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장 보궐 선거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한 지난 1월엔 부산에 머문 날이 일주일이 넘었고 지난 설 연휴 대부분도 부산에서 보냈다. 부산 선거에 목을 매는 이유에 대한 이 의원의 설명은 1995년에서 시작한다.
1995년 초 정운찬 서울대 교수에게 “조순 전 부총리가 만나고 싶어한다”는 취지의 전화가 걸려왔다. 6ㆍ27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내에서 조순 전 부총리 영입설이 돌기 시작할 때였다. 1992년 총선 때 부산 동구에서 낙선한 뒤 이듬해 원외 최고위원이 된 노무현 전 의원과 그 측근들은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어 활로를 모색중이었다.
2주 뒤 조 전 부총리를 만난 이광재 지방자치실무연구소 기획팀장은 “출마하면 당선된다. 다만 당내 경선은 수용하라”고 단언했다. 조 전 부총리는 “결심하면 돕겠느냐”고 물었고 그 애제자인 정 교수는 “정말 되시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조 전 부총리로부터 “결심했으니 도와달라”는 연락이 온 것은 한달 여가 흐른 뒤였다. 민주당의 조 전 부총리 영입 방침 확정 소식은 그해 4월5일 전해졌다. 다시 만난 자리에서 “돕겠다”고 답한 이 팀장이 내민 건 ‘노무현 부시장’ 카드였다. 조 전 부총리는 “좋다”고 답했다.
지난 19일 의원회관에서 만난 이 의원은 “개방형 통상국가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꿈은 부산 동구→부산시장→부산 북ㆍ강서을에 도전하는 과정과 DJ 정부의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을 거치며 자라났다”며 “부산을 조선ㆍ해운과 금융 산업이 어우러진 싱가포르에 필적하는 국제 도시로 만들겠다는 그 꿈을 다시 세우는 게 이번 선거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 의원의 부산 올인을 보는 주변의 해석은 이 의원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민주당의 한 전략통 의원은 “이 의원은 9년이 넘는 공백기를 거쳤고 강원도는 지역 기반이라기엔 인구가 너무 적다”며 “노무현ㆍ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뿌리인 PK 지역 민심을 파고들 수 있느냐가 대권 도전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 ‘제3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이 의원의 여론조사상 지지율은 2%에 안팎에 불과하다. (지난달 28~31일 미디어오늘-리서치뷰 조사) 그러나 지난해 ‘드루킹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로 김경수 경남지사의 대선 도전이 사실상 어려워진 이후 PK 지역 민주당 지지층이 아직 뚜렷한 선호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 의원에겐 기회일 수 있다.
지난 1~4일 진행된 갤럽 조사에서 민주당 내 선호도 1,2위를 다투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대표는 호남에서 각각 32%와 29%의 지지율을 보였지만 PK에선 17%와 11%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같은 조사에서 PK 지역 유권자 중 ‘의견 유보’ 층의 비중은 45%로 충청권(54%)에 이어 두번째로 컸다.
그의 부산 올인은 선두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 주장에 맞서 신경전을 벌이는 다른 주자들과도 다른 길이다. “알래스카 빼곤 하는 곳 없다”는 이낙연 대표의 반응에 “쓸데 없는 전력 낭비”라는 정세균 국무총리, “탁상공론”이라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까지 이어지면서 기본소득은 당내 대선 주자들 사이의 핵심 전선(戰線)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의원은 아직 참전하지 않고 있다. “아직 연구중이다. 정말 필요한지 가능한지, 한다면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늘려 얼마나 지급할 수 있는지 살펴볼 게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데이터댐 구축을 서두르자”“국가지식 정보 통합 플랫폼인 ‘디지털 집현전을 만들자”“서울~부산 하이퍼튜브(초고속 진공열차) 상용화를 준비하자”는 등 미래 먹거리에 방점을 둔 제안을 쏟아내는 중이다. “결국 정책이 표가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당내에서도 이 의원의 행보에 대해선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유일한 중진”(초선 의원)이라는 호평과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많다”(충청권 의원)거나 “정책적 식견이 깊어진 만큼 정치적 감각은 줄어든 거 같다”(민주당 당직자)는 비평이 엇갈리고 있다.
이 의원은 3월부터 4월 7일까지 부산에 상주할 계획이다.“부산 민심이 어디에도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출렁이고 있다”면서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 여론 조사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해당 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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