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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상회

  • 작성일 2015-04-28
  • 조회수 476

<장수상회>를 가다

# 병실 안, 반짝 제정신으로 돌아온 성칠과 기운 차린 금님의 대화

금님(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이때만 해도 큰 며느리가 건강하고 참 고왔는데, 장수 우리 큰아들 지 마누라 떠나보내고 얼마나 허전했을까? 그래도 딸이 엄마를 많이 닮아서 그 빈자리 채워주고 그러는 모양이유. 여봐요, 성칠 씨. 손녀딸이 지 엄마를 쏙 빼닮지 않았어요?

성칠(곁눈질로 사진을 흘끗 보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금님(다시 사진을 보며) 아유, 우리 딸. 인물값 한다고 그러는가 지 서방하고 갈라서더니 눈물이 많아져서는, 그래도 당신이 꽃집 차려준 덕분에 나랑 같이 일하고 다영이 잘 키우고 사니 그나마 안심이 되잖우, 안 그래요 성칠 씨?

성칠(금님의 말이 모두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만 끄덕끄덕)

금님(옛날 결혼식 사진을 꺼내들며) 여보, 우리도 이런 좋은 시절이 있었유.

성칠(그제야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아, 당신 이때 고왔지, 참 고왔어.

금님(미소)당신도 멋졌어요. 공은 또 얼마나 잘 차든지. 당신 참 멋졌어요. 성칠 씨.

# 성칠의 방, 성칠의 내래이션.

2013년 4월 10일 전두엽 변이성 알츠하이머, 치매를 진단받았다.

2014년 1월 5일, 평생을 살았던 동네에서 길을 잃었다.

2014년 4월 10일 아내가 평생 바라던 꽃가게를 차려주었다.

2014년 6월 2일 아내가 췌장암 말기다. 아내가 아픈 걸 내가 기억할 수 있을까.

# 병원 로비, 성칠을 붙들고 울먹이는 큰 아들 장수.

장수: 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새끼란건, 자식이란건 여기 가슴 어딘가에 묵직하게 들어앉은 돌댕이 같은 거라고... 이제 좀 뭔 소린지 알겠어요. 그러니 그냥 이대로 저희랑 사세요. 저희들이 (아버지 가슴속에) 악착같이 꽉 들어앉아 있을께요.

# 영안실, 최호섭의 쓸쓸한 빈소 앞, 성칠

성칠(홀로 노래 부르는) 귀신 잡는 용사, 해병~ 우리는 해병대

(울먹이며)라이라이라이라이, 차차차 라이라이라이라이, 차차차

#놀이공원 화장실 앞

금님(밖에 있는 성칠을 향해 )노래 좀 불러주세요.

성칠(노래하는)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갖고 싶소~

#병실 안, 성칠과 금님

금님: 노래 좀 불러주세요. 기죽지 말고 힘내라고

성칠: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갖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오. (눈물 흘리는 금님)

# 왈츠교실 수료식, 곱게 차려입은 성칠과 금님

연습생들(소리 높여) 김 성칠, 김 성칠, 김 성칠.

성칠,금님 (무대중앙으로 나와 왈츠를 추기 시작하는, 부드럽게 리드해가는 금님)

#안면도 꽃 축제장, 성칠과 장수

성칠 (꽃밭에서 사진 찍는 가족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다)

장수 (성칠을 발견하고) 여기서 뭐하세요, 너무 멀리 오셨어요.

성칠: 그 사람 어딨어, 그 사람 어딨냐고?

(말없이 성칠을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한다)

#비오는 어느 처마 밑, 성칠과 금님

성칠(새 안경집에서 안경을 꺼내며) 받아요, 이거. 제 생일선물이예요.

오늘 한복 입은 거, 참 예쁩디다.

금님(처마 밑에 핀 꽃을 보며) 봄꽃이 가을에 다시 피는 거래요.

안 죽고 살아서 다시 피는 거. 막 핀 꽃.

성칠(혼잣말로) 막 핀 꽃.

#결혼식에 온 성칠과 금님

결혼식이 끝난 텅 빈 예배당으로 무언가 이끌린 듯 혼자 걸어 들어가는 성칠.

성칠: 전에 와 본 것 같기도 하고, 꿈속에서 본 것 도 같고.

금님: 성칠씨, 넘 행복하지 않아요? 이런 날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얘기만 해요.

#오후의 공원, 금님과 성칠

금님(벤치에서 일어나)성칠 씨~

성칠: 미안하오. 깜박했어.

가끔, 이렇게 새카맣게 기억이 안 나는 때가 있소.

# 봄 들녘, 고교생인 성칠과 금님의 첫 만남.

성칠(수줍게) 저기, 이름이 어떻게 되요?

금님(머뭇거리며) 저기, 제 이름은, 제 이름은요...

#병실 바깥 정원, 기억을 잃은 성칠과 그를 만나러 온 금님

금님: 저기, 이름이 어떻게 되요?

성칠(금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앞만 바라보며)내 이름은, 나는, 나는...

#가을 들판 앞, 고교생인 성칠과 금님

성칠: 제 이름은 김성칠. 별 성, 일곱 칠. 그쪽은요?

금님: 금님이요, 금님이. 임금님.

성칠: 아버님이 아주 귀한 이름을 주셨네요.

성칠 (금님을 향해)임금님, 안 잊어버릴께요.

금님: 나두요. 별 성, 일곱 칠.

#그들과의 인터뷰

성칠(박근형 분) 고등학생 때 길게 늘어선 나무 사이로 걸어오던 여학생이 생각났다. 시나리오에서 금님을 처음 만났을 때 딱 그런 느낌이었다.

금님(윤여정 분) 금님은 우렁각시 같은 여자다. 인물의 거죽을 떠올리고 나면 내면이 눈에 보인다. 인물의 내면은 시나리오에 다 나와 있다.

성칠(박근형 분) 먹고 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은 캐릭터만 생각한다. 왜 이 사람은 이렇게 행동할까? 라고. 항상 앞만 보고 가야 한다.

감독(강제규) 부모와 자식,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사랑과 인생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했다.

관객(로뎀비누) 영화 막판에 기막힌 반전이 있어 놀라웠다. 아쉬운 점은 재개발이라는 무거운 외투만 벗어던졌다면 영화가 한결 재밌고 더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사랑, 인생의 가치 따윈 나 몰라라 하고 재개발의 상업적 가치만을 우위로 놓고 설쳐대는 주변 인물들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패러디한 ‘철가방 휘날리며’란 상호가 인상적이었다. 잠깐이었지만 월남 용사, 최호섭의 장례식장에서 그가 즐겨 부르던 군가를 따라 부르며 울던 성칠의 인간적인 면모가 가슴에 와 닿았다.

관객2(아줌마1) 난 동네 마트에서 시간제로 일한다. 아줌마 고객이 카트에 우유를 담으며 불평을 하자 성칠이 우유를 거칠게 카트에 넣어주는 모습이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직원은 직원이다. 그 분, 서비스 평가점수 마이너스일 것, 친절 서비스교육 다시 받아야할 것같았다. 마트 청년도 그렇다. 일은 안 하고 늘 성칠 곁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농담이나 건네고 빈둥거린다. 마트에서 직원과 셀카 촬영, 꿈도 못 꾼다. 영화이기에 가능하다.

관객3(아줌마2) 재가센터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파킨슨, 뇌졸중, 치매는 노인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다. 우렁각시 같은 금님이 없어도 가족이나 동사무소직원이 신청하면 센터에서 우리 같은 요양보호사를 파견해 일상에 도움을 준다. 우린 독거노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러 가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일상과 병증완화에 도움을 주고있다. 색안경 끼고 보지 말아 달라. 성칠의 경우 치매등급으로 요양원 입소도 가능하다. 가족들이 생업까지 포기할 건 아닌 것 같고 치매 초기에 성칠을 요양원으로 좀 더 일찍 입소시켰어야 했다.

# 덧붙임.

장수상회를 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한 마디 조언하자면, 이 영화에서 늙은 노부부의 사랑을 그린 다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감동을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암에 걸린 부인이 중증치매에 걸린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한다는 설정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는다.

 영화 중간 중간 스펙터클한 볼거리는 많은 편이다. 모금함을 들고 가다가 불량소녀들에게 둘러싸인 사장 딸을 박인순(황우슬혜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해 돌려차기, 날아차기로 구해내는 장면이라든가, 토끼머리띠를 한 성칠과 금님이 놀이공원 기구를 타는 모습이라든가, 칠 십 먹은 버스 기사(백일섭 분)에게 달려들어 해병대 특공무술 맛을 보여주겠다고 덤비는 성칠의 소심한 격투신 따위가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두 주인공의 고교시절, 순수한 통성명 방식은 누군가에게 내 이름도 그렇게 소개하고 싶어진다. 영화 속 박인순이 성칠을 향해," 어질 인, 착할 순 박 인 순입니다. 어르신." 말했던 것처럼 예의를 갖춰, 또박또박 한 글자씩 통성명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