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NAVER 연예

[MD리뷰]우울하고 무력한 청춘을 ‘버닝’ 시키다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버닝’은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깨에 짐을 올린 채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따라가며 시작한다. 무거운 짐을 지고 인파 사이로 조금씩 흔들리며 걸어가는 종수의 뒷모습은 ‘88만원 세대’로 표상되는 이 시대 청춘의 단면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종수의 앞모습이다.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는 한 청춘이 자신의 앞모습을 드러내고 길을 떠난다. 이 영화는 우울하고 무력한 청춘을 버닝시키는 작품이다.

종수는 배달을 갔다가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서 아프리카 여행을 간 동안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벤(스티븐 연)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종수에게 소개한다. 어느 날 벤은 해미와 함께 종수의 집으로 찾아와 자신의 비밀스러운 취미에 대해 고백한다. 그때부터 종수는 무서운 예감에 사로잡힌다.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각색했는데, 이 소설 역시 윌리엄 포크너의 ‘반 버닝(Barn Burning)’의 영감을 받았다. 이창동 감독은 윌리엄 포크너와 무라카미 하루키를 교직시킨다. 윌리엄 포크너 소설은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남자와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서 죄의식을 느끼는 아들의 이야기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은 한 남자가 왜 헛간을 태우는 것인지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는 미스터리한 스토리다.

여기에 한국사회의 계급 현실을 오버랩해서 보여준다. 벤은 무슨 일을 해서 그토록 많은 돈을 버는지 알 수 없는 ‘위대한 갯츠비’ 같은 인물이고, 소설가 지망생 종수는 알바로 겨우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서글픈 청춘이다.

미국과 일본의 소설은 ‘버닝’으로 스며들어 탈출구 없는 현실 속에서 좌절하는 종수의 심장에 불을 지핀다. 실제 존재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고양이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태운다는 뜻인 데서 알 수 있듯, 종수는 수수께끼 같은 현실에 조금씩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파주의 석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해미의 춤, 새벽 안개를 헤치고 벤이 비닐하우스를 태웠는지를 확인하려는 종수의 조깅은 홍경표 촬영감독의 뛰어난 영상미에 담겨 영화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도드라지게 표현한다.

노을, 안개, 태극기, 새, 소, 비닐하우스 등에 담겨 있는 메타포(은유)를 해석하는 일은 관객의 몫이다. 종수 역시 벤에게 메타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니까.

전종서는, ‘아가씨’의 김태리처럼, 충무로가 발견한 보석이다. 상대를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유아인은 현실에 짓눌린 채 질식하듯 살아가면서도 삶의 수수께끼를 기어이 풀어내려는 종수 캐릭터를 강렬하게 연기했다. 스티븐 연 역시 무엇인가 비밀을 품고 있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극 초반부 해미는 종수를 만났을 때 과거의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제 진실을 얘기해봐”라고 말한다. 관객이 종수에게 이 질문을 던질 차례다.

[사진 제공 = CGV아트하우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연예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광고

AiRS 추천뉴스

새로운 뉴스 가져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