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3] “모래 속에 보배있다” 모세의 축복… 유리·반도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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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02. 오전 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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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 시공 초월한모세의 축복과 반도체
한국 경제의 무역 의존도는 63.5%(2019년)다. 무역이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셈이다. 수출 품목 중 1등은 반도체다. 우리 수출의 5분의 1을 책임지고 있다. 반도체로 만드는 컴퓨터,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가전제품, 전기자동차 등 연관 제품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우리의 먹거리가 반도체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하느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중략)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신명기 33장 1, 19) 여기서 모세는 후손들에게 모래를 콕 찍어 가르쳐주며 축복했다. 실제로 모래는 이후 많은 기적 같은 일을 해낸다.

성경에 따르면,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민족에게 신(神)은“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라”는 축복을 내렸다. 로마 시대 유대인 유리 세공업자들은 유리 공예품을 만들어 수출했고, 중세 네덜란드의 유대인 공동체는 독보적 유리 연마 기술로 안경·망원경·현미경을 만들었다. 현대에 이르러 모래의 주요 성분 규소로 반도체 기반의 증폭기‘트랜지스터’를 고안해낸 것은 미국의 유대인이었다. 19세기에 활동한 덴마크 화가 크리스토퍼 빌헬름 엑커스베르크의 유화‘홍해를 건넌 뒤 쉬는 이스라엘인들’. /위키피디아

가나안 사람들은 모래를 갖고 인류 최초로 유리를 만들었다. 유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1세기 로마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제36권에 쓰여 있다. “어느 날 천연 소다를 교역하는 페니키아 상인들이 시리아의 베리우스 하구 모래밭에서 천연소다석을 솥의 받침대로 사용하여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불을 피웠다. 불길이 너무 강해 소다석과 흰 모래가 한꺼번에 녹았다. 이게 다시 굳으면서 투명한 물체 유리가 만들어졌다.” 그리스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페니키아인이라 불렀다. ‘자주색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가나안 사람들은 값비싼 유리 제품 수출로 번영을 누렸다. 모세가 말한 축복의 첫 실현이었다.

1세기 입으로 부는 대롱 불기 기법이 개발된 이후 유리 공예품이 대량생산되었다. 로마 시대 유대인 유리 세공업자들은 제조 기법 비밀을 지키기 위해 베네치아 외딴 섬에서 유리 공예품을 만들어 수출했다. 고구려와 백제 유적에서는 나오지 않는 로마 유리 공예품이 신라 고분에서만 출토되는 것은 이 물건들이 실크로드가 아닌 해상 교역망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16~17세기 네덜란드 유대인 공동체는 보석 무역을 독점해 독보적인 보석 및 유리 연마 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안경 직공 역시 많았다. 그들이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이용해 망원경과 현미경을 만들어 눈에 안 보이던 많은 걸 보게 해주었다. 이로써 과학과 의학이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망원경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1608년 네덜란드의 안경 직공이었던 한스 리퍼세이다. 이듬해 개발된 갈릴레이의 망원경은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쾰른의 4세기 로마 시대 유리컵. 고도로 발전된 로마 시대 유리 세공 기술을 보여준다. 뮌헨 유물컬렉션 소장. /위키피디아

1660년경 네덜란드의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오목렌즈와 대물렌즈를 이용해 100~300배 배율의 현미경을 만들어 미생물과 세균들을 관찰했다. 이후 현미경은 의학과 물리학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660년 유대교 사회에서 추방된 스피노자는 렌즈 갈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광학에 관심을 가져 그의 철학에 과학적 사상이 반영되었다.

모래의 축복은 계속되었다. 모래의 주요 성분인 실리콘(규소)으로 반도체가 만들어졌다. 실리콘은 지구 지각에서 산소 다음으로 풍부한 원소이다. 1930~40년대 라디오, TV 등의 진공관은 부피가 크고, 전기 소비가 많고, 자주 꺼져 수시로 교체해야 했다. 미국 최대 통신회사 AT&T는 진공관을 대체할 깨지지 않고 오래가는 전자 증폭기를 원했다. 이를 해결한 과학자가 바로 유대인 윌리엄 쇼클리였다. 그는 반도체 기반의 증폭기 곧 ‘트랜지스터’의 기본 개념을 고안해내 1948년 벨연구소에서 진공관을 대체한 트랜지스터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원료가 게르마늄에서 실리콘으로 바뀌면서 트랜지스터가 대량생산되었다. 쇼클리와 그의 동료 2명은 ‘반도체 연구와 트랜지스터 효과 발견’에 대한 공로로 195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 뒤 쇼클리로부터 독립한 페어차일드사가 트랜지스터 회로를 실리콘웨이퍼에 집적시킨 ‘실리콘 집적회로’를 개발했다. 이후 반도체는 정보화 시대를 열었다.

실리콘밸리 탄생 이면에는 6.25 전쟁이 한몫했다. 당시 스탠퍼드 대학에는 2차 대전 때 하버드대 전파연구소를 이끌었던 프레더릭 터먼 교수가 있었고, 대학 인근에는 방위산업단지가 있었다. 이런 연유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스탠퍼드 대학은 유명 대학들을 물리치고 군과 협력하는 전파연구소가 대학 내에 설치되었다. 당시 미군은 소련 비행기와 잠수함 그리고 핵무기를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전쟁이 레이더 정보 수집 등 전자전 양상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랜지스터’개념을 고안한 유대인 엔지니어 윌리엄 쇼클리(위 왼쪽)와 실리콘밸리 탄생의 주춧돌을 놓은 스탠퍼드대 프레더릭 터먼(위 오른쪽 ) 교수. 아래 사진은 놀라운 단결력으로‘페이팔 마피아’로 불렸던 실리콘밸리 젊은 사업가들의 2007년 모습. /위키피디아, 포천 홈페이지

미국 정부의 막대한 연구 자금을 지원받은 스탠퍼드 대학은 실리콘밸리를 조성하는 첫발을 내딛는다. 1953년 80만평 부지의 스탠퍼드 연구단지가 건립되었다. 터먼 교수는 학생들에게 창업을 장려했다. 그는 대학 소유 지식재산권을 창업하는 학생에게 과감하게 이양하는 정책을 단행해 학생들이 대학 소유 기술을 이용해 창업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터먼 교수의 정책 덕에 벤처 기업들과 벤처캐피털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성장하면서 터먼 교수 제자가 만든 휴렛패커드(HP)를 비롯한 IT 기업들이 설립되어 실리콘밸리 탄생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 미국 반도체 회사 45개 가운데 페어차일드, 인텔 등 40개가 실리콘밸리에 모여들었다. 실리콘밸리는 신기술을 주도해 정보화 시대를 열었다. 모세의 축복이 실현되고 있는 곳이 실리콘밸리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미국 정부는 베트남전 파병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개발 차관과 과학연구소 설립 원조를 제의했다. 한국정부는 스탠퍼드 산업단지의 성공을 한국에서도 실현하기 위해 터먼 교수를 초청해 1971년 한국과학기술원과 대덕연구단지를 설립했다.

삼성의 반도체 산업 진출은 이병철이 1983년에 선언했지만, 그 뿌리는 1974년 이건희에게서 시작되었다. 당시 30대의 이건희는 반도체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반도체 산업 진출을 건의했으나 무산되자, 사재 4억원을 털어서 파산 직전의 한국 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했다. 이건희는 아버지에게 반도체의 미래에 대한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 이병철이 18년 만에 미국 나들이를 할 일이 생겼다. 이건희는 실리콘밸리 견학을 주선해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이병철이 충격받은 것은 휴렛패커드 사무실이었다. 직원들이 컴퓨터 하나로 계산, 기획, 보고까지 거의 모든 일을 해내고 있었다.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정신이 확 들었다. 컴퓨터와 반도체가 예상보다 빠르게 핵심 산업으로 클 것을 직감했다. 이병철은 결심했다. “반도체 사업은 나의 마지막 사업이자 삼성의 대들보가 될 사업이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병철은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인재를 끌어모아 1983년 2월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그해 말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64KD램 개발에 성공했다. 공장도 지어지지 않았을 때였다.

모래에서 추출한 실리콘이 반도체를, 반도체가 실리콘밸리를 만들었고, 실리콘밸리의 구글, 페이스북 등 많은 유대인 기업이 주축이 되어 인류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의 축복은 현재진행형이다. 축복의 과실을 유대인뿐 아니라 우리 한국인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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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 일군 IT기업들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나 크게 성장한 구글, 페이스북, 페이팔 등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유대인 젊은이들의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들 이외에도 유대인 젊은이들이 일군 IT기업들은 많다. 오라클, 이베이, 썬마이크로시스템, 링크트인, 트위터, 퀄컴, 델, 넷스케이프, 왓츠앱, 옐프, 야머, 징가, 세일즈포스닷컴, 텀블러, 슬라이드 등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그들은 성공 후 벤처 기업을 지원하는 벤처캐피털사도 많이 만들어 창업 새싹들을 지원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서로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공동체 정신, 곧 단결력이 놀라우리만큼 강하다. 오죽하면 언론에서 그들을 마피아라고 불렀겠는가. 페이팔에 참여했던 피터 틸과 맥스 레브친, 제러미 스토플먼, 리드 호프만, 데이비드 삭스, 마크 핀커스 등 유대인 창업 멤버들이 이베이에 회사를 매각한 후 다시 각자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서로 강력하게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 언론이 붙인 이름이 ‘페이팔 마피아’였다. 이후 그들은 기업 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유니콘’ 기업을 다수 탄생시켰다.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벤처 기업 수는 84개로 유럽 전체 77개(2019년 1월 기준)보다도 많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유대인 기업들이 이스라엘의 벤처 기업들을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될성부른 새싹을 조기에 발굴하여 물질적인 자금 지원뿐 아니라 정보 제공, 인맥 연결, 글로벌 마케팅과 상장(IPO) 지원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헌신적으로 지원해 성공시킨다. 이를 ‘헤세드 정신’이라 한다. 히브리어로 ‘자비’ ‘은혜’라는 말로 ‘보상을 바라지 않고 헌신적으로 돕는다’는 뜻이다.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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