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빈곤: '아시아의 부국' 한국... 어느 가난한 할머니가 전하는 이야기

  • 라라 오웬 & 이윤녕
  • BBC 월드서비스
Illustration of Cho in her flat.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데 노후를 어떻게 준비해요." 가구도 별로 없는 어느 작은방에서 지내는 82세 조경숙 씨의 말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2016년 OECD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노인 빈곤 문제는 특히 여성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한국 사회의 성 불평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쌀과 우유

조 할머니는 불안정한 거주지에서 상대적으로 빈곤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몇 년 전, 혼자 작은 쪽방을 하나 구할 때도 보증금을 낼 돈이 없어 집주인을 설득해야 했다.

"딸이 하나 있긴 한데 경제적으로 절 도와줄 형편이 못 돼요."

정부에서 나오는 약간의 보조금과 노인 기초연금에만 기대 살고 있는 할머니는 지원금에서 방세와 각종 요금 고지서를 내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매달 생활비가 부족하다 보니 저녁은 밥과 우유로 해결하곤 했다.

A bowl of rice and milk on a table.

사진 출처, Getty Images

'고소득'의 유치원 선생님

조 할머니의 생활이 원래 이렇게 힘들었던 건 아니었다. 그는 한국에 지어진 초기 사립 유치원에서 10년 동안 교사로 일하며 매달 10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고 했다. 그 시절을 기준으로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여자들이 대학 교육을 받는 게 흔한 일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딸을 많이 밀어줬어요."

그러나 당시 한국의 다른 수많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결혼을 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됐고, 남편의 수입에 의존해 살아갔다. 하지만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결혼 생활은 파탄 났다.

실제로 한국의 이혼율은 2000년대 초반 들어 다소 주춤해지긴 했지만 지난 40년간 5배 이상 증가했다.

"갑자기 이혼을 하고 나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이혼 과정에서 집도 뺏겨서 살 곳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선 뭐든 열심히 일해야 했죠."

하지만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제가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일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까 생각만큼 돈을 못 버는 거예요. "

혼자서 육아를 병행해야 하다 보니 그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방과후 수업 선생님 같은 시간제 일자리뿐이었다.

Illustration of Cho as a younger and older woman.

그리고 67세가 되던 해에 할머니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심각한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제가 연락이 안 되니까 집으로 찾아왔었나 봐요. 그래서 제가 쓰러져 있던 걸 발견했죠. 저는 그날 아침에 출근하려고 화장하고 있던 기억밖에 없고 이후로는 아예 기억이 없어요."

그렇게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며 일을 할 수 없었고, 몸을 회복해 병원을 나설 때엔 할머니의 나이는 이미 70대에 접어들었다. 그의 수중에는 제대로 된 저축 통장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연금도 없었다.

연금 제도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연금 제도인 국민연금은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래되지 않은 제도다. 1988년 시작된 국민연금은 대부분의 연금 수령자들에게 최소한의 연금 혜택을 제공한다.

연금 수령액은 가입 기간의 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결혼이나 임신·출산 등으로 경력 단절을 많이 겪게 되는 여성이나 일을 그만두게 되는 사람들은 은퇴 시기에 그만큼 연금 수령액도 줄어든다.

물론 조 할머니의 경우처럼 빈곤한 노인들을 위한 기초 연금도 있다.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의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연금은 월 최대 25만4760원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노후생활을 책임지기에 충분한 금액은 아니다. 국민연금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50세 이상 중장년층이 은퇴 후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기대하는 월수입은 116만600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A person holds Korean coins in their hands.

사진 출처, Getty Images

삶의 굴곡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시절을 겪어 냈지만, 그래도 이제 조 할머니에겐 비바람을 막아줄 최소한의 공간은 생겼다.

지자체의 도움으로 정부 지원을 받는 주택에 입주하게 된 것이다. 전세 기준 5000만원의 집에 입주자가 일부 금액만 부담하면 정부가 대부분의 보증금을 빌려주고 한 달 월세는 6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고 했다.

비록 2년마다 주택 계약을 다시 해야 하지만, 할머니는 다행히 올 초 2년 연장을 할 수 있게 돼 한시름을 놨다고 전했다.

하지만 모든 여성 노인들이 조 할머니처럼 지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성 노숙인들을 위한 공간인 열린여성센터의 서정화 센터장은 지난 17년간 서울에 있는 여성 노숙인들을 돕는 일을 해왔다. 열린여성센터는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을 위해 지낼 곳을 마련해 주고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찾는 일도 지원한다.

2019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노숙인 수는 3000명 이상으로 파악되는데, 노숙인 5명 중 1명은 여성이다.

서 센터장은 한국에서 나이 든 여성들이 노숙인이 되는 경우는 대개 가족의 해체·붕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61세의 안옥란 씨 역시 이곳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다.

"서울역 화장실 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을 때,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비참했던 시간이었어요."

안 씨는 노숙 생활을 하면서 각종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게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Illustration of Ahn Ok-rhan sleeping on the floor of a public toilet.

그는 폭력적인 배우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가출을 결심했고 이후 20년 동안 길거리를 떠돌아야 했다. 험난한 노숙 생활 동안 그에게는 몹쓸 병도 찾아왔다. 조현병이었다.

그러나 센터의 도움으로 지금은 서서히 자립을 해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헤어졌던 자녀와도 다시 만날 수 있게 됐고, 새출발을 위한 자격증도 땄다. 센터의 직접 고용으로 일을 하며 꼬박꼬박 돈을 모았고, 3년 만에 3000만원이 든 통장도 갖게 됐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년간의 센터 생활이 끝나고 안 씨는 마침내 정부 지원을 받는 아파트로 입주하게 됐다.

"집이 생겨서 방을 제 취향에 맞게 이것저것 꾸밀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며칠 전에는 잠옷을 하나 샀는데요. 그걸 입고 잠이 들 때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긴 수명, 적은 소득

여성 노인 빈곤 문제에는 또 다른 복합적인 문제가 있다. 우선 평균 수명으로 볼 때, 여성이 남성보다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여성들은 남성보다 직업을 갖고 유지하는 데 처지가 달랐던 만큼, 그들이 노후에 누리게 되는 혜택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은퇴연구소 우재룡 소장은 "여성은 남성보다 보통 10년 정도를 더 오래 산다"면서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여성들은 자신을 스스로 돌봐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라고 말했다.

"많은 여성들이 출산이나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둡니다. 남성보다 승진의 기회도 더 적죠. 그래서 여성들은 남성보다 은퇴 시점까지 직장을 유지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최근의 상황은 예전보다 분명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56%의 여성만이 고용 상태에 있으며 이들의 평균 수입은 남성의 63%에 불과하다.

우 소장은 "중년의 여성들, 특히 50세 이상의 여성들은 아주 적은 국민연금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사회 변화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 건 자식들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부모 부양 문화는 점차 변하고 있다는 게 우 소장의 지적이다.

"한국 사람들의 인식이 핵심이에요. 우리는 항상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노인을 부양해 왔기 때문에 연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지금의 노인 세대들은 나이가 들었을 때 자녀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간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2019년 한국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23%만이 자녀의 부모 부양 의무에 대해 동의한다고 답했다. 41%의 국민은 부모 부양은 자녀의 책임이 아니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이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여성 노인들은 더욱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말한다.

더구나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어느 OECD 회원국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는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양 의무에 대한 태도 변화와 관련해 우 소장과 같은 은퇴 전문가들은 이를 '전환적 시기'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전환기에는 반드시 과제가 따른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오랫동안 지속돼 온 부양 의무에 대해 계속 의문을 던지고 있고, 정부는 성 불평등 문제나 연금 개혁 같은 보다 광범위한 사회 이슈와 씨름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간 노인 인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한국 사회가 이 '전환기'에 어떻게 응답할지에 달려있다.

일러스트: 데이비스 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