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中 - 정현종(시인)
『동물시편』은 어린시절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을 그 시절로 데려간다. 유토피아는 이 세상에 없다고 하지만, 내 느낌으로는 모든 사람의 어린시절이 각자의 유토피아이며, 그 시절을 시골에서 살았다면 그곳은 또 무릉도원이다.
나라가 아무리 궁핍하고 가정이 가난에 찌들었다고 하더라도 어린시절의 그러한 성질에는 변함이 없는데, 그 까닭은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어린시절이 갖고 있는 고유성 때문이다.
모든 어린시절은 꿈의 도가니요 가능성의 묘상이기 때문에 결핍이란 말이 부재하는 시기이다. 아이들은 그들의 외적 환경이 어떻든지 간에 항상 그 스스로 충만하다. 그리고 누구나 그 시절이 있었으므로 그 점에서는 평등하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온갖 결핍상태 ― 물질, 정신, 감정적 불균형과 궁핍에 노출되면서 다소간에 고해苦海를 헤엄쳐가게 마련이고, 그리하여 가령 행복이라는 화두를 입에 올리게 되기도 한다.
이 시집을 읽으며 내가 행복감에 젖었던 것은 그 작품들이 나를 나의 어린시절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곤충, 새, 물고기 등과 시인이 벌이는 일은 내가 어린시절에 했던 일과 많이 겹친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다행스럽게도) 자연이 놀이터인데, 산천을 헤매면서 한 일은 대개 비슷할 것이다.
풀숲에서 나온 아이들
콧잔등이 반짝댑니다.
개똥냄새 폴폴 나는 반딧불
꽁무니 떼어내 침 발라 붙이고
좋아라 깔깔대며 몰려갑니다.
달 없이도 환합니다.
-반딧불이
내가 어려서 살았던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화전리에도 여름밤이면 반딧불이 천지였다. 아이들은 사방에서 반짝이는 불빛에 홀려 그걸 잡으려고 뛰어다녔고, 그 꽁지 끝의 발광체를 떼어내면 그게 손에 붙어서 반짝였는데, 그걸 또 다른 손으로 만지면 그 손으로 옮겨 붙어 반짝이고…… 뿐만 아니라 잡은 반딧불이를 노랗고 커다란 호박꽃에 넣고 오무려 호박꽃등을 만들어 들기도 하였으니, 밤하늘의 수많은 발광체와 손에서 반짝이는 발광체 그리고 호박꽃등이 만드는 광경은 문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옛날에 이런 얘기를 산문으로 쓴 적도 있지만, 지금도 그 광경은 그때 그대로 눈에 보인다. 그게 얼마나 환상적이었는지 그건 필경 죽은 뒤에도 보일 것이다!
해 떨어져야 들어오는
흙투성이 막내.
온 천지가 다 놀이터이니
-땅강아지
밭에서 삽으로 흙을 파헤치거나 하면 노출되어 급히 도망치는 땅강아지도 많았는데, 시골 아이들은 하루종일 흙 위에서 놀았으니 당연히 온몸이 흙투성이. 따라서 땅 속에서 흙을 파며 나아가는 땅강아지와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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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사람을 어린시절로 돌아가게 하여 아늑한 행복감에 젖게 해 준 최계선 시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