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데스크칼럼] “강자는 약자를 인탄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기사입력 2018-03-12 07:00:28   폰트크기 변경      
   

2년전 이맘 때 종영한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인상적인 한 장면.

정의로운 무사 캐릭터의 이방지가 무소불위 정치패거리의 일당이자 ‘삼한제일검’인 길태미와 드디어 목숨을 건 대결에 나선다. 화려한 검투 끝에 승기를 잡은 이방지, 수없이 약자를 짓밟고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한 길태미를 엄히 꾸짖는다. 그러자 패배와 죽음을 직감한 길태미, 마지막으로 부르짖으며 항변한다.

“그럼, 약한 자를 짓밟지, 강한 자를 짓밟냐? 약한 자한테서 빼앗지, 강한 자한테서 빼앗냐고? 세상이 태어난 이래, 약자는 언제나 강자한테 짓밟히는 거야. 천년 전에도, 천년 후에도 약자는 강자한테 빼앗기는 거라고. 세상에 유일한 진리는…, 강자는 약자를 병탄(倂呑)한다! 강자는 약자를 인탄(躪呑)한다!”

역사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가상의 대화에 불과한데도, 기자는 길태미의 대사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단순한 소시민으로서, 가슴 속 한켠에 자리잡은 일말의 정의감, 인권과 평등에 대한 염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길태미의 말처럼,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동등한 천부인권이라는 것은 요란한 정치적 수사일 뿐, 세상에는 강자와 약자가 있고 늘상 강자는 약자를 유린한다.

‘미투(Me too)’ 열풍이다. 우리 사회가 몇 번이고 뒤집어질 만큼 뜨겁고 거센 폭풍이다. 어느 누구든 단숨에 집어삼켜버리는 거대한 파도다. 문화계에서 종교계로, 정치권으로, 온갖 성역을 허물어 버리는 전대미문의 홍수다.

그러나 모두가 눈치 챘겠지만, 이번 사태는 남녀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힘의 문제다. 권력을 가진 강자와 권력자 앞에 고개 숙인 약자의 관계다. 그런데 어째서, 세상의 모든 곳에서 남성이 강자이고 여성이 약자일까.

많은 사회학자와 생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거의 모든 문화에서 남성성을 여성성보다 중시하는 이유가 뭘지 연구를 거듭해왔다. 그것이 육체적 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분석도 있었고, 공격성의 차이 또는 유전인자의 차이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육체적 특징과 권력 사이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육체적 능력이 떨어지는 늙은이가 젊은이들을 지배하는 것처럼, 육체적 힘이 우월한 남성이 오히려 근력이 필요없는 정치, 법률, 종교의 리더십을 독점해왔다. 상대적으로 사회성이 뛰어난 여성이 사회적 권력을 갖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자연스러워보이는데 그런 문화는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학자들은 할말을 찾지 못했다.

강자가 약자를 인탄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치면, 힘에 대한 접근성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것만이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권력에 대한 남녀의 접근성의 차이는 아직도 너무나 명확하고 별다른 개선의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획기적 변혁에 이르는 길은 참으로 요원해보인다.

이번 사태는 어차피 한 번 휘몰아쳐야 했을 파도였다. 그리고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황폐한 자리에서 새로운 사회 건설이 가능하다. 그래서 차라리 이번 파도가 높고 거셀수록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정운 부동산부장 peace@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

 

▶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대한경제i' 앱을 다운받으시면
     - 종이신문을 스마트폰과 PC로보실 수 있습니다.
     - 명품 컨텐츠가 '내손안에' 대한경제i
법률라운지
사회
로딩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