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7]뱃사람과 바다 날씨

물 위에 맡긴 삶, 하늘의 뜻을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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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기상대에서 직원이 기상관측용 풍선을 날리고 있다.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태풍으로 생활 중심지까지 옮기던 어민들 '갈매기떼 강풍설' 등 특성 구전으로 전해
19세기 말 각국 배 늘던 인천, 근대방식 관측 시작 … 日 필요에 따라 최신장비 갖춰
기술 발전에도 안개·가시거리등 '사람 눈'에 의존… 세월호 참사 '안전' 뼈아픈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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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강풍을 막아주고, 여해 끝이면 제쳐주고, 모래성이면 엎어 넘기고, 갈치바위를 넘겨주시고."

주요 무형문화재 82-2호인 서해안풍어제 '소본향제석굿'의 한 구절이다.



서해안풍어제 김혜경 이수자는 "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하는 어민들의 소망을 표현한 부분"이라며 "만선을 기원하는 풍어제에서 바다 날씨 안녕을 바라는 것 자체가 뱃사람에게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뱃사람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다. 날씨가 평온할 때는 물고기를 잡게 해주는 장소지만, 비바람이 불면 한순간에 배를 삼켜 버릴 수 있는 존재다.

뱃사람들의 안전과 만선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진행하는 풍어제에서 바다 날씨가 평온하기를 기원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바다 날씨에 따라 어업의 중심지가 바뀌기도 한다. 1920년대 중반까지 인천 '민어파시'의 중심은 굴업도였다. 1920년 굴업도 근해에서 민어어장이 발견되면서 성어기인 7~9월 전국 각지에서 어선 500여 척이 굴업도를 찾았다.

민어파시 때는 음식점·세탁소·목욕탕 등 선원들을 위한 임시 편의시설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굴업도 민어파시는 1930년대에 들어서 덕적도에 그 명성을 내주게 됐다.

방파제 시설 등이 없는 자연항(自然港)이었던 굴업도는 1923년 8월13일 불어닥친 태풍으로 어선 63척이 완전히 파손되거나 행방불명됐고, 30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당시 경기도수산회의 공식 발표인데, 실제로는 어선과 인명 피해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규모 재난으로 인해 이듬해부터 인천 근해 어업기지는 덕적도 북리(北里)로 옮겨졌다. 조선총독부가 1937년부터 북리항을 개발하면서 민어파시의 중심지는 굴업도에서 덕적도로 완전히 바뀌게 됐다.

어부들은 어업 활동의 중심지까지 바꾸는 '날씨'를 나름의 방법으로 읽어냈다.

정남훈(69) 북성포구 어민회장은 "예전부터 갈매기 수십 마리가 높이 날면 3일 뒤에는 반드시 강풍이 불어온다는 말이 있었다"고 했다.

정태진(47) 백령도기상대장은 "과거에는 기상 예보가 지금처럼 체계화돼 있지 않았다. 실시간 확인도 불가능했다"며 "이 때문에 지역적으로 발생하는 기상 특성이 구전돼 내려오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중기획 바다이야기 연평도 풍어제 자료사진
서해5도 평화풍어기원제 띠뱃놀이 모습.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방식의 해상 기상 관측이 가장 먼저 이뤄진 곳이다. 1883년 개항한 인천항은 서울과 가깝다는 지리적인 이유로 세계 각국의 배들이 몰려왔다.

주로 무역선과 사람을 실어나르는 여객선이었는데, 인천 앞바다는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고 섬도 많아서 좌초되거나 선박끼리 부딪혀 침몰하는 사고가 빈발했다고 한다.

이에 당시 인천해관(현 인천본부세관) 총세무사였던 독일인 묄렌도르프는 인천해관을 창설한 1883년 9월1일부터 정규적인 해양 기상 관측을 시작했다.

한수당연구원 한상복 원장(서울대 인류학 명예교수)은 "해관 개설 당시 인력 대부분은 중국해관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이었다. 당시 중국해관은 기상청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인력들이 날씨를 관측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기상관측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3시간 단위로 5차례에 걸쳐 진행됐고, 밤에는 관측이 이뤄지지 않았다. 해관 직원은 기압(氣壓)과 기온(화씨 단위), 바람의 방향과 세기, 상층부와 하층부의 구름 형태, 강수량 등을 관찰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조선에서는 관상감이 지금의 기상청 역할을 수행했는데, 인천해관에서는 관상감에서 내놓는 자료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기상관측을 진행했다고 한다.

일본은 러·일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인천에 관측소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인천 앞바다에서 전쟁이 처음 시작될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러시아 함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인천 앞바다의 날씨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이 인천 팔미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를 세우고, 전쟁용 관측소를 구축한 주된 이유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할 수 있는 배경에는 미리 측량한 해상 관측 정보가 주효했다는 게 당시 일본의 분석이었다.

관측소의 중요성을 깨달은 일본은 인천의 임시 관측소를 헐고, 1905년 1월 응봉산 정상에 최신 시설을 갖춘 인천관측소를 정식으로 세우게 된다.

이후 이곳에서 우리나라 전역은 물론 연안, 태평양 심지어 일본 해역의 해상 기상도 관측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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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9월 1일 오전 6시부터 9월 9일 오후 6시까지의 해양기상관측자료. 당시 인천 해 관(현 인천본부세관)의 직원들은 기압(氣壓)과 기온(화씨 단위), 바람의 방향과 세기, 상층부와 하층부의 구름 형태, 강수량 등을 하루 5차례 관측했다. /한상복 한수당연구원 원장 제공

바다 날씨 관측은 수십 년 동안 '사람의 눈'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기온이나 기압, 풍향 등은 시대의 흐름이 바뀜에 따라 기계가 관측한 자료가 대신해 나갔지만 안개 상황에서의 가시거리 측정은 시정계 등 관측 장비보다 육안 관측에 의존했다.

안개는 바람을 타고 빨리 이동하기 때문에 가까운 지점에서도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데다, 바다 습도에 의해 측정값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테면 인천항관제센터(VTS)에서 인천항 외측 방파제가 보이면 가시거리가 1마일(1.6㎞) 정도 나오는 것으로 판단하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관측 지점과 측정 시각, 측정 방법 등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2014년 4월15일 오후 9시 세월호 출항 시점 기준으로 관측된 인천항 인근 시정 정보는 당시 해양수산부 소속 인천VTS 1천600m, 해운조합 운항관리실 500m 이상, 인천기상대 800m 등이었다.

해사안전법에 따르면 어선을 포함한 여객선의 경우 시정이 1㎞ 이내일 때 해양경찰서장이 출항을 통제한다. 인천기상대나 해운조합 운항관리실 기준이었으면 세월호는 출항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호는 인천VTS의 가시거리에 따라 2시간 뒤 시정주의보가 해제되면서 출항했고 대참사를 당했다.

현재 기상청은 모든 바다 날씨를 관측 장비를 이용해 측정하고 있다. 덕적도와 이작도, 풍도, 자월도, 장봉도에는 파고 부이를 설치해 파고와 풍향, 풍속 등을 관측한다.

논란이 됐던 가시거리 측정은 지난해부터 덕적도에 있는 해무 관측소의 영상(CCTV) 장비를 통해 예보되고 있다. 또 이를 토대로 인공지능(AI)이 해무의 발생 확률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수도권기상청 백령기상대는 오전·오후 8시15분 하루 두 차례 '레이윈존데'를 하늘에 날려 기압과 풍향, 풍속, 온도, 습도 등을 확인하고 있다.

레이윈존데는 지상부터 고도 35㎞까지 고도별 기압, 기온, 습도, 풍향, 풍속을 실시간으로 관측하는 장비다.

뱃사람들은 기상 관측이 정교해지고, 안전 기준이 강화되면서 오히려 불편해졌다고 한다. 예전보다 출항을 통제하는 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남훈 어민회장은 "선원들의 인건비는 고정적으로 나가기 때문에 하루 조업을 나가지 못하면 그만큼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안전을 위해서는 당연히 출항을 통제해야겠지만, 멀쩡한 날씨에도 조업을 못 나가는 날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 등 출항 통제 기관들의 생각은 다르다. 인천해수청 관계자는 "안전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어민이나 섬 주민들이 불편을 겪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일러스트/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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