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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 연합뉴스 |
◆말로 북한 제압한 이범석 입담 듣고 감탄하기도
9일 외교가에 따르면 이범석 장관은 현직 시절 슐츠 장관과 각별한 친분을 쌓았다. 1983년 2월 슐츠 장관이 취임 후 처음 방한했을 때의 일이다. 양국 외무장관이 본격적인 회담에 들어가기 전 이 장관이 과거 1970년대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았을 때의 일화를 꺼냈다.
적십자회담 당시 서울에 온 북한 대표단은 “자동차를 옮겨오느라 힘들었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원래 있던 게 아니고 북측 대표단한테 보여주기 위해 급하게 동원한 것이란 비아냥이 담긴 표현이었다. 이에 이 장관은 즉흥적으로 “빌딩을 옮겨오는 건 더 힘들었다”고 대꾸해 북측 대표단의 기선을 완전히 제압했다.
이 얘기를 들은 슐츠 장관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외교 담판의 수사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멋진 위트였기 때문이란 게 당시 사정을 아는 이들의 전언이다. 회담에 배석한 한국 대표단이 “그렇다. 사실이다”고 응답하자 슐츠 장관을 비롯한 미국 대표단 사이에선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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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전 외무장관(1982∼1983 재임). 북한 대표를 입담으로 제압한 일화를 들려줘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과 친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최광수, 슐츠에 비해 아무 손색없는 체구 자랑”
최광수 장관은 한국인으로선 상당히 큰 182㎝의 장신인데다 풍채가 늠름해 늘 ‘거구’라는 말을 들었다. 외무장관으로 일하며 미국 등 서방 국가 외교관들을 상대할 때 적어도 체구 면에선 전혀 밀리지 않았다. 1986년 장관으로 임명돼 전두환정부 마지막 해와 노태우정부 첫 해 우리 외교를 책임진 최 장관은 자연히 슐츠 미 국무장관과도 자주 접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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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수 전 외무장관(1986∼1988 재임). 1980년대 당시 한국인으로선 큰 182㎝의 장신에 풍채가 좋아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과 비교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최 장관을 슐츠 장관과 비교하며 그 풍채와 외교력을 칭찬한 셈이다. 좌중에 폭소가 터진 것은 물론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날 최 장관의 커다란 체구를 슐츠 장관에 빗대 웃음을 자아낸 최 대사는 1988년 12월 최 장관의 뒤를 이어 후임 외무장관에 기용됐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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