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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만화정전

브이 포 벤데타, 앨런무어, 데이비드로이드

가면, 권력을 심판하다

[브이 포 벤데타] 표지. ⓒ시공사 & Alan Moore & David Lloyd

가면(假面) 혹은 탈의 역사를 따져보면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물을 사냥하기 위한 변장에서 시작된 가면은 이후 주술, 신앙, 축제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사용되면서 인류 문화의 주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얼굴을 숨길 수 있는 기능은 가면을 착용한 이들로 하여금 일상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행동도 가능케 하는 대범함을 심어주기도 한다. 평소에는 용기를 내지 못했던 젊은이들이 가면무도회를 통해 이성에게 다가가거나 권력에 대한 풍자도 탈의 힘을 빌려 할 수 있었던 것이 그 주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브이 포 벤데타]를 통해서도 우리는 그처럼 가면이 주는 용기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작품 속 가면을 쓴 주인공이 보여주는 힘의 근원은 결코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탐욕스런 권력이 벌인 생체실험의 부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명확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주인공 ‘브이’가 등장하게 되는 작품의 배경은 이렇다. 가상의 미래에 세계 전쟁이 일어나고,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영국은 극우 집단에 의해 통제되기 시작한다. 권력을 잡은 이 집단은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자행하고,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은 자신의 얼굴을 잃은 대신 평범하지 않은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권력에 대한 심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포스터.

‘vendetta’의 사전적인 의미는 ‘복수’ 혹은 ‘앙갚음’ 정도다. 그러니, ‘브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을 향해 점점 다가가는 주인공의 신념은 개인적인 원한에 대한 앙갚음을 넘어 불행한 자신을 낳게 한 ‘시스템’에 맞선 항거로 부르기에 더욱 적절해 보인다. ‘생체실험’을 기획하고 주도한 권력층을 심판함으로써 올바르지 못한 일이 만들어지게 된 근원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희망을 담보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작품이 전달하는 주요한 묘사방법이 ‘상징’에 있다는 점 또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주인공 ‘브이’가 쓰고 있는 가면은 17세기 초 영국 정부에 저항하다가 처형당한 ‘가이 포크스’의 모습은 형상화한 것이다. 즉, 과거에 실존했던 인물의 모습을 빌려와 권력에 저항하는 브이의 의지를 이미지화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주인공이 보여주는 권력에 대한 복수는 권력의 핵심들을 차례로 제거하는 모습을 통해 물리력을 동반하는 반면, 주인공이 쓰고 있는 가면은 그의 행동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대변하고 있다. (해외의 시위 현장에서 실제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시위대가 등장하는 모습도 이러한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시위대<출처:(CC)wikimedia commons, ⓒJamesHarrison>

권력에 대한 묘사 또한 흥미롭다.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리더’는 브이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정보기관들로부터 보고를 받는다. 사람들을 감시하고, 도청하고, 염탐하는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 작품은 각각 눈, 귀, 코 등과 같은 인체의 일부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조정하기 위해 리더는 항상 “영국은 승리할 것입니다.”는 구호를 외치는데, 이는 마치 공공의 질서와 사회 안정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과 권리는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파시즘의 모습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의 부정(不正)은 브이의 ‘벤데타’에 대해 정당성을 확보시켜준다.

[브이 포 벤데타]는 영국의 대표적인 만화잡지 <워리어>를 통해 1981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완결은 1980년대 후반에야 이루어졌으니 주인공 브이에게 있어서 복수는 꽤 오랜 여정이었던 셈이다. 한편, 작품은 시간적 배경을 1990년대로 삼고 있다. 이는 곧 다가올 미래의 불행을 미리 보여줌으로써 마치 1980년대 냉전을 거치는 동안 전 지구가 겪었을 시대적 불안감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를 한 마디로 적자면 ‘어둡다’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그만큼 작품 속 세상은 통치와 억압이 일상화되어 있고, 그 속에서 주인공의 고군분투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는 이유 또한 명확하다. 그것은 주인공의 가면이 전하는 메시지를 우리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가 궁금해!

  • 글: 앨런 무어(Alan Moore)이미지
    글: 앨런 무어(Alan Moore)
    1953년 11월 18일 영국에서 출생했다. 1970년대 후반 대안매체에 글을 쓰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1980년대 초, DC 코믹스를 통해 [배트맨], [슈퍼맨] 등의 작업을 진행하며 명성을 쌓았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왓치맨(Watchmen)]은 1986년에 선을 보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에는 주류 만화산업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데, 이 시기에 나온 대표적인 작품이 [프롬헬(From Hell)]이다. 이후 다시 주류 만화산업으로 돌아온 그는 [젠틀맨리그(The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en)]를 선보인다. 그의 여러 작품들이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명성을 더욱 확고하게 한다. [브이 포 벤데타]는 2005년에, [왓치맨]은 2009년에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젠틀맨 리그]와 [프롬헬] 역시 각각 2003년과 2001년에 스크린으로 옮겨진 바 있다. 한편, 국내에는 [브이 포 벤데타] 외에도 [프롬헬], [왓치맨] 등이 번역 출간된 바 있다.
  • 그림: 데이비드 로이드(David Lloyd)이미지
    그림: 데이비드 로이드(David Lloyd)
    1950년 영국에서 출생했다. 1970년대 후반에 데뷔하였으며, 앨런 무어와 함께 작업 한 [브이 포 벤데타]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주요 작품으로는 [나이트 레이븐(Night Raven)], [카드로 만든 집(House Of Cards), [워 스토리(War Story)], [킥백(Kickback)] 등이 있다.

이 만화의 재미는 바로 이것!

작품이 첫 선을 보인 1981년, 영국은 ‘마가렛 대처’ 수상이 이끄는 이른바 ‘우파 정부’가 정권을 잡고 있던 시기였다. 전 세계적으로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이 날을 세우던 냉전시대를 지나며 국가의 힘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던 시절이었던 셈이다.

대처리즘에 반대하는 시위대. ⓒhttp://www.dewereldmorgen.be

당시 대처 수상의 정책들은 영국 전체를 변화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를 야기한 경제정책, 북아일랜드에 대한 무력탄압 등 약자를 희생시켰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시기에 강한 영국을 이끌던 대처리즘(Thatcherism)에 대한 분노와 비판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어진다.

요컨대, 이 작품은 근대만화의 정체성이자 만화가 지닌 가장 원초적인 무기인 ‘풍자’를 작품 전체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즉, 신문만평에서 보여주는 풍자의 미학이 한 컷을 통해 매우 압축적으로 시사성을 확보해낸다면, [브이 포 벤데타]는 스토리 만화라는 긴 여정 속에 ‘풍자’를 개입시켜 판타지물로 산출된 셈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말초적 유머에 대한 일차원적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를 보듬는 감각적인 통찰이 필요하다. 가령, ‘소비적인 유머’에 길들여진 시선으로는 어쩌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만화가 매번 웃음과 즐거움만 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만화를 통해 자기성찰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이 작품을 펼쳐볼 준비가 된 것이리라.


참고자료

위키디피아 [브이 포 벤데타]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영화 [브이 포 벤데타] 공식 홈페이지

발행일

발행일 : 2014. 06. 11.

출처

제공처 정보

  • 김성훈 만화 칼럼니스트

    편집, 기획 등 만화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즐겁게 일하고 있으며, 관련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등이 있으며, 1인 콘텐츠기업 ‘크레이지캐럿’의 대표다. http://blog.naver.com/c_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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