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뱉은 침' 먹은 기억에, 밥 먹을 때마다 구토" 학폭의 상처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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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19. 오전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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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김지현 기자, 임소연 기자, 홍순빈 기자, 오진영 기자] [[학폭, 학폭, 학폭...뜨거운 '익게']]



"침 뱉더니 먹으라고" 지옥같던 학폭…트라우마에 거식증, 치아 다 빠졌다


이지혜 디자이너 / 사진=이지혜 디자이너

A씨(31)는 15살이던 16년 전 땅바닥에 던진 물건과 뱉은 침을 먹으라는 폭력을 학교에서 당했다. 음식을 먹을 때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매번 먹은 음식을 억지로 토해내면서 거식증에 걸렸고, 치아는 다 빠졌다.

A씨는 지옥을 경험했다. 같은 학교 학생 6명이 때려 이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폭위 후 더 심한 폭력을 당해야 했다.

학폭은 그의 마음을 갉아 먹었고, 상처는 안에서부터 곯아 터졌다. 6개월 간의 폭력은 15년이 넘는 고통의 원인이 됐다. 거식증과 함께 대인기피증이 오면서 고등학교도 바로 중퇴했다. 사회생활을 못하는 A씨는 치료조차 거부한다.

A씨의 어머니를 상담 중인 최고야 최고야심리상담소 원장은 "어머니까지 정신충격을 받았다"면서 "이혼 후 A씨를 홀로 키우던 어머니는 가해자들에 대항하지 못했다는, 아이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분노장애, 무기력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학폭은 가해자들 학창 시절의 치기 어린 장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씻기 어려운 상처와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산다. 전문가들은 가해자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

검찰에 접수되는 학폭만 1년에 1만4000건...더 많은 폭력 학교에서 이뤄져

A씨와 같이 학폭을 경험한 사람은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것만 1만명이 훌쩍 넘는다. 18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학폭 사범은 최근 3년 간 연평균 1만4400여명이다. 검찰에 접수된 사건만 집계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학교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폭 사범은 대부분 미성년자여서 재판에 넘겨지는 비율은 낮다. 지난해의 경우 1만2471명의 학폭 사범 중 17%가 재판에 넘겨졌다. 전체 폭력 사범의 기소비율(26%)보다 낮다. 대신 가정보호사건송치·기소중지··타관이송 등으로 처리되는 경우(46.2%)가 많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 중 사안이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가정법원 소속 소년부에서 재판할 수 있도록 사건을 넘긴다. 이경우 일반 형사 사건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고 전과기록도 남지 않는다.

특히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범죄 사범은 '촉법소년'으로 분류돼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받는다. 일부에서는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된다.

어른들의 폭력이 학폭으로…방치 속에 다치는 아이들

전문가들은 가정 등 일상에서의 폭력이 결국 학폭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20년 넘도록 상담을 해온 이혜미 마음돌봄상담센터 대표는 "부모, 선생님, 운동감독 등 아이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수직적인 관계에서 권력으로 학생들을 통제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를 아이들이 보고 배우며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고야 원장도 가정에서 시작된 폭력이 결국 학폭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는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폭의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된다"면서 "학폭 상담 시 가정환경 구성을 가장 먼저 살피는 이유"라고 밝혔다.

집에서 맞고 자란 아이가 소극적인 성격이라면 자기 감정이나 의사 표현 자체를 못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 폭력이 발생해도 가만히 맞고만 있는다는 설명이다.

최 원장은 "학폭은 피해자의 사회공포증, 대인공포증, 불안, 우울증, 무기력증으로 이어진다"면서 "이후 자기 감정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오히려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를 때리는 은둔형 인간으로 자라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가해자도 가정폭력에 노출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 원장은 "이런 아이들에게는 잘못한 것들은 때려야한다는 가치관이 자리잡는다"면서 "내 기분에 안 맞으면 패야하고, 내 감정을 건드리는 사람들은 때려야 한다는 그릇된 가치관"이라고 주장했다.

가정에서 폭력을 학교에서 재연..."아이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 중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가정에서 받은 폭력을 학교에서 재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학폭이 쉽사리 근절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폭력의 근원들을 바로잡아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 원장은 "아이에 자신감을 주고 아이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집에서는 설령 학교폭력을 당해도 얼마든지 방어하고 저항할 수 있게 자란다"면서 "그런 경우 학교폭력 피해자로 상담소에 온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이 대표도 "가해자, 피해자 나누지 말고 모두 서툰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학생들이 참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통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선생님 등이 소통하는 리더십을 갖춰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정한결, 홍순빈 기자



"10년이 흘렀지만 트라우마" 그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현직 배구선수 학폭 피해자들입니다."

시작은 지난 10일 인터넷 사이트 네이트판에 게시된 한 폭로 글이었다. 가해자는 유명 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자매로 밝혀졌다. 이에 용기라도 얻은 듯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경찰, 항공사 직원, 태권도장 관장 등 학폭 폭로가 줄을 이었다.

'학교폭력 미투(Me too)'가 유명인을 넘어 일반인으로까지 확대되고 본격화한 것이다. 개인적인 보복과 명예훼손 역공 등이 두려워 차마 꺼낼 수 없던 기억들이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소통을 하는 세대의 특성이 나타난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스포츠계 끊이지 않는 학폭 논란

스포츠계에는 이재영·이다영(흥국생명) 선수를 지목하는 글을 시작으로 '학폭 미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두 선수가 피해자들의 돈을 빼앗거나 흉기로 위협하는 등 폭력을 저질렀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며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는 등 논란이 불거졌다. 두 선수는 여론에 따라 소속팀으로부터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고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한 상태다.

3일 뒤엔 남자배구에서 비슷한 폭로가 나왔다. 송명근·심명섭(OK금융그룹)의 배구부 후배 A씨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두 선수에게 급소를 맞고 응급실에 실려가 고환 봉합 수술을 받았다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는 글을 올리면서다. A씨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고 했던 엄마 말을 잘 들었던 내가 너무 후회된다"며 "여전히 그 당시의 힘든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배구뿐만 아니다. 프로야구에서는 이미 키움 안우진이 2018년 학교폭력 문제로 5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NC는 1차 지명했던 김유성의 학폭 문제가 불거지자 지명을 철회하기도 했다.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스포츠계 넘어 일반인들까지…"나도 피해자다"

그러자 네이트판, 보배드림 등과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선 익명으로 학창시절 육체적 혹은 정신적 괴롭힘을 당했다는 글이 게재되기 시작했다.

지난 15일 네이트판엔 '00항공 학교폭력 피해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누리꾼 B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동급생이 자신의 물건을 창밖으로 던지고, 부모를 욕하는 등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같은 날 보배드림엔 '학폭 가해자가 경찰을 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35세 남성이라고 밝힌 C씨는 "중학교 3년간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마다 반에 있을 수가 없었다"며 "교복에 실내화 자국이 난 줄도 모르고 집에 갔다가 누나와 엄마에게 추궁을 받으면 부끄러운 사춘기 시절이라 오히려 화를 내기도 했었다"고 적었다.

◇커뮤니티 중심으로 퍼지는 미투…소통창구가 된 온라인 플랫폼

전문가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학폭이 폭로되고 있는 현상을 두고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 사용 등에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특성이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소통이 이뤄지는 변화한 사회 환경을 보여주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엔 사람들이 개인적인 보복이 두려워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말을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소통 창구가 생기면서 할 수 있게 됐다"며 "다수의 주목을 받을 수 있고 폭로된 유명인이 처벌받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다른 논란들과 달리 학교폭력 논란은 현재진행 중인 사건이 아닌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는 특징이 있다"며 "수면 아래 묻혀 있던 피해경험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터넷과 SNS 등이 그냥 넘어갈 뻔했던 문제들을 공론화할 수 있는 장소가 됐다는 것이다.

김지현 기자



익명게시판 유명인 폭로글 '와글와글'…'자작글' 피해도 만만찮다


#"10년이나 지난 일이라 잊고 살까도 생각했지만..." 지난 10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배구선수 이다영·이재영의 과거 학교폭력 폭로이 올라왔다. 두 선수가 심부름을 시키고, 흉기로 위협했다는 구체적인 진술과 사진까지 들어 있었다. 며칠 뒤 두 선수는 사과했고, 지난 15일 배구 협회는 두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했다.

#16일 네이트판엔 배우 조병규를 저격한 폭로글이 올라왔다. 작성자 A씨는 "조병규 무리에게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병규 소속사가 "거짓"이라며 법적대응을 예고하자 A씨는 허위였음을 직접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또 나타났다. 그러자 이번엔 "조병규에 대한 누명"이라고 반박하는 동창생이 글이 올라왔다.

인터넷 익명게시판에 각종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유명인의 부정 등을 쉽게 세상에 알릴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익명에 숨어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악의적 소문을 퍼뜨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순기능만큼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정확하거나 악의적 정보가 계속 올라오면서 온라인 공론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피로감을 높인다. 폭로 글에는 ‘주작이네’, ‘중립기어(중립적 입장) 박고 갑니다’라는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다.

네이트판 페이지/사진=캡쳐

◇개인적인 '자작'부터 유명인 루머까지 판치는 '판춘문예'

'배구계 학폭' 의혹은 진실로 밝혀지며 순기능을 했지만 익명 게시판의 부작용도 만만찮다. 특히 유명인들에 대한 루머는 익명게시판 단골 글이다. 소설 같은 이야기가 많다보니 네이트'판' 게시판과 신춘문예를 결합한 '판춘문예'라는 말까지 나온다.

배우 조병규를 둘러싼 학교폭력 의혹은 매일 바뀌고 있다. 학폭 폭로글→허위·사과→학폭 추가글→동창 반박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계속되는 이슈에 배우는 물론 지켜보는 사람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다.

과거 익명게시판에 올린 글이 사회 자정작용을 불러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2015년 네이트판엔 김병지 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의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다. 김 부회장과 아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나 수년에 걸친 소송 결과 법원은 무효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엔 보배드림에 아이돌 그룹 갓세븐 멤버 영재를 겨냥한 글이 올라왔다. 고교시절 학급 친구들을 때리고 심부름 시켰단 내용이었다. 소속사인 JYP는 사실무근이라 반박하며 해당 글 작성자와 직접 만났고 "어떤 근거도 듣지 못했다"며 법적대응을 예고했다.

개인적인 '자작글(스스로 지어낸 글)'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자신의 25개월 난 딸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초등 5학년 남학생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올라와 공분이 일었다. 한달간 53만명 이상이 청원에 동의했다. 그러나 내용은 모두 허위로 밝혀졌다. 작성자에겐 딸도 없었다.

◇어디까지가 개인사이고 공론사항?…"실명제는 답 아냐"

익명 커뮤니티는 일종의 '대나무숲'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을 공유하고, 이 중 다수가 공감하는 일은 공론화돼 수면 위로 올라온다. 최근 '웃긴대학'에 올라온 '학원 하원도우미 배달 갑질 사건'이 일례다. 배달원 개인의 억울한 사연이 '소비자 갑질' 문제를 끄집어냈다.

익명성은 피해자·고발자 개인에 대한 사회적 주목을 최소화 해준다. 본인을 공공에게 노출할 때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피하면서도 문제 고발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익명게시판의 순기능이라 볼 수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사진=캡쳐


이렇다 보니 익명게시판뿐 아니라 실명인증이 필요한 국민청원 게시판까지 공론화를 원하는 개인사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배우자의 불륜 이야기, 개인 간 채무 다툼 등이다. 인터넷 게시판이 '개인 일기장'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루머 유포나 지나친 개인사 남발 등을 자제하기 위해 '실명제'도 거론한다. 빠른 전파력에 비해 사실 확인 및 정정은 느리기 때문에 그 폐단을 막자는 것. 그러나 익명성이 주는 순기능을 감안하면 무 자르듯 규제할 순 없다는 게 전문가 목소리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교수는 "소수랄지라도 선의의 피해자를 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실명으로 폭로할 경우 가해자나 구경꾼들에 의한 2차 피해 우려가 있다"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원천차단하겠다는 발상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다만 "사안에 따라 폭로에 대한 접근방식을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며 "폐해가 크거나 공익적 경우엔 익명성 기준을 엄격히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폭로가 공익을 위한 것인지 비방을 위한 것인지를 구분할 책임을 커뮤니티에 부과할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임소연, 오진영 기자

정한결 기자 hanj@mt.co.kr, 김지현 기자 flow@mt.co.kr, 임소연 기자 goatlim@mt.co.kr, 홍순빈 기자 binihong@mt.co.kr,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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