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세대에 동기부여, 지금의 ‘층층구조’에선 어려워…워라밸 Q&A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5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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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올해 7월부터 근무시간을 줄여야 하는 300인 이상 기업들은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이다. 바뀐 근로기준법을 지키면서 생산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증이 많다.

본보 ‘워라밸을 찾아서 2부’ 취재팀은 취재 과정에서 접한 기업과 직장인들의 궁금증을 모아 조직 전문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맥킨지 아시아 ‘조직 프랙티스’의 리더인 강혜진 파트너가 답했다. 그는 2016년 대한상공회의소와 국내 100여 개 기업의 조직 진단 보고서를 주도하기도 했다.

Q: 해외 기업들도 근로시간 제한이 문제가 되는지 궁금하다.

“사실 야근을 매일 3일 이상 하는 것은 한국적 특성에 가깝다. 우리도 앞으로 최장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축소가 될 예정이라 독일 시스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이미 (주40시간) 축소를 했고 우리보다 노동시장이 더 경직돼 있다. 국내 기업인들이 ‘그렇게 경직된 노동환경에서 어떻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나’는 물음을 가지고 있다.

요즘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서 대안으로 보고 있는 게 ‘애자일 조직(기민한 조직)’이다. 프로젝트(미션) 단위로 조직을 구성해 부서 간 업무에서 일어나는 일을 최소한으로 줄인 기민한 조직. 네덜란드 ING은행이 애자일 조직으로 바꾸고 생산성을 30%정도 높였다. 동시에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기업 1위로 바뀌었다. 보통 생산성을 높이려고 구조조정을 하면 조직 분위기가 안 좋아지기 마련인데, 그 두 가지를 다 얻은 사례다. 그래서 애자일 모델이 유럽 사회에서는 표준 모델이 되면서 독일 다임러 등도 도입 중이다.”

Q: 회사 차원에서 야근 줄이고 효율 높이자고 아무리 얘기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업무 비효율은 우리나라 많은 기업 조직 자체에 뿌리 깊은 원인이 있어 이벤트, 캠페인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원인 세 가지로 본다. 첫째, 업무 지시의 구체성과 명확성 부재다. 위에서 미션과 지시(order)가 내려오는 과정에서 중간에 서로 자의적으로 해석 하게 되면서 마지막에 업무를 지시하는 상사-결국은 팀장 레벨-는 굉장히 모호한 상태에서 업무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고서를 만들면 올라갔다 내려갔다는 반복하는 과정이 생긴다.

둘째는 사일로(Silo·조직 내의 부서 간 장벽, 다른 부서와의 소통이 없는 현상)다. 우리나라 기업 특성상 임원이 부서 업무를 조율하기보다 주로 과장, 부장 레벨에서 이뤄지다 보니 조율 자체 건수도 많고 승인 절차도 복잡해진다.

세 번째는 직무의 모호성 문제다. 주로 공개채용으로 신입사원을 뽑기 때문에 개인의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이 분명하지 않다. 부서가 해야 될 일은 있지만 개인별로는 없으니 일을 잘 하는 사람한테 일이 몰린다. 그런 것 들이 야근과 업무 비효율성을 유발한다. 이를 바꾸지 않고 캠페인 성으로는 안 된다.”

Q: 라이프도 중요하지만 워크(일)도 잘 해야 할 텐데, 동기부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젊은 세대는 회사를 위한 일의 당위성이나 승진, 성과급으로 동기부여가 잘 안 된다. 그렇다고 단지 ‘나에게 워라밸을 줘’라고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있는지, 내 역량이 개발이 되는 지, 팀에서 하는 일에 대해 내가 기여하는 게 분명하고 거기에 대한 인정을 받고 있는 지를 중시한다. 그게 지금 ‘층층 구조’에서는 어려워서 조직이 변해야 한다는 얘기다.

구글은 3개월마다 각 미션 단위 조직의 성과가 있는지, 시장에 대응하고 있는지 리뷰하고 아니면 조직을 해체한다. 빨리 자원과 인력을 재배분하는 것이다. 국내 기업 경영진이 구글에서 이걸 보고 ‘우리 자녀들을 보내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구글 식 모델을 도입해 보면 2030 세대는 자신의 기여도도 알 수 있고 역량을 개발할 수 있다고 반긴다. 독일에선 조직에 변화를 줄 때에도 근로자 협의체 등의 승인이 필요한데 2030 세대가 주축이 협의체는 먼저 조직 변혁을 사측에 제안하는 것을 봤다.”

Q: 회식문화나 친밀성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게 아시아 기업의 특징이라고도 한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중국은 아시아에서도 가장 빠르다. 오히려 산업화 기간이 짧아서 새로운 업무 문화를 받아들이기 쉬운 것 같다. 젊은 여성이 빠르게 승진하기도 한다. 중국 알리바바, 가전업체 하이얼, 부동산 개발사 방케 등은 일하는 방식이 이미 바뀌어 있다. 조직이 젊기도 하고, 나이 어린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적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면이 있는데 많이 바뀌는 중이다.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식 끈끈한 문화는 장점이 있다. 다만 리더는 아버지처럼 친한 게 아니라 선생님처럼 친해져야 할 것 같다. 맥킨지에서는 팀원에 대해 개인별로 정말 자세하게 피드백을 주게 돼 있다. 이를 제가 기업 임원으로 있을 때 해보니 처음에는 어색해들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 자료를 10년이 지나도록 간직하고 있다고 하더라. ‘일 대 다’ 식으로 팀장이 혼자 얘기하는 자리보다 1대 1이나 소수로 리더가 개인의 개발을 위한 피드백을 준비한 상태로 만나는 게 서로 좋고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김현수 기자kimhs@donga.com


▼ ‘워라밸’ 사각지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뭔가요?”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에 있는 염색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는 최모 씨(34)는 기자에게 워라밸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단어의 뜻을 차근차근 설명하자 최 씨는 “에이, 꿈같은 소리” 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최 씨 회사의 정시퇴근 시간은 오후 6시지만 늘 정시퇴근을 해본 적은 거의 없다. 그 이유를 묻자 최 씨는 “나처럼 돈을 많이 더 벌어야 하는 사람에겐 워라밸이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다”며 “작년에 둘째를 낳아서 돈이 더 필요하다. 돈을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야지 퇴근은 무슨 퇴근이냐”고 말했다.

최 씨는 ‘워라밸 사각지대’에 있다. 근로시간이 줄면 수입도 같이 줄어들까 걱정이다. 최 씨 회사도 난감하다. 정부에서는 근로시간 단축과 워라밸 정착을 위해 추가 고용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추가 고용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고 인력난도 심각하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문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 씨(57)는 “회사를 금방 그만 두는 사람도 있고, 교육비, 식비 등 보이지 않는 비용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중소기업에서 사람하나 고용하는 건 리스크(위험)가 큰 일”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워라밸과 근로시간 단축 등에 대한 의견이 많다. △워라밸을 할 수 있도록 퇴근을 못하게 하는 기업을 관리 감독 해 달라 △돈을 더 벌어야 하는 사람을 위해 근로시간 단축을 다시 생각해 달라 △워라밸은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무원들에게만 해당 될 뿐이라는 내용 등 워라밸을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주를 이룬다.

2004년 전격 실시된 주 5일 근무제는 정착까지 약 7년 여가 걸렸다. 여전히 주 5일 근무제가 정착이 안 된 곳도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먼저 변하고 중소기업까지 바뀌며 문화로 정착하기 까지 10여 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적으로 온갖 비효율을 줄여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정부가 보완 입법을 통해 제도를 바꿔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탄력적 근로시간제다. 단위기간(현행 2주, 3개월) 안에 평균 주 40시간(최장 52시간)을 맞추는 제도다. 하지만 노사 합의가 필요해 활용도가 낮다. 전체 기업의 5~6%만 도입한 것으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보고 있다. 현행 단위기간 3개월에서 프랑스 독일처럼 1년으로 확대하자는 주장도 거세다.

김영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직종별 직무별로 다양해지는 업무 방식을 법이 아울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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