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30대 여의원에 반말 일쑤... 국회, 한국서 가장 뒤처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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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06. 오전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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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미리 기자의 1미리]
‘의정보고서 실험’ 장혜영 의원·이슬아 작가
“차분하지만 급진적인… 내게 안전한 선택은 없다”

지난달 19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정의당 장혜영 의원. 성추행 발생 후 당에서 비공개로 진상 조사가 진행될 때였다. 인터뷰에서 장 의원은 관련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입장문에서 그는 “속으로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정해진 일정을 소화했다”고 밝혔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정의당 장혜영(34) 의원은 현재 한국 정치의 ‘태풍의 눈’이다. 장 의원은 지난달 25일 김종철 당대표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공개했다. 김 대표는 사퇴했고, 정의당은 이번 사태를 책임지는 뜻에서 재보궐선거 불공천 방침을 지난 3일 확정했다.

반응은 극명하게 나뉜다. 후원금 이체를 인증하며 장 의원을 열렬히 응원하는 층이 있는가 하면, 정의당 지지자 중에서도 굳이 떠들썩하게 논란을 만들어야 했느냐며 비판하는 부류가 있다.

기자는 이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인 지난달 19일 장 의원을 인터뷰했다. 장 의원이 낸 ‘차분하고 급진적인’이란 제목의 실험적 의정 보고서가 계기였다. 후원회장인 이슬아(29) 작가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만든 독특한 문고판 보고서였다.

장혜영 의원은 진보 정당 소속이면서도 당론을 거스르고 소신 행보를 보여왔다. 지난해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땐 “차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애도할 수 없다”며 피해자 편에 서서 조문을 거부했고, 12월 공수처법 개정안 표결에서도 ‘찬성’ 당론을 따르지 않고 ‘기권’을 선택했다.

연초 인터뷰를 요청했고, 지난달 19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장 의원과 이 작가를 만났다. 지난달 25일 낸 입장문에서 장 의원은 “사건 발생 시점은 지난 15일이고, 사흘 뒤인 18일 당에 알렸다”고 밝혔다. 기자와 인터뷰한 시점은 그 직후였지만, 장 의원은 관련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장 의원은 입장문에서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선 안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건 발생 당시부터 지금까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속으로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고, 토론회에 참석하고,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사람들은 저의 피해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피해자의 정해진 모습은 없습니다. 그저 수많은 ‘피해’가 있을 뿐입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자는 사건 후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굴기 위해 최선을 다한 장혜영”을 마주했고, “피해를 눈치채지 못한 사람” 중 하나다.

당대표의 성추행 폭로 후 추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장 의원 측은 “지금은 일상 회복이 우선이며, 국회의원으로서 직분인 의정 활동에 전념하며 일상 회복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 해당 사건과 관련해서는 향후 적절할 때 말씀드리겠다”며 고사했다. 류호정 의원 비서 해고 논란까지 잇따라 터지며 정의당이 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부담을 느끼는 것도 같았다.

고심 끝에 두 사람 인터뷰를 싣기로 했다. 사건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내게 일상은 정치의 최전선”이라고 강조한 장 의원이 인터뷰 중 묵직한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했음을 뒤늦게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혜영(왼쪽) 정의당 의원과 이슬아 작가. 13년 전 대학생과 고등학생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제 국회의원과 후원회장이 됐다. 이들은 “모든 일상이 결국 정치 위에서 흘러가는 것”이라며 “지루하지 않게 정치를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차분하니 급진적일 수 있다

#장혜영. 2018년 17년간 장애인 시설에서 산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을 시설 밖으로 데리고 와 자립시키는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으로 알려진 감독이자 장애인 인권 활동가. 유튜버, 작가, 싱어송라이터로도 활동한 창작자 출신이다.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린 건 연세대(신문방송학과) 4학년생이던 2011년 자퇴할 때다. 취업 기지로 전락한 대학을 떠나면서 중앙도서관에 써붙인 대자보 ‘공개 이별 선언문’으로 뉴스를 장식했다.

#이슬아. 한 달에 1만원을 내면 매일 한 편씩 글을 써서 보내는 구독 서비스 ‘일간 이슬아’ 작가. 자칭 ‘연재 노동자’이자 글쓰기 교사다.

이 작가는 장 의원 후원회장. 둘은 “의원·후원회장 나이 합산 역대 최연소 ‘흙수저’ 조합”이라며 웃었다. 둘 다 최근 전세 자금 대출을 받아 겨우 월세에서 탈출했다.

장혜영 의원이 책상에 붙여 놓고 매일 본다는 자필 메모.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의정 보고서 제목이 특이하다. 차분하면서 급진적일 수 있나. 형용 모순 아닌가.

장혜영(이하 장): “어쩌면 차분해서 급진적일 수 있지 않을까. 차분하다는 것은 충분히 시간 들여 고민한다는 얘기다. 고민의 끝이 급진적이면 그걸 내놓는 것이다. 내 정치 스타일을 어떤 단어로 규정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조용하면서도 할 말 다하고 급진적인 얘기도 차분하게 하는 편이더라.”

–보통 후원회장은 은사, 정계 원로, 사업가가 한다던데 특이한 조합이다.

장: “주로 돈을 많이 내거나 돈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 후원회장을 맡는다고 한다. 나는 돈보다 사람들 관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젊은 세대가 ‘정치도 내 영역이 될 수 있구나’ 하고 정치에 친근감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런 관점을 확장해줄 적임자가 이슬아였다.”

–둘이 어떤 인연이 있었기에.

이슬아(이하 이): “13년 전 대안학교에 다닐 때 조한혜정 교수가 이끈 연세대 청년문화원의 웹진 프로젝트에 청소년 필자로 참여했다. 당시 코디네이터가 장 의원이었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으로 만났는데, 수평적 소통을 중요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장 의원을 통해 처음으로 어른과 동등하게 관계 맺는 법을 배웠다.”

이후 연락이 끊겼다. 장혜영은 ‘일간 이슬아’ 애독자, 이슬아는 장혜영 유튜브 ‘생각 많은 둘째 언니’ 팬이었지만 같은 인물인 줄은 몰랐다. 첫 만남 때 닉네임을 써서 실명을 몰랐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잡지 ‘페이퍼’에서 주는 ‘십만원 문화상’ 시상식에서 만나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입력하려고 보니 이미 저장된 번호였다. 그제야 서로 알아봤다.

장: “후원회장을 맡아달라고 연락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정치 지향을 갖는다는 것이 예술하는 사람에겐 제약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흔쾌히 바로 승낙했나.

이: “장 의원이 정치에 뛰어들며 쓴 ‘공개 정치 선언문’을 읽으면서 울컥했다. 맘속 깊이 응원했다. (선언문에서 장 의원은 ‘바꿔달라고 요청하는 정치’에 지쳐 ‘직접 하는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장 의원이 당선 후 전화를 했다. 받자마자 ‘저 돈 낼까요? 백만원은 낼 수 있어요’ 했더니, ‘후원이 아니라 후원회장을 맡아달라’고 하더라. 어떤 역할인지 제대로 몰랐지만 바로 하겠다고 했다. 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후원회장이 됐다고 하니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 회장 같은 거냐고 묻더라(웃음).”

이 작가 계좌로 이체되는 장 의원 후원금은 대개 소액이란다. “커피 값 아껴 3000원, 5000원 보내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30대 여성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

–둘 다 언어에 예민한 것 같다.

장: “생각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채널이 내겐 글이다. 선예도(線銳度) 높은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정치적인 일이다. 갈등과 긴장을 드러내니까. 동시에 매우 피곤한 일이다.”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장 의원은 두 번 글을 올렸다.

–직접 경험한 한국 정치의 언어는 어떤가.

장: “판으로 찍어낸 판화 같은 언어를 쓴다. 늘 봐왔던 장면을 끝없이 재생하는 느낌이랄까. 정치인들이 자기가 지향하는 바를 향해 끊임없이 자기 언어를 갈고닦으며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하는 법을 고민해야 하는데, 편 가르고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데 최적화된 언어를 찾는 데만 골몰하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이: “정치인의 언어 중엔 일상에서 쓰지 않는 사어(죽은 말), 한자어가 많다. 그래서 잘 들리지가 않는다. 장 의원은 매우 구체적인 단어를 선택한다. 어떨 땐 저 사람 적이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의정 보고서에 동료 의원들한테 반말을 많이 들었다고 썼던데.

장: “진짜 많이 들었다. 카메라 꺼지면 거의 모두 반말을 섞어 쓴다.”

이: “전에 동료 의원에게 반말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그 뒤에도 똑같은가?”

장: “경로 의존성(한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면 못 벗어나는 성질)이 어마어마하다. 국회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뒤처진 곳 같다.”

–국회에서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 반년 가까이 지내보니 어떻던가.

장: “내가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웃지 않으면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청년답게’가 중요하더라. 저자세로 ‘선배님~ 저는 하나도 모르는데 가르쳐 주세요~’ 하고 말하길 바란다. 의견이 충돌하면 설설 기기를 바란다. 내겐 그런 기능이 탑재돼 있지 않다. 국회의원 하나하나가 독립된 입법기관으로 동등한 것 아닌가. 한국 정치는 새로운 것을 원한다고 하면서 낯선 것은 불쾌해한다. 초반에는 뒤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게, 자격도 없는 게 들어와서 저런다’고 수군대는 게 귀에 들어왔다. 6개월쯤 지나니 ‘혼자 잘난 척한다’로 바뀌어 있더라.”

이: “아마 프리랜서이기에 몸에 밴 태도일 것이다. 둘 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하고 일찍 창작자로 생활을 시작했다. 프리랜서에겐 명확한 글과 말이 중요하다. 이메일도 똑 부러지게 써야 하고 불필요하게 웃지 말아야 한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란 말도 남발해선 안 된다. 호구 잡히기 십상이니까.”

장: “경력 오래된 우리 보좌관이 이전 의원실에선 안 겪어본 경험을 많이 한단다. 제 이름으로 보도 자료가 나가는 순간 이상한 댓글로 트집 잡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슷한 사안으로 남성 의원이나 여성이라도 중견 정치인은 안 건드리는데 소수 정당에다가 청년 여성 정치인에게 씌우는 프레임이 있는 듯하다.”

장혜영(왼쪽) 의원과 후원회장 이슬아 작가. 이 작가는 “후원회장 됐다니까 글쓰기 배우는 학생들이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 회장 같은 거냐고 묻더라”며 웃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갈등 회피 안 돼…행동으로 표현한다

–박원순 전 시장 조문 거부, 공수처법 반대 등 당론과 다른 결정을 했다.

장: “북한 같은 일당 독재 전체주의도 아닌데, 당이 늘 한 의견을 갖는 것은 이상하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권리가 민주주의 사회에선 중요하다. 국회법에도 국회의원이 당 견해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투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장혜영이라는 사람이 첨예한 갈등 상황에서 회피하고 안전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일부 보수층에서 장 의원의 소신 행보를 응원하더라.

장: “엄격한 목사 딸인 친구가 있다. 제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것을 보고 친구 아버지가 싫어하셨는데 공수처법 반대하는 모습을 보곤 ‘근성 있다’고 평가하셨단다. ‘꼴보수인 내가 진보 정당 의원 팬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차별 금지법은 동성애 퍼뜨리는 악법’이라고 댓글 단 분도 있다. 그런 게 생산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진영 속에 파묻혀 있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안에 입체적 관점을 가지는 개인이 되고 싶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전통적 진보·보수 프레임은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기엔 너무 낡은 틀이다.”

이: “이렇게 좋은 흔들림을 주시는 분이다(웃음).”

–정의당 지지자들한테 비판받기도 한다.

장: “참 어렵다. 창작자일 때는 내 생각을 또렷하게 표현하고 책임지면 끝인데 대의(代議) 정치인으로 결정하는 건 다른 얘기다. 저로 대변되는 군중이 있는 거니까. 늘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선택을 할 수는 없다. 왜 결정을 했는지 끊임없이 설명하는 책임을 지고 나아갈 뿐이다.”

–지난 9월 대정부 질문에서 ‘87년생 청년 정치인이 87년의 청년들께’라는 연설로 86세대를 향해 “기득권이 됐다. 뜨거운 심장이 왜 식어버렸나” 하고 직격탄을 날렸다. 현 정권도 거침없이 비판해 이른바 ‘문빠’의 집중 공격도 받았다.

장: “‘어둠의 팬클럽’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관심을 주는 거니까. 거친 말을 듣더라도, 정치인으로서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인지되는 편이 낫다고 본다. 변화 가능성이 있으니까.”

–장 의원더러 ‘관종’이라는 사람도 있더라.

장: 사실 정치인은 누구나 관종 아닌가.

문고판 에세이 같은 느낌의 장혜영 의원 2020 의정보고서 ‘차분하고 급진적인’.

정치에도 쉬운 말이 필요해

–의정 보고서에 ‘의정 보고서란 무엇인가’부터 ‘입법 과정’까지 기초적인 얘기가 나오더라.

장: “처음으로 정치 관련 글을 접하는 사람도 쉽게 끝까지 읽게 하자, 앞장을 읽는 것이 뒷장을 읽는 힘이 되게 만들자고 했다.”

이: “제 또래 밀레니얼 세대가 장혜영이라는 정치인을 통해 ‘정치 문해력’을 높인 느낌이다. 개인적으론 후원회장이 아니었으면 지나쳤을 일들이 좋든 싫은 제게도 화두가 된다. 장 의원을 통해 이 시대의 슬픔과 고통의 지형을 알게 된다. 장 의원이 발의한 차별 금지법, 중대 재해 기업 처벌법 등이 슬프고 고통받는 사람들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역할이 뭘까.

이: “최저임금 받으면서 정말 힘든 건 시간과 돈이 함께 없는 것이란 걸 느꼈다. 우리 사회엔 내가 움직이고 싶지 않은 방향으로 바쁘면서 돈도 없는 삶이 많다. 그런 삶을 줄여나가는 게 정치의 역할 중 하나 아닐까.”

장: “정치를 시작하면서 ‘가난하고, 병들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평등하게 보장되는 미래를 갖고 싶다’고 했다. 불평등이란 관점에서 볼 때, 미래가 열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이미 다 정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을 가진 사람과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사람 간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자기 운명을 정할 가능성을 지키는 정치를 하고 싶다.”

–이런 시도와 생각이 이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장: “엉망진창인 지금의 정치도 누군가 이상을 품고 정치를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나온 것 아닐까. 그런데 지금 시작하는 사람이 이상을 가지지 않으면 그 정치는 얼마나 더 빨리 망가지겠나. 앞으로 좌절하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단을 내려야 하는 딜레마를 마주할 수도 있을 거다. 훗날 헤매게 될 때 첫 의정 보고서를 펼쳐 보고 초심을 돌이켜 볼 것이다. ‘그래, 난 이런 것을 하려던 사람이야’ 하면서.”

–앞으로도 모든 일에 소신을 갖고 발언할 것인가.

장: “그렇다. 그게 사실 기본 아닌가. 무엇이 정치인가에 대한 정의는 다를 수 있다. 다만 훨씬 더 품위 있는 정치를 꿈꾸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장혜영 의원은 지난 1일 의정 활동에 복귀하자마자 프리랜서를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가 흔들릴 때마다 들춰보겠다는 첫 의정 보고서엔 이런 구절이 있다. “정치는 끝없이 슬퍼하고 분노하면서도, 내일을 생각하고 살아갈 힘을 남겨두는 것이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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