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회 칸 영화제] 이창동 감독 신작 <버닝>, 황금종려상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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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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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영화 <버닝>의 제작자 이준동과 배우 스티븐 연, 전종서, 유아인, 이창동 감독이 시사회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칸/UPI연합뉴스


<버닝>은 서사의 줄기가 비교적 명확한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야기를 걷어내고 이미지만 남겨보면 혼란스러워진다. 수많은 메타포(은유)가 산재한 영화를 과연 단순한 줄거리 하나로 설명하는 것이 타당한가.

“비닐하우스 그 자체가 영화적 이미지다. 들여다보면 투명해 보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없다”(이창동 감독), “관객의 능력을 기대하는 시적이고 미스터리한 영화”(티에리 프리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은 이 영화에 대한 적절한 말들이다. 71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 영화 <버닝>의 베일이 벗겨졌다. 영화의 수상 가능성은 불확실하지만 이 감독이 영화에서 전작과는 다른 색다른 욕심을 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현지 반응은 좋은 편이다. 한국에선 17일 개봉했다.

16일(현지시간) 저녁 칸 뤼미에르 대극장엔 영화 <시> 이후 8년 만에 신작을 들고 온 이 감독을 보기 위한 인파가 몰렸다. 레드카펫 위에는 배우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와 함께 제작자 이준동이 함께했다. 처음 칸을 찾은 유아인과 전종서는 약간은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과 ‘청춘’을 담고 싶었다는 설명 외엔 미스터리였던 영화가 환영의 박수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 <버닝>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 종수(유아인)는 우연히 어린시절 같은 동네에 살았던 해미(전종서)와 마주친다.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해미는 그동안 모아뒀던 돈으로 아프리카 여행을 간다며 종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자신이 없는 동안 고양이 ‘보일’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해미는 종수에게 벤(스티븐 연)을 소개한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만난 벤은 ‘노는 게 일’인 사람이다. 해미와 함께 종수의 집을 찾은 벤은 종수에게 자신이 ‘가끔 비닐하우스를 태운다’고 고백한다. 벤은 한국에는 “쓸모 없고 더러운 비닐하우스가 너무 많아서” 경찰이 이런 일까지 신경쓰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그는 잡히지 않을 것이고 이제 다시 비닐하우스를 태울 때가 됐다. 얼마 안 있어 해미에게서 연락이 끊긴다. 종수는 해미를 찾기 위해 벤의 주위를 서성인다.

‘종수는 해미를 찾기 위해 벤의 주위를 서성인다’는 말은 이야기상으로만 옳을 지도 모르겠다. 몇몇 장면을 지나며 종수가 ‘그저 벤을 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슨일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부유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주인공 같은 벤. “한국에는 개츠비들이 너무 많다”고 말한 종수는 벤의 일상을 바라본다. 그가 가족과 화려한 식사를 하는 걸 뒤에서 바라보고, 늦은 밤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아래에서 올려다 본다. 알 수 없는 동경, 욕망, 분노가 섞인 시선이다.

영화 <버닝>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종수는 영화 내내 거의 글을 쓰지 않거나, 혹은 못 한다. 그는 아버지의 축사를 돌보고, 잔업을 요구하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간다. 뉴스에선 한국의 기록적인 청년실업률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나레이터모델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여행을 가며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미는 알고보니 ‘카드 빚’이 많다. 부모는 길을 터주지 못한다.

재판 중인 종수의 아버지는 한 번도 아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다. 오랜만에 나타난 엄마는 돈 얘기를 한다. 결말을 포함해 이런 장면이 관객에게 말하는 바는 직접적이다.

미스터리한 구조로 관객을 궁금증에 빠뜨리면서도 이를 명확하게 설명하듯 보여줘 전작에 비해 대중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하나의 이야기 안에 은유들이 산재해있다는 점에서 좀더 복잡하거나 혼란스럽다. 불타는 비닐하우스의 이미지와 해미의 춤, 아프리카 부시맨에서 따온 ‘그레이트 헝거’와 마른 우물의 관계는 영화를 계속해서 곱씹게 만든다. 해미가 말하는 팬터마임, 그녀의 방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 줄기, 그 방 창 너머로 보이는 남산타워나 종수의 집에 걸려있는 태극기, 벤의 포르쉐 등 모든 것이 은유다.

<시>나 <밀양>에선 대부분 장면과 그 은유가 하나의 이야기에 단단하게 묶여 있는 느낌이었다. 이번 영화에선 이들이 이야기를 벗어나 ‘그’대로 존재하는 듯하다. 칸 출국전 간담회에서 “배우 등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모두 자유롭기를 바랐다. 그간 음악을 절제해 왔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음악도 자기 주장을 하게 뒀다”고 말한 이 감독의 뜻이 뭍어난 것일까.

영화 <버닝>


영화 <버닝>


촬영과 음악 등 기술적인 부분도 완성도가 높다. 종수의 집에서 해미가 노을을 보며 춤을 추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그린 장면 등 영화엔 자연을 그래로 담은 모습이 종종 비춰지는데, 그 자체로 먹먹하다. 신인 전종서의 연기는 무난하다. 스티븐 연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영리하게 맡았다. 유아인은 나름대로 종수 캐릭터를 분석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엿보인다. 종수는 영화 속에서 가장 복합적인 인물이다.

영화가 끝난 뒤 약 5분간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해외 언론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미국 인디와이어는 <버닝>을 이 감독의 최고 영화라고 추켜세웠다. 특히 출구 없는 삶을 사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미권 온라인 영화 매체 ‘아이온 시네마’의 집계에 따르면 버닝의 평점은 3.9점으로 이날까지 공개된 경쟁작 16편 중 가장 높다.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콜드 워>가 3.7점으로 뒤를 이었다.

<칸|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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