거리를 화면에 담지 않으면서 홍콩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한다(화양연화와 일대종사). 화양연화는 시대적 배경이 1962년이고 같은 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남성 저우무윈과 여성 쑤리전이 자기 배우자들끼리 불륜관계임을 알게 된 후에 서로 의지하게 되는 얘기이다. 영화는 주로 비좁은 복도와 식당, 호텔 방에 있는 두 인물을 보여주며 탁 트인 외부 공간은 드물게 등장하는데 그것도 두 인물이 함께 걷는 밤거리뿐이다. 그래서 이 두 인물은 건물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좁은 실내 공간으로 홍콩의 인구밀도가 높다는 것을 연상시킨다.

제목인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순간을 뜻하지만 영화 속 두 인물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신문사 직원이자 작가 지망생인 저우무윈은 영화 후반부에 친구의 사업을 돕기 위해 싱가포르로 이주하고, 캄보디아를 방문한 드골을 취재하기 위해 캄보디아에도 간다.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저우무윈의 이런 여정은 홍콩이 남중국해에서 동남아시아와 연결되는 중심지역이었던 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홍콩을 생각하면 떠오르던 화려한 야경은 등장하지 않는 대신 쑤리전 역을 맡은 장만옥(장완위)이 입은 중국 의상 치파오의 화려함이 당시 홍콩의 화려함을 압축해서 표현한다. 그렇게 화양연화는 홍콩은 그 시절이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었음을 암시한다.

노광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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