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사고쳤다"…신현수 사의 부른 '민정수석 패싱'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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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18. 오전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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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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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수차례 사의를 표명했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17일 확인하자 여권은 물론 법조계가 술렁이고 있다. 신 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결정적 이유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7일 자신을 ‘패싱’한 채 검찰 대검검사(검사장)급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박 장관이 신 수석과 이견 조율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검찰 인사를 두고 검찰과 법무부 사이의 견해가 달랐다. 그걸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민정수석은 아마 중재를 하려고 의도한 것 같은데, 그게 진행되는 와중에 (인사가) 발표돼 버리고 하는 것에 대해 사표를 내신 게 아닌가(한다)”라며 “박 장관이 자기주장을 관철하는 절차가 의지대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7회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최근 검찰 인사를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가 문 대통령이 만류한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 맨 끝)도 이날 회의에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를 두고 여권에선 “박 장관이 사고 친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신 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데다 검찰 출신이어서 지난달 31일 민정수석 기용은 조국·추미애 전 장관 시절 악화한 검찰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겠단 청와대의 의지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실제 신 수석은 검사장급 인사를 앞두고 법무부와 검찰이 의견을 주고받을 때 중재자로서 이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윤 총장이 교체를 요구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일찌감치 유임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또 다른 요구사항이었던 대검 참모진 교체와 한동훈 검사장 등 좌천 인사의 일선 복귀 등은 여전히 살아있는 카드였다고 한다. 하지만 박 장관은 이러한 의견을 전부 배제한 인사안을 일방적으로 확정해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문 대통령이 이를 최종 재가하면서 이른바 ‘민정수석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여권 핵심 인사는 “박 장관 입장에선 신 수석과 윤 총장의 의견과 무관하게 자신이 공정하게 장관의 제청권한을 행사하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면 신 수석 입장에선 ‘내가 있으나 마나’라고 불쾌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날 오전 출근하면서 신 수석 사의 표명에 관한 질문을 받곤 “나중에”라며 즉답을 피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여권 인사들은 박 장관이 지난 7일 검찰 인사를 발표하기 전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과 막판 이견 조율을 거치지 않은 게 신 수석의 사의 표명 배경이라고 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이 신 수석과 박 장관 사이 이견이 조율되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인사안을 재가한 건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박 장관의 손을 들어준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신 수석의 사의를 여러 차례 만류했고, 신 수석은 사의 표명 뒤에도 청와대에 정상적으로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지난 4일)한 뒤 인사 관련 기류가 급변한 것을 두고도 “그거에 대해 대통령께서 뭐라고 하신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또 박 장관이 신 수석을 건너뛰고 친(親)조국 성향의 이광철 민정비서관과 인사안을 협의하고, 더 나가 이 비서관을 통해 대통령 재가를 받았다는 의혹 제기엔 “이번 인사 진행 과정에서 민정수석실 내부 이견은 없었다”고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인 복수의 여권 인사들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전직 수석은 “장관이 비서관과 소통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번에도 신 수석과 이 비서관 사이의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전직 비서관은 “문 대통령은 공식 업무 절차에서 그런 하극상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수석을 경질하겠다는 의사가 아니고서야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검찰 직접 수사권의 완전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골자로 한 ‘검찰개혁 시즌2’를 밀어붙이는 것도 신 수석의 사의 표명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신중론에 가까운 신 수석과 달리, 이낙연 대표 등 여당 지도부가 김남국·김용민·황운하 등 초선 의원들의 입법 드라이브에 힘을 싣고 있어서다. 민주당 내 검찰 출신 의원들도 수사권 폐지 등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데 대해 난색을 보여 왔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전체 형사사법 시스템을 놓고 봤을 때 예상되는 부작용이 한둘이 아닌데 숙의 없이 너무 빠르게 추진하는 데 대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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