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마블링 따위는 필요 없어!···제주 흑우 독특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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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5.25. 오후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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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라이프 레시피┃이기적인 맛

제주 푸드 앤 와인 페스티벌

흑우 해체쇼 열려 주목

토종 한우 품종 흑우

지방 거의 없어 담백

와규와 유전성 연구하는 이 많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위치한 한 축산농가의 흑우. 박미향 기자
제주의 햇살은 육지와는 다르다. 땅에 내려앉은 제주 태양엔 짠 해풍의 짭조름한 맛이 배어 있다. 지난 17일 제주한라대 한라컨벤션센터 앞마당. 이 대학 호텔조리학과 학생들과 미식 여행객 등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이 학수고대 기다리는 건, 올해 3회를 맞은 미식 행사 ‘2018 제주 푸드 앤 와인 페스티벌’의 행사 중 하나인 ‘흑우 해체쇼’를 보기 위해서였다. 제주 흑우는 섬 밖으로 반출이 안 되는, 한때 멸종위기였던 토종 한우 품종이다.

오후 1시30분. ‘흑우해체쇼’를 진행하는 문동일 셰프가 나타났다. 그는 <티브이엔>(tvN)의 <한식대첩>에서 제주를 대표하는 요리사로 출연한 바 있는 음식 전문가다. “제주 중산간 서쪽에서 방목해 키운 흑우입니다.” 무대 한편에 설치한 나무 장치에 걸린 흑우는 190kg의 커다란 덩어리였다. “흑우의 무게는 보통 450kg인데, 이것은 조금 작은 380kg 소의 반절입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발골 전문가 변성보씨가 쓱쓱 긴 칼로 단단한 뼈에 붙어있는 살을 분리해내기 시작했다. 알베르 카뮈가 집착한 지중해의 태양 빛이 이런 것일까. 변씨가 문씨에게 건넨 제비추리(소의 갈비 안쪽에 길게 붙어 있는 살)에 달라붙은 하얀 햇살은 고기 특유의 핏빛을 지워버리는 듯했다. 문 셰프는 머리 위로 자랑스럽게 제비추리를 들어 올려 설명했다. “색을 주목해주세요.” 그의 말대로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느 한우와는 색이 달랐다. 하얀 마블링(근육 내 지방)이 적었다. 등급이 높은 한우라면 으레 있기 마련인 새하얗고 실핏줄처럼 가는 마블링 말이다. 선홍빛이 아닌 검붉은 색이었다. “살 속에 촘촘히 박힌 지방이 안 보이시죠? 흑우는 일반 한우와 다르게 살과 지방이 분리됩니다.” 그런 이유로 담백하고 고기 특유의 찰진 식감이 뛰어나다는 게 문 셰프의 설명이다.

’2018 제주 푸드 앤 와인 페스티벌’의 한 행사인 ’흑우 해체쇼’


제주 흑우 제비추리. 박미향 기자
제주 흑우 살치살. 박미향 기자
콧등과 발톱, 털빛이 까만 흑우는 조선시대 제주 목사 이형상이 그린 <별방조점 탐라순력도>(1702년)에 ‘별방진 우마수는 흑우 247마리, 말 946마리’란 표기가 있을 정도로 역사가 긴 소 품종이다. 임금한테 진상했던 흑우는 일제 강점기 때 강제반출, 1960~70년대 고기 질보다 양을 위주로 한 육량정책 등으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다른 한우 품종보다 덩치가 30% 작은 흑우는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황색 한우보다 10개월은 더 키워야 덩치가 비슷해진다.

하지만 토종 품종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1990년대부터 복원 사업이 진행됐다. 1986년, 현재 제주농업마이스터대 축산학과 문성호 교수가 당시 농촌진흥청 연구원으로서 마지막 남은 흑우 수소의 정액을 영하 196도에 동결 보존한 것이 출발점이다. 그는 제주축산진흥원과 함께 1993년 농가를 수소문해 14마리 한우 암소에 수소 정자를 인공 수정했다. 이듬해 흑우 4마리가 세상 빛을 봤다. 2007년 제주대 생명자원과학대 박세필 교수가 주축이 된 줄기세포연구센터가 합류했다.

제주시에 위치한 ’흑우랑’의 육회. 박미향 기자


흑우해체쇼에 강사로 나선 박 교수는 “현재 1700여마리로 증식된 상태이며 2013년엔 흑우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546호’로 지정됐다”고 말하면서 일본 와규(和牛)와의 연관성을 언급했다. 와규의 조상이 어쩌면 제주 흑우일지 모른다는 가설이었다. 문 교수도 비슷한 의견이다. 문 교수는 “자료를 보면 1924~25년, 제주 흑우 201마리가 일본에 건너간 기록이 있다”며 최근 일본 야마구치현 미시마섬에 가 연관성을 조사했다고 한다. 지난 3월23일 제주대 제주흑우연구센터에서 열린 ‘제3회 제주흑우 국내 심포지엄’에서 영남대 생명공학과 김종주 교수가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육지의 한우, 제주 흑우, 울릉도 칡소와 일본 와규 품종, 서양 소 품종들의 유전적 진화트리를 분석한 결과 제주 흑우엔 독특한 유전적 특성이 있다”며 “일본 와규는 흑모색과 갈색으로 나뉘는데, 제주 흑우는 흑모색 품종과 유전적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한다. 곧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반면 건국대 축산경영연구소 김태경 연구원은 “고구려, 백제 등이 멸망하면서 이미 일본으로 소 반출은 있었다”며 “제주 흑우와 와규가 반드시 유전적으로 같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일본 음식연구학자 이시게 나오미치가 쓴 책을 보면, 16세기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선교사가 미국, 한국, 중국 등에서 소를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실시한 육식금지령 때문에 일본 내에서 소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어쨌든 우리 소가 여러 경로로 동해를 건너간 건 사실인 듯하다.

흑우 전문식당 ’검은쇠 몰고오는’ 박미향 기자


그럼 과연 맛은 어떨까? 40여분 진행된 흑우해체쇼가 끝나자 문 셰프는 부위별로 얇게 잘라 시식을 진행했다. 페스티벌 행사 참여차 제주에 온 조희숙 한식 전문가, 콜롬비아 요리사 ‘다니엘 프라다 그라나다’ 셰프 등이 맛을 봤다. 조 전문가는 “고기 특유의 잡냄새가 없고 씹을수록 고기 맛이 난다”며 담백하다는 평을 했다. 다니엘은 “향기롭다”면서 지방에선 버터 맛이 난다고 했다. 문 셰프는 사료로 감귤박(귤껍질을 삶아 말린 것)을 사용해서라고 한다. 곡물보다는 풀을 주로 먹이기에 맛이 담백할 수밖에 없다는 부연설명도 했다.

’검은쇠 몰고오는’의 간과 천엽. 박미향 기자


이날 오후 5시께 찾은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축산농가의 양상숙 농장주는 “감귤박은 먹이지만 그 양이 많지는 않다. 감귤박때문에 지방색이 지나치게 노랗게 되면 오히려 맛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며 “지금은 방목과 축사 비육을 병행하지만 앞으로는 방목만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색 한우와 흑우 70두를 같이 사육하는 그는 “제주엔 말고기와 돼지고기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말한다. 그의 농장에서 만난 흑우들은 총명해 보였다. 5~6개월 된 어린 흑우들은 낯선 이의 방문이 신기한지 축사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18~20개월 된 흑우들도 뚫어지라 쳐다보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쏟아지는 빗속에서 제주 맑은 햇살이 그리운지 하늘을 간혹 쳐다봤다.

■ 제주 흑우 맛볼 수 있는 식당

제주 흑우는 아직 대량 생산이 쉽지 않아 파는 식당이 적다. 섬 전체에서 대략 3곳 정도다.

검은쇠 몰고오는

유양봉 대표는 “식당 문을 연 지는 11년이 됐지만 흑우만 판 지는 6년째”라고 한다. 그는 제주가 고향인 이로 부친이 축

’검은쇠 몰고오는’의 메밀놈삐국.
산업에 종사했다. 현재 10개 농장과 계약을 맺고 흑우를 공급받고 있다. 간이나 천엽도 판다. 신선한 간은 씹을수록 뭉글하고 고소하고 비릿한, 다채로운 맛의 향연을 펼친다. 각종 부위는 담백하다. 조희숙 한식 전문가는 “한우의 느끼한 맛이 거의 없고 ‘한우해체쇼’에서 맛본 것과 거의 유사하다”는 평을 했다. 제주 전통음식인 ‘메밀놈삐국’도 있다.

‘놈삐’는 제주 말로 무를 뜻한다. 본래 돼지 뼈를 우린 육수에 메밀가루와 무를 넣어 걸쭉하게 끓이는 국인데 이 집은 흑우 뼈를 쓴다. (제주시 신대로20길 27/064-712-1692)

흑소랑

“다른 누런 한우 200g 먹는 효과가 있죠.” 김경수 대표는 100g도 안 되는 살치살을 가져오면서 자랑부터 한다. 영농후계자인 송동환씨와 연이 닿아 5년 전 ‘흑소랑’을 열었다. 직접 흑우 농장을 운영한다고 한다.

’흑소랑’의 보리김치.
황색 한우도 판다. 현재 서울 삼성동에 ‘보름쇠’도 운영 중이다. (제주시 연북로631/064-726-9969)

이밖에 서귀포시에 ‘흑한우명품관’ 등이 있다.



’제주 푸드 앤 와인 페스티벌이란?’

‘2018 제주 푸드 앤 와인 페스티벌’은 제주의 대표 미식 행사로 5월10일부터 열흘간 열렸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제주 숨은 맛집 80곳을 선정해 방문 시 할인 혜택을 받게 하는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펼쳐졌다. 국내외 유명 요리사들의 조리법 시연과 호텔 조리학과 학생들과의 협업 등이 진행됐다. ‘가든 디너’, 제주 식재료를 알리는 ‘제주고메마켓’, ‘흑우해체쇼’ 등은 색다른 미식을 즐기려는 이들로 문전성시였다고 한다.



제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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