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갑이는 사람을 두고 기술을 가르쳐가며 놋그릇을 만들어 관아에 바쳤다. 그렇게 배워나가 제자들이 차린 공방이 놋장골에는 대여섯 곳이나 되었고, 인근마을에서는 놋그릇을 만드는 곳이라 해서 놋장골이라 불렀다. 그렇게 소문이 나자 돈 될 만한 것을 장사꾼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장사꾼이 돈 냄새를 맡는 것은 승냥이가 고기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것보다 더 빨랐다.

청풍도가에서는 단리 놋장골 유기들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청풍관아의 아전들과 결탁해 약채를 써가며 그곳 쇠쟁이들을 특별히 관리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놋장골 쇠쟁이들에게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건은 예전보다 많이 만들어내는데 몸만 고될 뿐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열심히 일을 하면 뭐든지 나아지는 것이 세상 이치였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벌이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일 년 내내 등골이 빠지도록 일을 해도 도지를 내고나면 남는 것이 없는 소작인이나 같은 처지가 되었다. 많이만 만들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흑막을 놋장골 쇠쟁이들이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청풍도가의 술수에 깊숙하게 빠져 헤어날 수 없는 지경이 된 다음이었다.

“그래 무어더냐?”

최풍원이 박왕발이가 까먹고 지나치려던 것을 물었다.

“놋장골 쇠쟁이들은 청풍도가로부터 빠져나오려고 해도 워낙 단단하게 코가 꿰여있어 그리 할 수가 없답니다.”

“그렇구나.”

최풍원도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다.

처음에 최풍원은 단리임방을 통해 놋장골 쇠쟁이들과 청풍도가의 고리를 끊어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농산물이 대부분인 청풍에서 놋그릇은 고가품이었다. 그런 돈 되는 일을 쉽게 포기할 장사꾼은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관아의 비호를 받고 있는 청풍도가였다.

“놋장골 쇠쟁이들은 청풍도가의 횡포가 지긋지긋해 빠져나오려고 해도, 청풍도가 놈들이 이중삼중으로 틀어쥐고 있어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있답니다요.”

“무슨 방도를 내야하기는 하겠는데, 지금으로서는…….”

최풍원은 청풍도가에서 어떤 식으로 놋장골 쇠쟁이들을 옭죄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북진본방 형편으로는 청풍도가로부터 그들을 꺼내올 금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대궐 잔치에 올려 보낼 공납품만 준비하기에도 급급한 형편이었다. 일단은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을 해놓고 청풍도기로부터 놋장골 쇠쟁이들을 꺼낼 방도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왕발아,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갔느냐?”

“단리에서 진도나루를 건너 바로 가도 되는데, 율지리로 해서 늪실 내메나루를 건너 상천·하천으로 해서 학현으로 갔습니다.”

“왜 그렇게 빙빙 돌아서 갔느냐?”

최풍원이 빠른 길을 두고 돌아간 연유를 물었다.

“날이 따뜻해졌는데 금수산 아래 마을에는 어떤 나물들이 많이 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그랬습니다요.”

지금 청풍에는 봄이 한창이었다. 산 좋고 물 좋은 청풍에서도 금수산은 빼어난 경치 못지않게 봄만 되면 산나물이 지천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번 대궐 공납품에도 청풍의 봄 산채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요즘 어떤 산채들이 많이 나오더냐?”

“고사리, 도라지, 두릅, 미나리, 냉이, 씀바귀, 달래, 참나물, 취나물, 더덕들이 상천리에서 학현으로 가는 내내 마을마다 집집마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산나물 천지였습니다요.”

박왕발이가 학현으로 가는 길에 본 마을 사정을 상세하게 전했다.

“학현도 그렇더냐?”

“학현임방은 집 안팎이 나물로 가득했습니다요. 지붕이고 봉당이고 마당이고 산나물들을 말리느라 빠꼼한 구석이 없었습니다요.”

“학현 임방주는 뭘 하고 있더냐?”

“인근 마을에서 들어오는 산채들을 갈무리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요.”

“그렇게 학현임방으로 물산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더냐?”

“학현 임방주님 말로는 인근 마을에서 들어오는 것도 많지만, 자신이 마을 사람들 품을 사서 산으로 올라가 직접 채취하는 것이 더 많다고 하더이다.”

“일꾼을 사서 나물을 뜯는다고 하더란 말이냐?”

“예. 그뿐만 아니라, 석이버섯도 백 근 이상을 땄다고 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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