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Who&Why]강원 잠룡의 부산 올인···이광재 움직인 26년전 盧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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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20. 오전 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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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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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1일 부산 문현금융단지 BIFC에서 열린 '부산 지역뉴딜 벤처펀드'조성 협약식에서 발언하는 이광재 의원. 뉴스1
“바다가 보이는 곳에 전세계인이 좋아할 수 있는 야구장을 만들어 관광객을 모셔와야 합니다.”
강원도 사람 이광재 의원(강원 원주갑)의 대화는 요즘 ‘부산의 미래’로 시작한다. 지난 18일 아예 부산시당 미래본부장에 취임한 이 의원은 민주연구원과 부산시당이 주최한 ‘2021 전국순회 정책엑스포 in 부산’에서 한 기조연설에서 “야구장을 축으로 한 복합개발과 영화 산업 유치를 통해 부산 경제를 살리자”고 주장했다.

부산시장 보궐 선거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한 지난 1월엔 부산에 머문 날이 일주일이 넘었고 지난 설 연휴 대부분도 부산에서 보냈다. 부산 선거에 목을 매는 이유에 대한 이 의원의 설명은 1995년에서 시작한다.

“민주주의라는 게 (찍을) 칸이 있어야 되는 거 아이가”

1995년 초 정운찬 서울대 교수에게 “조순 전 부총리가 만나고 싶어한다”는 취지의 전화가 걸려왔다. 6ㆍ27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내에서 조순 전 부총리 영입설이 돌기 시작할 때였다. 1992년 총선 때 부산 동구에서 낙선한 뒤 이듬해 원외 최고위원이 된 노무현 전 의원과 그 측근들은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어 활로를 모색중이었다.

2주 뒤 조 전 부총리를 만난 이광재 지방자치실무연구소 기획팀장은 “출마하면 당선된다. 다만 당내 경선은 수용하라”고 단언했다. 조 전 부총리는 “결심하면 돕겠느냐”고 물었고 그 애제자인 정 교수는 “정말 되시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조 전 부총리로부터 “결심했으니 도와달라”는 연락이 온 것은 한달 여가 흐른 뒤였다. 민주당의 조 전 부총리 영입 방침 확정 소식은 그해 4월5일 전해졌다. 다시 만난 자리에서 “돕겠다”고 답한 이 팀장이 내민 건 ‘노무현 부시장’ 카드였다. 조 전 부총리는 “좋다”고 답했다.

1995년 5월 민주당 서울시장후보 경선에서 조세형 후보를 꺾고 선출된 조순 전 부총리(가운데). 오른쪽은 이기택 총재(오른쪽), 왼쪽은 조세형 후보(왼쪽). 중앙포토
곧장 노 전 의원의 여의도 자택으로 달려가 소식을 전했지만 노 전 의원은 “하루만 더 생각해 보자”고 반응했고 이튿날 “안되겠다. 나는 부산에 가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민주주의라는 게 (찍을) 칸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제1야당이 부산에 후보를 못 낸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노 전 의원의 말에 “당선이 쉽지 않다”고 만류하던 이 팀장도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노 전 의원은 “어차피 나는 쉽지 않으니 조 전 부총리를 도우라”는 말로 이 팀장을 돌려보냈다.

지난 19일 의원회관에서 만난 이 의원은 “개방형 통상국가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꿈은 부산 동구→부산시장→부산 북ㆍ강서을에 도전하는 과정과 DJ 정부의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을 거치며 자라났다”며 “부산을 조선ㆍ해운과 금융 산업이 어우러진 싱가포르에 필적하는 국제 도시로 만들겠다는 그 꿈을 다시 세우는 게 이번 선거의 목표”라고 말했다.

“PK 유권자 마음 사야 대권 도전도 가능”

이 의원의 부산 올인을 보는 주변의 해석은 이 의원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민주당의 한 전략통 의원은 “이 의원은 9년이 넘는 공백기를 거쳤고 강원도는 지역 기반이라기엔 인구가 너무 적다”며 “노무현ㆍ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뿌리인 PK 지역 민심을 파고들 수 있느냐가 대권 도전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 ‘제3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이 의원의 여론조사상 지지율은 2%에 안팎에 불과하다. (지난달 28~31일 미디어오늘-리서치뷰 조사) 그러나 지난해 ‘드루킹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로 김경수 경남지사의 대선 도전이 사실상 어려워진 이후 PK 지역 민주당 지지층이 아직 뚜렷한 선호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 의원에겐 기회일 수 있다.
2002년 12월6일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유세하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

지난 1~4일 진행된 갤럽 조사에서 민주당 내 선호도 1,2위를 다투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대표는 호남에서 각각 32%와 29%의 지지율을 보였지만 PK에선 17%와 11%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같은 조사에서 PK 지역 유권자 중 ‘의견 유보’ 층의 비중은 45%로 충청권(54%)에 이어 두번째로 컸다.

기본소득 논쟁에서 빠진 채 “정책이 표 된다”

그의 부산 올인은 선두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 주장에 맞서 신경전을 벌이는 다른 주자들과도 다른 길이다. “알래스카 빼곤 하는 곳 없다”는 이낙연 대표의 반응에 “쓸데 없는 전력 낭비”라는 정세균 국무총리, “탁상공론”이라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까지 이어지면서 기본소득은 당내 대선 주자들 사이의 핵심 전선(戰線)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의원은 아직 참전하지 않고 있다. “아직 연구중이다. 정말 필요한지 가능한지, 한다면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늘려 얼마나 지급할 수 있는지 살펴볼 게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데이터댐 구축을 서두르자”“국가지식 정보 통합 플랫폼인 ‘디지털 집현전을 만들자”“서울~부산 하이퍼튜브(초고속 진공열차) 상용화를 준비하자”는 등 미래 먹거리에 방점을 둔 제안을 쏟아내는 중이다. “결국 정책이 표가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당내에서도 이 의원의 행보에 대해선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유일한 중진”(초선 의원)이라는 호평과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많다”(충청권 의원)거나 “정책적 식견이 깊어진 만큼 정치적 감각은 줄어든 거 같다”(민주당 당직자)는 비평이 엇갈리고 있다.

이 의원은 3월부터 4월 7일까지 부산에 상주할 계획이다.“부산 민심이 어디에도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출렁이고 있다”면서다.

1996년 3월 노점에서 음식을 시식하며 상인의 이야기를 듣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오른쪽)와 이광재 당시 노무현 비서(왼쪽) 출처=노무현 사료관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 여론 조사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해당 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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