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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오전 서울공항에 도착하여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오전 서울공항에 도착하여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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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앓고 있다. 취임 후 최장 기간의 해외출장을 마치고 27일 돌아온 박 대통령은 귀국 직후 서울 모처에서 검진을 받고 만성피로에 따른 위경련과 인두염 판정을 받았다.

의료진은 이에 '강제 휴식'을 권했다. 박 대통령은 순방 기간 중에도 아팠다. 거의 매일 주사와 링거를 맞으면서 강행군을 펼쳤고 심지어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도 링거를 맞아야 했다는 후문이다(관련기사: '절대안정' 권고 받은 박 대통령... 대국민 사과는 언제?).

이 모든 것은 청와대가 공식 브리핑 한 내용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호텔에 설치한 브리핑실에서 "박 대통령이 편도선이 붓고 복통에 열이 많이 나서 매일 주사와 링거를 맞고 강행군을 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대통령께서 몸이 안 좋으신 가운데 고생을 하는데 국내사정이 여기와 달라 (귀국하면) 또 고생할 것 같아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리고 민 대변인은 귀국 직후인 이날 오전 박 대통령의 건강 검진 결과를 브리핑했다. 비행기 이동 시간을 감안하면 대통령의 '와병' 사실을 연달아 전달한 셈이다. 이처럼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즉각 공식 브리핑 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인 최경환 '민생평화광장' 상임대표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김 전 대통령이 고령이시라 재임기간 중 '건강' 문제가 관심사였지만 (청와대에서) 사소한 문제까지 브리핑하고 그러진 않았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의 건강'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라며 "2002년 즈음 김 전 대통령이 대단히 아프셔서 간략히 브리핑한 적은 있었지만 국민들의 걱정이 커질 것을 우려해 '어디가 아프셔서 어떤 치료를 받았다' 등의 얘기는 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박 대통령이 건강문제로 일정을 취소했던 경우를 살펴봐도 그렇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독일-네덜란드 순방 당시 감기에 걸려 마지막 순방 일정을 취소했다. 귀국 이후에도 사흘간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았다. 청와대는 그때서야 박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알리면서 일정이 없는 까닭을 설명했다.

지금은 박 대통령이 그때처럼 '와병'으로 순방 일정을 소화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하루나 이틀 정도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권고를 전달하면서 향후 '일정 공백'을 기정사실화 했다.

압박 나서던 새누리당, 박 대통령의 '링거순방'에 태도 바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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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박 대통령은 귀국 이후 민 대변인의 말마따나 '또 고생할 처지'였다.

일단, 여야 모두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친박(친박근혜)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 사태를 두고 박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는 형국이었다. 순방 출국 당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세월호 문제도 여전하다. 이석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3명은 이날 오전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철회'를 요구하는 농성에 돌입하기도 했다(관련기사: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 농성 돌입 "대통령 답 기다린다").

무엇보다 '친정'인 새누리당조차도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하던 상황이었다. 김무성 당대표는 지난 26일 경기 성남중원 보궐선거 지원 유세 후 기자들과 만나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의 사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 대표의 발언은 이후 이어진 당내 목소리에 비하면 점잖은 편이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진솔한 말씀을 직접 해줄 것을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군현 사무총장은 같은 날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했던 사람이 지금 잘못돼 수사를 받고 있다"라며 "대통령으로서 '참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그렇게, 솔직하게 말씀을 하는 것이 국민들한테 좋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당 수석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영우 의원은 이날 당 초·재선모임인 '아침소리' 정기모임에서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으로 고생했지만 앞으로 험난한 국정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정치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 대국민 사과, 이것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나서서 4.29 재보선 전에 '성완종 리스트'로 악화된 여론을 다독여달라는 '아우성'이었다. 실제로 27일 발표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4월 4주차 정례 조사 결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2012년 총선 후 최저치인 33.6%를 기록했다(20~24일, 전국 성인남녀 2500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0%p). 위기감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관련기사: 위기의 새누리당, 19대 국회 출범 후 최저 지지율).

그러나 박 대통령의 와병 소식이 알려지면서 새누리당은 더 이상 '볼멘소리'를 못할 처지가 됐다. 오히려 지켜줘야 할 형편이다.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대통령 사과하라', '비서실장 잘라라', '법무장관, 민정수석 손 떼라' 등의 주장은 최소한의 정치적 금도를 넘어섰다"라며 "국민을 대표하는 야당이라면 '링거순방'에 대한 기본예의는 지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의 '와병' 소식은 새누리당을 침묵시킨 셈이다. 다만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묵은 숙제 하나를 해결했다.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공개하다니... 사과하면 아픈 것도 다 나을 것"

야권은 이 같은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박 대통령이 만만치 않은 정치현안들에 대해 침묵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됐다는 시각이다.

현재 야당은 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뿐만 아니라 이병기 비서실장 사퇴 및 우병우 민정수석의 수사 불개입 천명, 특검 수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할 처지다. 이 때문에 오는 28일 국무회의도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대신 주재하기로 했다. 결국 4.29 재보선 이후에나 박 대통령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가)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공개하는 경우는 없다"라며 "박 대통령이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사과하면 아픈 것도 다 나을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강희용 새정치연합 부대변인 역시 "청와대는 대통령 신변 정보 공개에 신중하기 바란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날 논평을 통해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수호할 책무가 있는 대통령의 조속한 쾌유를 진심으로 바란다"라면서도 "국가원수인 박 대통령의 신변 정보가 이번처럼 낱낱이 공개된 사례가 있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특히 강 부대변인은 "대통령의 건강 상태 등 신변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 경호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위, 외국인 투자 등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라며 "그렇기에 가급적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는 것이 관례이며, 이러한 절제는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덕목이기도 하다"라고 강조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박근혜, #김무성, #4.29 재보선, #성완종 리스트, #이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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