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일상의 시선] 따뜻한 햇볕처럼

  • 박진관
  • |
  • 입력 2021-02-05   |  발행일 2021-02-05 제22면   |  수정 2021-02-05
아파트 현관에 붙은 입춘첩
각별한 액막이로 지레짐작
날은 매섭고 차가울지라도
계절의 입덧 시작됐다는 것
코로나가 없는 봄 맞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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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대구문학관장

#입춘

경주에 사는 글벗이 정성껏 쓴 입춘첩을 보내왔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엔 따뜻한 햇볕처럼 좋은 일이 많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고맙다. 입춘 일에 맞춰 붙여놓으니 한결 봄이 환히 열리는 듯하다.

올 입춘은 3일. 대개 4, 5일인데 올해는 좀 빨랐다. 봄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성급한 마음 같이 달력도 펄럭이고 있는 듯하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입춘은 대한과 우수 사이의 절기로 봄이 시작되는 기점이다. 새봄을 건강하게 맞기 위해 가정에서는 콩을 문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대문 기둥·대들보·천장 등에 좋은 글귀를 써 붙여왔다. 입춘첩을 대문에 처음 붙인 이로 조선 후기 효종 때 남인의 거두였던 허목을 꼽는다. 일종의 액막이였던 셈인데, 이를 식자들의 멋으로 바꾸어 드러낸 게다.

입춘첩은 한옥 대문에 붙이면 제격이었다. 주거 환경이 아파트로 바뀐 후에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새삼 둘러보니 더러 아파트 현관문에도 붙어 있다. 올해가 별달라서 내 눈에 띈 걸까? 사람들이 올봄을 특별하게 여겨서, 각별한 액막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걸까?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이 극도의 심리적 위축으로 나타나 있는 때라서 그럴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한다.

#봄

그래, 날은 매섭고 차가워도 이제 봄기운은 피어오른다. 남쪽의 한 절에서는 홍매화가 피었다고 누가 스마트폰에 찍어온 걸 보여준다. 거제도에 다녀온 한 시인은 벌써 동백꽃이 피었다고 전한다. 스멀스멀 봄이 창궐하는 듯하다.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냐. 매년 봄 소식들을 기다리다 못해 설레는 마음으로 꽃 핀 걸 찾아 나서는 탐매(探梅)의 극성도 보이지 않았던가? 올해도 마음은 그대로다. 다만 지난해보다 더한 코로나가 창궐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모두를 우울하게 할 뿐이지만.

대구문학관 주위에도 곧 봄 소식이 열릴 것이다. 다시 잦은 산책. 한동안 카페 출입이 제한되고, 식당의 영업도 거리두기로 제약을 해서 사람들이 없는 텅 빈 골목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카페의 영업이 허용되고, 부분적으로 식당의 제한이 완화되긴 해도 빈 느낌은 여전하다. 그래도 향촌동 골목에는 사람이 산다. 특히 이 골목에는 사람들이 문 밖에 가지런히 내다놓은 화분이 많다. 그래서 철 따라 피는 꽃들을 볼 수 있다.

어쩌면 그 가운데서 곧 수선화가 싹 터서 꽃들이 한들거리는 반가움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경상감영공원의 홍매도 곧 필 게다. 공원의 한구석을 밝히는 납매와 영춘화의 소식도 궁금해 산책길에 꼭, 꼭, 들여다보기도 한다. 도시인들의 탈출 의식도 고조된다. 주말이면 청도로 빠지는 우리 동네의 4차선 도로가 꽉 찰 정도다. 저마다 봄 소식이 궁금한 게다.

입춘은 그런 기분이다. 입춘(立春)은 봄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보다 능동적으로 봄을 맞는 것이라고 '세움(立)'의 의미를 받아들인다. 글벗 이종암이 입춘 날에 보낸 카톡에서는 그 의미를 임신설로 풀어 눈길을 끈다. 임신을 하면 아이가 섰다고 하듯, 우주의 뱃속에 봄이 섰다는 의미라는 것. 그래서 이날부터 나른하고 싱숭생숭한, 계절의 입덧이 시작된단다. 그럴듯하다. 아무튼 그런 마음으로 코로나 없는 봄을 맞았으면 좋겠다.
시인·대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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