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단에 참신한 개성을 드러낼 2008년의 새로운 시인들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 시, 시조 당선자들의 당선작과 신작시를 함께 묶은 『2008 신춘문예 당선시집』이 문학세계사에서 출간되었다.
문단에 첫발을 내딛는 시인들의 뜨거운 열정과 응축된 시적 긴장을 행간마다 엿볼 수 있는『2008 신춘문예 당선시집』은 새내기 시인들의 시적 경향과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동안 신춘문예 당선시집은 문단, 평론가, 시인 지망생들로부터 꾸준한 관심을 받아왔다.
이 시집에는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시와 함께 신작시 5편, 심사평, 당선소감, 당선 시인의 약력 등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당선시와 함께 실린 5편의 신작시들은 이제 갓 등단한 시인들의 작품세계를 명료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한국 현대시 100년이 되는 2008년 신춘문예 당선시작품들은 신선한 가능성과 자기만의 스타일, 시적 대상에게 말을 거는 개성적인 대화능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새로운 감수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의 표현을 위한 데생의 기초가 우선되어야 하는데, 각 신문사에 응모된 대다수의 시편들 속에 시단의 한 흐름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난해한 아류작들이 많았음은 유감으로 남는다. ‘시의 기본’을 모른 채 언어를 헤프게 낭비하거나 의미를 도통 알 수 없는 이미지의 남용이 미래의 시인을 꿈꾸는 문청들에게 표준화된 개성이 되어 있음은 특히 큰 문제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2008년 신춘문예 당선시들에 걸어볼 수 있는 희망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참신성과 더불어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활달한 상상력과 함께 고통을 긍정으로 극복하는 현실 인식의 시편들은 새로운 꿈과 희망의 속살을 내비치는 것 같아 정겹다.
2. 새로운 방식의 감수성과 화법
2008년도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개관해보면, 캄보디아에서 온 한 노동자의 삶을 진솔하고 꾸밈없이 노래한 「하모니카 부는 오빠」(문정, 문화일보)는 고통을 극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힘을 지니고 있으며, ‘호소력 있는 비유’로 사랑의 집을 꾸민 「너와집」(박미산, 세계일보)의 온기는 따뜻하다. 마음의 창고에 쌓인 고통스런 삶의 상처들을 조심스럽게 열어 보인 「창고大개방」(방수진, 중앙일보)의 탄탄한 구성력과,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유희경, 조선일보)의 참신한 시각도 돋보였다.
시적 발상의 전환으로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이 담긴 「가벼운 산」(이선애, 서울신문)과 작품을 관류하는 활달한 상상력과 더불어 세련된 이미지의 감흥을 맛보게 한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경전」(이은규, 동아일보)도 기대를 갖게 한다. 독특한 시적 비전으로 삶의 진지성과 감동을 전해준 「파문」(이장근, 매일신문)과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의미 없이도 갈 수 있’는 페루처럼 말 자체의 속도감으로 쾌감을 전해 준 「페루」(이제니, 경향신문)의 발랄함도 눈에 띈다.
새로운 방식의 언어적 감수성을 보여 준 「차창 밖, 풍경의 빈 곳」(정은기, 한국일보)과 “몸의 뜨거움으로/ 어느 귀퉁이의 빙하가 녹는지/ 창 너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와 같은 빛나는 깨달음을 얻고 있는 「예의」(조연미, 부산일보)는 아직도 시가 우리 둘레에서 위안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본보기가 됨직한 작품이다.
2008년도 신춘문예 시 당선작들을 분석한 문학평론가 이광호 교수는 전반적으로 "일상 공간에서 탈주가 목격되지만 이는 절대적인 의미의 탈주가 아니라 삶을 갱신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고 평했다. 또한 올해 당선작들이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수년간 지속된 산문화 경향과는 달리 안정된 구조와 전통적인 형식미를 갖고 있다"며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분열증적인 시가 다수의 문학 지망생과 제도권 공간에 안착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또한 『2008 신춘문예 당선시집』에는 우리 시의 전통과 운율의 맛을 간직하고 있는 시조 부문의 당선작과 신작시조 등을 추가로 포함시켜 한국시의 고유한 형식과 맛을 새롭게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은 기성문단이나 시의 꿈을 보듬으려는 예비 시조시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아울러 그간 문단에서 소외되었던 시조를 우리 시의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의미 있는 작업임과 동시에 시인과 독자의 상상력 자체를 통시적으로 넓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나름대로의 분명한 개성과 당찬 패기로 새롭게 태어난 시인들의 무한한 가능성이 어떻게 결실을 맺는지 조심스럽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시기에 공모되는 신춘문예 제도에 대한 일각의 우려와 시 쓰기에 대한 한때의 열정적 거품을 걷어낼, 신춘문예 출신 시인들의 생산적이고 순기능적인 활동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