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 신호등]스스로 지켜야 할 마지막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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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05. 오전 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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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정치부 차장


'격리'라는 뜻의 영단어 'Quarantine(쿼런틴)'은 40일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흑사병 당시 40일간의 격리를 뜻하는 이탈리아 베니스의 방언 'Quaranta giorni'에서 유래했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14세기 유럽의 항구에서는 모든 선박과 선원이 지정된 섬에서 40일간을 격리한 후에야 입항을 허용했다.

당시에도 거리두기는 전염병 대응의 기본이었다. 이 같은 조치에도 유럽은 당시 인구의 30%를 잃었다. 7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 방역의 1차 원칙은 격리와 거리두기다. 아직 전적으로 강제격리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지만 백신 접종을 눈앞에 둔 지금은 시민 스스로가 자신과 가족, 지역구성원을 지켜야 할 마지막 고비다.

흑사병 유행 당시 유럽 의사들은 새 부리 가면과 검은 옷을 입고 지팡이를 든 저승사자 같은 모습으로 전염병 환자들을 치료했다. 이는 프랑스의 이름난 의사였던 샤름 드 롬이 고안했다. 미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나름의 효과가 있었다. 가면은 환자의 비말이 튀는 것을 막아주었고 부리 안에는 약재가 들어 있어 외부공기를 다소 정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현재의 마스크와 비슷한 역할을 한 것이다. 중세 유럽인 조차 전염을 막기 위해 가면을 썼다. 최근 6개월간 강원지역에서 마스크 미착용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사례는 1건에 불과하다. 결국 마스크 착용과 5인 이상 사적 집합금지 모두 강력한 단속보다 자율참여에 방점을 찍고 있다. 코로나 장기화로 자율방역과 협조가 최대 관건이 된 것이다. 강원도는 이달 중 마을이장을 중심으로 한 주민 주도 방역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시민이 방역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코로나 발생 초기 당국은 물론 많은 시민이 '환자의 동선'에 집착했으나 대유행이 일상화된 지금은 자율방역과 함께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 공공의료 인프라에 대한 그간의 인색한 투자는 뼈아팠다.

조선시대 병든 백성의 구제를 담당하는 활인서(活人署)는 전염병 전용 병상을 운영한 기록이 있다.

또 1,500여년 전 중국 남북조 시대 제나라는 최초의 전염병 격리시설인 육질관(六疾館)을 두었고 송나라는 공공병원이자 전염병 전문 시설인 안락방(安樂坊)을 설치했다. 청나라는 천연두 격리시설 피두소(避痘所)가 있었다. 오래전부터 감염병 전문 시설의 중요성이 입증됐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나 질병관리본부를 감염병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청으로 격상했다. 강원도는 급히 감염병전담조직을 신설했지만 하루아침에 인프라를 갖출 수 없듯이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 인해 중증환자병상이 모두 소진돼 병상 대기 중 사망한 아픈 기억도 경험했다.

강원도는 변변한 생활치료시설이 없어 공무원 교육시설을 급히 생활치료시설로 전환했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공동화장실이 설치돼 전염병 치료시설의 기본수칙인 격리가 불가능한 부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포스트 코로나는 반드시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 확대를 전제해야 한다. 지금은 스스로 멈춰 지켜야 할 때이며 앞으로는 투자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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