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70] 그 자리에 맞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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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3.13. 오후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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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공자 왈 맹자 왈이 아니었구나, 하루가 다르게 절감하는 나날이다. 공자 왈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공자가 묻는다. “비루한 사람[鄙夫]과 함께 임금을 섬기는 것이 과연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비루한 사람과는 함께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어의 달인 공자는 바로 이어서 이 ‘비루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세 단계로 나눠서 이야기한다. 첫째, 얻기 전에는 그것을 얻어보려고 걱정한다. 대법원장이란 사람이 인준 표결을 앞두고 당시 부장판사 등에게 부탁을 했다고 한다. 둘째는 얻고 나서는 그것을 잃을까 걱정한다. 이는 많은 국민이 의아한 재판 결과들을 보면서 이미 체험한 바다. 다만 직접 부당한 지시를 하는 현장을 볼 수 없었으니 그저 추측이나 추정만 해볼 뿐이었다.

셋째가 핵심이다. 공자는 말했다. “정말로 잃을 것을 걱정할 경우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못 하는 짓이 없을 것이다.” 인준을 부탁했던 그 부장판사가 지난해 5월 암 치료 등으로 사의를 표했으나 대법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까놓고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래 설치고 있는데 내가 지금 사표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또 무슨 얘기를 듣겠냐는 말이야. 그렇지?”

부장판사에게도 실망했다. 이 말에 대해 그저 “예, 예” 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우리 판사 세계의 실상이라면 그들은 재판할 자격이 없다. 더 큰 문제는 뒤틀릴 대로 뒤틀린 대법원장이라는 사람의 말이다. 정말 “저래 설치고 있다”면 그걸 막아야 하는 것이 대법원장의 직무다. 그런데 사탕발림으로 국회를 욕하는 듯하면서 자기 부하를 팔아넘기고 그것도 모자라 야당의 사퇴 요구에 “잘해보겠다”며 자리에 연연하는 ‘그 사람’은 기인(其人)이 아니다. ‘기인’이란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금 대법원장은 지금 자리와 연결 짓기에 부끄러운 ‘비기인(非其人)’이다.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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