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현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시선)

영화 <인셉션>을 본 적이 있는가. 2010년 개봉한 영화인데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가 생각을 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용이다. 꽤 흥미로우면서도 대중영화치고는 어려운 영화다. 두 번 이상은 봐야 이해된다.

주인공 ‘코프’가 자신의 꿈속 카페에서 신입 멤버 ‘아리드네’에게 꿈속에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꿈은 중간부터 갑자기 시작되기 때문에 곰곰이 자신이 왜 이곳에 와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어떻게 자신이 이곳에 왔는지 기억해 낼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직장내 괴롭힘 사건 상담을 하면서 가끔 이 영화를 생각해 보곤 한다.

필자는 피상담자가 자리에 앉으면 상담 주제를 확인하고 몇 가지 상담방법을 설명한다.

첫째 상담의 목적은 법적 해결 내지 이에 준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기술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 때문에 필자는 피상담자에게 시간 선상의 사건을 순서대로 맞춰 정리하는 작업을 할 것이고, 가해자가 있다면 그 인물을 중심으로 구체적 사실행위를 시간·장소·내용·감정·증거 단위를 구별해 정리할 것이다. 이 작업만을 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상담자는 피상담자가 원하는 목적을 찾거나 방법을 안내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이런 상담방식에 대해 피상담자의 동의를 구하는 이유는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고 피상담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진행하게 될 불편한 상황을 미리 이해받기 위함이다. 필자는 상담시간 내내 피상담자의 피해 사실을 캐묻고 의심나는 부분을 계속 확인하려고 할 것이다. 자칫 피상담자가 불편한 마음만 가지고 돌아가게 할 확률이 높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하는 상담방식에 피상담자는 처음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이해했다는 것이지 반드시 상담이 순조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위 영화처럼 필자는 피상담자가 지정한 고통의 시간을 결론으로 정해 말미에 놓고, 그 원인의 시작 시점을 찾아 변화한 인물이나 상황을 파악하는 것으로 사건 정리를 시도한다.

그러나 시작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피상담자는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나, 고통을 준 행위 사실을 기억해 정리하지 못한다. 이러한 피상담자들은 주로 증거가 없다. 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라서 기록을 안 했다는 정도로 이야기하나, 사실 상담자인 필자가 묻는 건 정확한 증거나 기록이 아닌 대상물을 찾는 과정이다. 오늘 여기까지 오면서 무엇을 타고 왔는지 어디를 지나쳐 왔는지 대략적이고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묻는 일이다.

직장내 괴롭힘의 피해 서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피상담자가 어떤 문맥이나 상황을 말하지만, 가해자 혹은 피해 행위 사실이 불일치하거나 피해 시간 불일치 또는 지나친 시간 격차 상황이 있으면 필자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설명한다.

① 피상담자가 어느 시점 하나의 사건을 피해로 정의하고, 이를 다시 연료 삼아 자신을 피해자로 확정한 뒤 현재 원인과 과정이 잘 그려지지 않는, 나 자신만의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로 남아 있는 상태일 수도 있다.

② 또 하나의 가능성은 피해 사실이 구체적으로 존재하나 자기 방어기제로 인해 기억력과 인지력이 낮아져 기억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상담을 통해 필자가 처방하는 방식은 영화 <인셉션>과 비슷하다. “꿈 같은 것은 아닌지 조금만 떨어져 천천히 내가 이곳에 온 사정을 다시 살펴봐 달라.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만 꿈에서 깨어나는 나만의 ‘킥’을 고민해 봐야 한다.”(‘킥’은 영화 <인셉션>에서 등장인물들이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이다.)

영화에서 림보(가톨릭에서 지옥의 변방을 뜻하는 말인데 영화에서는 무의식의 늪을 의미한다)에 빠진 ‘사이토’는 꿈을 본인을 현실 세계라고 인식해 수십 년을 꿈속에서 살아 노인이 된다. 하지만 영화에서 사이토는 꿈에서 깨어나 다시 젊은 시절인 현실로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가 아닌 현실을 사는 피상담자는 돌아갈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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