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수 SNS.

[미디어파인=유진모의 이슈&피플] 하지원의 동생 전태수가 지난 21일 34살로 세상을 떠났다. 소속사는 “평소 우울증 증세로 꾸준히 치료를 받던 중, 상태가 호전돼 최근 복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던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말 샤이니 종현의 비보가 전해진 지 한 달여 만이다.

이 안타까운 소식에 누리꾼은 고인과 유족에게 애도의 뜻을 보내는 가운데 우울증에 대해 두려움과 더불어 날카로운 지적을 나타내고 있다. 그 내용은 우울증이란 정신병의 심각성과 이를 상담하고 치료해주는 정신과 의사 중 일부의 무책임하거나 지극히 사무적 혹은 상업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이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후 베르테르 효과란 정신과 전문용어가 나왔다. 이에 대응해 파파게노 효과도 등장했다. 1980년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의 자살률이 급증하자 자살예방센터에서 이른바 ‘자살 보도 지침’을 채택했고, 모든 언론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비율이 급감한 것.

우리나라도 보건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가 이와 유사한 ‘자살 보도 권고 기준 2.0’을 정해 자살방지에 힘쓰고 있다. 아예 자살이란 용어조차 쓰지 말자는 게 골자다. 필자는 이에 더해 연예인이란 직업에 대한 ‘거품’과 그게 낳은 우울증이란 병에 대한 사회적 경종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종현은 겉으로 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모양새였다. 대기업 SM엔터테인먼트의 간판 샤이니의 중심으로서 27살이란 꽃다운 나이에 잘생긴 스타였다. 아이돌그룹 멤버치곤 드물게 스스로 작곡 등의 창작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인 뮤지션이었다.

팝계엔 오래전부터 ‘27살 징크스’란 고약한 우연의 일치가 존재해왔다. 1969년 롤링 스톤즈의 브라이언 존스를 시작으로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도어즈), 커트 코베인(너바나) 등이 28살 생일을 못 만났다. 2006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5관왕을 수상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1세기 가장 뛰어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칭송받는다.

모든 천재가 그렇듯 비범한 사춘기를 보냈고, 평범하지 않은 정신세계를 보였던 그녀는 스타덤에 오른 후 ‘27살 징크스’를 두려워했지만 27살에 알코올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모두 각 분야의 최고 실력자이자 개성 강한 아티스트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자신의 일을 사랑했으며 천재적인 능력과 감각을 타고났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게 없었다. 

▲ 전태수 SNS.

하지만 인기와 부를 얻게 되자 인기를 유지하거나 더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강박감이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창작의 고통은 의외로 컸다. 생활패턴은 흐트러졌고, 자신의 달라진 모습에 가까웠던 사람들이 떠나가거나 스스로 그들과 멀어졌다.

심리학에는 스티그마 효과라는 말도 있다. 어떤 사람을 나쁜 놈이나 무능력자로 몰아가면 진짜 그렇게 된다는 심리적 마취 효과다. 이에 반해 ‘네가 최고야’라고 자꾸 칭찬해주면 또 그렇게 긍정적으로 변한다는 로젠탈 효과도 있다. 하지만 이는 보편타당한 이론일 뿐 연예계는 조금 다르다.

요절한 국내 연예인 중 한때 꽤 잘나갔던 이들도 많다. 그들에겐 로젠탈 효과의 반대급부가 적용된다. 화려한 연예활동의 앞 시기를 보낸 그들은 그러나 중간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다수는 그들에게 따끔한 충고와 재기의 노력을 함께하기보다는 로젠탈 효과만 외쳤다.

그러니 과거에 집착하고, 그걸 되찾을 수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감만 키울 뿐 뼈를 깎는 개선이나 새로운 길의 개척은 뒷전이었다. 그게 길어지고 상실감이 더 커져갈수록 집착만 강해지고, 그게 나중엔 자존감의 파괴로 인해 자포자기의 심리상태로 귀결되곤 했다.

고정된 급여를 보장받은 직장인에게도 ‘출세’의 욕구가 엄연히 존재한다. 신분의 차이가 ‘스타’와 ‘무명’으로 극명하게 엇갈리는 연예인 같은 비정규직에겐 그 욕망이 엄청나기 마련이다. 인기와 소득이 풍성한가, 그렇지 아니한가에 따라 같은 연예인일지라도 ‘등급’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보도 기준’에는 ‘사회적 문제 제기를 위한 수단으로 자살 보도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조항이 있다. 지극히 당연한 논리지만 사망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를 고치려는 노력이 배제된다면 그것 또한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선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일각에서 지적하는 일부 정신과 의사들의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 히포크라테스 정신은 차치하고라도 최소한의 직업적 윤리관이다.   

▲ 하지원. 영화 '맨헌트' 스틸.

현재 연예인 관련 학과 및 학원 등이 1만여 개가 난립 중이라고 한다. 대통령 판사 검사 의사 등이었던 청소년의 장래 희망은 연예인으로 바뀐 지 오래다. 시대의 흐름과 그에 따른 패러다임의 변화로 유행이 바뀌듯 선호도도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광대’ ‘딴따라’ 등이었던 연예인이 공인이자 빛나는 별이 된 것도 시대의 변화가 만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언론과 여론이 모든 연예인을 스타로 부각시키는 데만 열을 올릴 뿐 대통령이 5년마다 1명일 수밖에 없듯 연예인 중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은 1%에 불과하다는 걸 알리는 데 소홀히 한다면 그건 ‘보도 기준’이 제기하는 기준과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한때 사회적 지위와 부의 상징 중 하나였던 변호사의 위상의 변화가 반면교사다. 개체 수의 포화상태로 인해 최상위의 소수만 살아남는 피라미드 형태가 됨으로써 다수의 변호사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변호사가 부동산중개업에 뛰어든다고 해 한국공인중개사협회와의 갈등을 야기한 게 대표적인 증거다.

연예계의 문제는 언론은 물론 국가와 사회가 안고 있는 공통의 숙제다. 특히 TV의 책임이 크다. 인터넷이 명실상부한 오피니언 리더라면 TV는 공공의 리더다. 각 인터넷 매체가 TV의 드라마나 예능 등의 리뷰에 집착하는 건 그만큼 그것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엄청나다는 증거다.

TV는 일부 연예인의 공황장애를 예능의 소재로 활용할 줄은 알아도 그게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 왜 발병하는지, 치료와 예방을 위해 사회가 뭘 해야 하는지 등을 알리는 데에는 무관심하다. 또 우울증이란 병이 도대체 왜 요즘 잦은지,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그래서 그걸 막기 위해 미디어와 사회가 어떤 도움을 줘야 하는지 등은 외면한다.

‘보도 기준’도 중요하지만 이쯤 되면 정부와 연예계와 TV와 언론이 힘을 합쳐 연예계의 빙산의 일각 밑에 가라앉은 99%의 ‘무명’들을 집중 조명하고, 그들에게 힘을 보태줌으로써 ‘무명’도 살리고, 다수 청소년의 허황된 꿈에 경종을 올리는 일에도 힘써야 개인적 불행과 사회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모든 후보자가 당선인이 될 수 없듯 모든 연예인을 스타로 만들어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연예인=스타’라는 허황된 거품의 공식부터 깨야 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서울신문, 미디어파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