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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청년’ 정밀화 그려내고…‘빛’의 영상미학 새로 썼다

[한겨레] 이창동 ‘버닝’ 국내·칸 영화제 시사

좁은 원룸·카드빚 뿐인

이 땅의 청춘 사실적 그려내

하루키 원작 큰틀 유지하지만

후반부엔 ‘이창동표 미스터리’ 색

유아인·전종서·스티븐 연 등

긴장감 넘치는 연기호흡 볼만

필름 내려놓고 첫 디지털 작업

‘해질녘 춤사위’ 영상미 압권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의 한 장면. 씨지브이아트하우스 제공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삶에 대한 연민을 담고 있다. 들뜬 과장 없이 현실에 발붙인 그의 영화는 늘 폐부를 깊게 찌르는 고통을 느끼게 한다. 영화 속 인물의 고뇌와 상처를 관객이 함께 공감하도록 이끌어 종국엔 인간에 대한, 또는 시대에 대한 묵직한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데뷔작 <초록물고기>를 시작으로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에 이르기까지 그는 사회의 이면을 리얼하게 그려내며 영화적 사유의 샘을 깊고 넓게 확장해왔다.

그런 이 감독이 8년만에 내놓은 신작 <버닝>은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일상의 욕망, 무력감·분노가 낳은 충격적 결말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다섯번째 칸 국제영화제 진출작인 <버닝>은 지난 14일 국내 시사를 마치고 16일 저녁(현지시각) 칸에서 전세계 관객들을 만났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의 한 장면. 씨지브이아트하우스 제공 소설가를 꿈꾸며 유통회사 알바로 생계를 꾸려가는 종수(유아인)는 어느 날 나레이터모델로 일하는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해미는 “곧 아프리카로 여행을 갈 예정”이라며 종수에게 자신이 없는 동안 고양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얼마 뒤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만났다는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과 함께 귀국한다. “놀면서 돈 버는 일을 한다”는 벤은 종수나 해미와 달리 고급 외제차를 몰고 여유로운 삶을 즐긴다. 해미와 ‘특별한 관계’라 믿었던 종수는 벤과 해미 사이에 끼어 불편한 관계를 이어간다. 종수의 집에 해미와 함께 갑자기 찾아온 벤은 “두 달 정도의 간격을 두고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가 있는데, 최근 여기서 매우 가까운 곳에서 태우고 싶은 비닐하우스를 발견했다”는 뜻 모를 고백을 한다. 그날 이후 해미는 흔적없이 사라진다. 해미는 어디로 갔을까?

영화는 우리 사회의 젊은이가 겪는 현실을 세밀하게 더듬는다. 해미의 좁고 어수선한 원룸에 들어선 종수가 “이만하면 좋네. 전에 내가 살던 방은 싱크대 옆에 변기가 있었는데”라고 읊조리는 장면, 마치 군대 점호를 연상시키는 강압적인 유통업체 아르바이트 현장, 종수에게 해미 가족이 “카드값 다 갚기 전엔 집에 들어올 생각 말라고 전해”라고 당부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의 한 장면. 씨지브이아트하우스 제공 초라하고 궁색한 청춘에 희망이란 찰나의 꿈과 같다. 해미의 방에 하루 딱 한 번, 잠시 비친다는 남산타워 유리의 반사 빛처럼. 해미가 그랬듯 종수 역시 빛이 드는 순간 멀리 솟은 남산타워를 바라기 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다. ‘헛간’이 한국 상황에 맞게 ‘비닐하우스’로 대체된 것 빼고 영화는 큰 틀에서 원작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해미의 실종 이후, 종수가 집착하듯 벤을 쫓는 부분부터 영화는 원작의 틀을 넘어선다. “쓸모없고 지저분한 비닐하우스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태워버리며 희열을 느끼는” 벤에게 종수가 의혹의 시선을 두면서 영화는 미스터리 장르의 면모가 강해진다.

영화는 이미지로 표현되는 여러 메타포를 통해 현실과 비현실,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을 혼재시킨다. 고양이는 진짜 존재할까? 해미가 말한 우물은? 해미의 실종과 폭주하는 종수의 분노는 진짜 현실일까? 감독은 충격적 결말 앞에 해미의 방에 앉아 소설을 쓰는 종수의 모습을 배치하며 슬그머니 그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의 한 장면. 씨지브이아트하우스 제공 지금까지 필름만 고수했던 이 감독의 첫 디지털 작업물인 <버닝>은 빼어난 영상미가 도드라진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초승달이 고개를 내민 가운데 붉게 번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벤과 종수와 해미. 그 노을에 묻혀 자유롭게 춤을 추는 해미의 모습은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명장면이다. 절제된 연기로 평범하지만 예민한 종수를 연기해 낸 유아인, 자유와 낭만과 허영이 교차하는 해미를 맞춤인 듯 표현한 신예 전종서, 의뭉스럽고 속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캐릭터 벤을 완벽한 한국말로 소화한 재미동포 스티븐 연도 러닝타임 내내 긴장의 균형추를 잘 맞춘다.

이제 남은 것은 <버닝>의 수상 여부. 이창동 감독은 <버닝>으로 세 번째 칸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을까? 폐막식(19일)까지 국내 팬들도 함께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17일 개봉.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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