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방해 이겨내고 세상 밝힌 지식의 역사

입력
기사원문
조성민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우주 지식으로 화형 몰린 브루노
교회 피해서 연구 숨긴 갈릴레이
끝없이 싸우며 지적 업적 이뤄내
고난·위기 속에서도 탐구욕 분출
2000년 걸친 인간 지성사 탐구


지동설을 주장해 1632년 10월 이탈리아 로마 종교재판소에 회부된 갈릴레이(오른쪽)의 모습(크리스티아노 반티 작).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옹호하여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임을 믿었지만, 교황청 등으로부터 지동설을 포기하라는 압박에 평생 시달렸다. 결국 그는 로마교황청에 의해 생애 마지막 날까지 가택에서 구류된 채 숨졌다. 뉴스사이언티스트 캡처
금지된 지식/에른스트 페터 피셔/이승희 옮김/다산초당/2만원

“만약 인간이 지식을 획득하기를 신이 원하신다면, 왜 신은 이 지식을 그냥 나누어 주지 않으십니까?” 중세시대 한 위대한 랍비가 이런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자신이 알아야 할 것들을 말하는 즉시 얻게 된다면, 그건 지식이 아닙니다.” 지식은 오직 시간을 들이고 적절한 방법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진실의 개척자들은 숙명처럼 검열과 탄압, 그리고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20세기 최고의 과학 고전으로 꼽히는 책 ‘침묵의 봄’이 출간된 후 레이철 카슨에게 돌아온 것들이 좋은 예다. 침묵의 봄이라는 제목은 곤충이 전멸하면 숲속에 있는 새는 먹이를 찾지 못하고 그다음 봄에는 기쁨의 지저귐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으로 암시한다. 이에 살충제 제조업계는 카슨을 향해 히스테릭하고 멍청한 학살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웠고, DDT 사용이 중단된 후 늘어난 말라리아 희생자 5000만명의 죽음에 책임을 지라는 등 무분별한 비난을 쏟아냈다.

그렇게 지식의 역사는 곧 억압의 역사가 됐다. 위험한 사상가, 대담한 이단아 등으로 불려온 이들은 끝없이 주변과 싸워가며 업적을 이뤄냈다. 가리려 할수록 더 명백히 드러나는 것이 지식의 본질이고 이것이 우리 지성사를 이끌어온 동력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식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 투쟁해온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결국 지식은 방해를 뚫고 분출했다. 계몽주의를 이끌었던 서구 지식사회를 중심으로 탐구욕의 본질을 파헤친 저자는 영원히 억누를 수 있는 지식은 없다고 단언한다. 우주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되어 화형 위기에 처한 지오다노 브루노와 교회와 충돌하지 않도록 자신의 연구결과를 죽을 때까지 숨긴 갈릴레이처럼 어떤 위기와 방해도 지식을 향한 열망을 꺼트리지 못했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이승희 옮김/다산초당/2만원
때때로 지식은 종교적 허들마저 뛰어넘어 쌓였다.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에이즈가 점점 더 퍼지고 바이러스학자들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라는 이름의 바이러스를 전염성 원인 바이러스로 결정지었을 때, 가톨릭 교회 또한 이에 대응해 분노하신 하느님이 인간에게 징벌을 내렸다는 관념에서 벗어나려 했다.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의 후임자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됨으로써 에이즈, 섹스, 콘돔 같은 주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신학자가 교회의 왕관을 쓰게 됐다. 그리고 2006년 초 베네딕토 16세는 바티칸 보건부 장관인 하비에르 로자노 바라간 추기경에게 콘돔 사용에 대해 과학과 도덕의 관점에서 면밀하게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당시 HIV로 죽은 사람이 300만명에 달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가톨릭계에 혁명과도 같은 한걸음이었다. 바라간 추기경이 작성한 200쪽짜리 문서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채 바티칸 문서저장고에 잠들어 있다.

지식이 계속해서 전승될 수 있는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는 지식 추구가 인간에게 곧 기쁨이라는 사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도입부에서 지식 추구가 모든 인간의 본성이라는 기본 입장을 제시한다. 이 위대한 그리스인은 알아가는 것의 즐거움을 새로운 지식을 향한 인간의 호기심과 욕구를 설명해주는 미학적인 근거로 보았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보고 하늘에 펼쳐진 광활함에 사로잡히거나 우주의 크기를 상상하며 감동받는 것. 태양이 수평선 위에 걸친 시간, 석양의 타는 듯한 붉은색을 보며 전율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또 사람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고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지식이 더 많아진다면 어찌 기쁘지 않을까.

책 ‘금지된 지식’은 4세기 성에 대한 지식을 원죄와 결부시켜 이후로 1000년간 혹은 오늘날까지도 터부시되도록 만들었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금지부터 빅브러더로 불리는 오늘날 정보 통제와 지식 독점 사례까지 고난과 탄압 속에서도 지난 2000년간 끊이지 않았던 인간의 지식에 대한 열망을 다뤘다. 역사가 개척되는 과정을 당시 인물들과 시대 배경을 연결해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