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우의 바람] 수탉은 왜 풍향계 위에 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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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14. 오후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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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우 ㅣ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기상 관측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세종대왕의 측우기, 토리첼리의 기압계, 셀시우스의 기온계.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정량적인 기상 관측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과는 별도로, 수천년 동안 광범위한 지역에서 관측되고 있는 기상 현상이 있다. 바로 바람이다.

바람은 과거부터 항해, 농사, 그리고 여행을 위한 필수 정보였다. 물론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했다. <삼국지>의 적벽대전, 만약 조조가 바람을 알았더라면 적벽대전은 분명 조조의 승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가보면 첨탑 위 수탉풍향계를 볼 수 있다. 서부 영화 속 예배당 지붕만 해도 어김없이 수탉 모양의 풍향계가 설치되어 있다. 수탉은 성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의 복음서에는 모든 사람이 예수를 부인하더라도 자신만은 결코 예수를 버리지 않겠다는 베드로의 맹세가 나온다. 그러나 예수는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한다. 예언대로 그날 예수를 부정하는 이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낀 베드로는 수탉이 울기 전 세차례나 예수를 모른다고 하고 만다. 교회 첨탑에 왜 수탉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약한 사람들을 항상 깨우치고자 함이다.

흥미로운 점은 수탉이 다름 아닌 풍향계 위에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과학과 종교가 대척점에 서 있었던 중세에도, 성당마다 수탉풍향계가 설치되었다. 어쩌면 날씨에 대한 관심을 널리 알린 것이 다름 아닌 중세 교회였는지 모른다.

성당이 아니더라도 마을의 높은 건물에는 종종 풍향계가 설치되었다. 심지어 고대 그리스와 중국도 풍향계를 사용한 기록이 있다. 수탉 대신 각 시대와 지역의 문화를 반영해 다양한 장식이 얹혔다. 토르소, 물고기, 비둘기 등. 조선시대에는 특별한 장식 없이 깃발을 이용해 바람의 방향과 강도를 측정했다. 풍기라고 불린 이 단순한 기구는 농경지와 해안 포구뿐만 아니라 궁궐에도 설치되었다.

20세기 들어 바람에 대한 관심은 높은 하늘로 확장되었다. 놀라운 발견들이 속속 보고되었다. 고도 10㎞ 전후의 강한 바람, 즉 제트기류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더 강한 바람이 고도 30~40㎞(성층권의 일부)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관측되었다. 겨울철 이 고도의 바람은 제트기류의 두배에 이르기도 한다. 더욱 흥미로운 발견은 성층권 바람이 서풍에서 동풍으로 급격히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50㎧ 정도의 강풍이 1~2주 만에 -10㎧로 약화될 수 있는 것이다. 시속 180㎞로 직진하다 시속 36㎞ 속도로 후진하는 셈이다.

성층권 바람이 급격히 바뀌는 현상은 애초 기온을 통해 관측되었다. 1952년 겨울,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군사기술이 과학기술로 변신하던 즈음이었다. 날씨 관측용 풍선으로 기온과 바람을 관측하던 독일 과학자가 우연히 이 현상을 발견했다. 바람의 변화는 기온의 변화와 직결되는데, 고도 30㎞의 기온이 이틀 동안 급격히 상승한 것이다. 이후 이 현상은 베를린 현상 혹은 돌연승온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높은 하늘의 바람이 왜? 놀랍게도 돌연승온이 발생하면 한두달 동안 중위도 많은 지역의 기온이 낮아진다. 아직까지 그 원인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공기의 흐름에는 경계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아이디어는 아니다. 돌연승온은 보통 1~2년에 한번씩 발생하는데 지난 1월에도 발생했다. 2월 하순에 기온이 낮아진다면 어쩌면 돌연승온의 영향일지 모른다.

중세와 근대 수탉풍향계로 보편화된 바람의 관측은 이제 라이다, 레이더, 그리고 인공위성이라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관측되고 있다. 지면에 국한되지 않고 성층권까지 관측이 확장되었다. 이런 기술의 도움으로 더디지만 조금씩 일기예보의 정확도는 향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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